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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다 월간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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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늘꽃향기 작성일10-05-28 20:07 조회19,2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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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단>
                                            아주 특별한 약속(요엘 2:21-30)

                                                                                        이영복(다비다자매회이사장)

  교회에서 외국인근로자들을 섬기고 있기에 외국인들을 만날 기회가 적지 않지만 저는 아직 영어 이름이 없습니다. 그래도 이것이 어떨까 하고 생각해본 이름은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요엘(Joel)입니다. 언젠가 요엘서를 묵상하면서 받은 감동이 참으로 컸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라는 이름의 뜻이 너무 거룩하여 사용하기를 망설이고 있습니다.

아주 특별한 약속, 성령의 세례

  여러분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를 꼽아보라면 무엇이라 대답하겠습니까? 어머니(mother), 사랑(love), 다비다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게 아름다운 문장을 들어보라고 한다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성령의 약속에 관한 성경 구절들을 꼽고 싶습니다. 정말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문장들입니다. 실제로 영혼을 터치하는 힘이 담긴 문장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오늘 본문 중 요엘서 2:28-29절(꿈, 이상)입니다. 모든 예언서가 심판과 회복을 주제로 하고 있는데 특히 요엘서는 3장의 짧은 이야기 속에 고난의 상처를 충분히 커버하고도 남을 만큼의 아주 특별한 회복의 약속, 바로 만민에게 부어질 성령 세례에 관한 약속이 담겨 있습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 다음으로 이사야 32:15절(아름다운 밭, 삼림)입니다. 또 하나는 이사야 61:1-3절(아름다운 소식, 자유 등)입니다. 이 모든 구절들이 성령 세례의 약속과 관계된 것입니다. 아름답지 않습니까?
  실제로 예수님은 ‘좋은 것’과 ‘성령’을 동일시하였습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라는 마태복음 7:11말씀이 누가복음 11:13에는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좋은 것이 성령으로 대체되어 있는 것이지요. 예수님께 가장 아름다운 단어가 무엇인지 여쭤보면 어쩌면 성령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령세례는 어떻게?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강림을 요엘서 예언의 성취라고 하였습니다.(행 2:16-21) 제 개인적으로는 1986년 7월의 성령체험을 떠 올리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저 마다의 감격적인 성령체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성령체험을 사모하는 분들을 위해 성령세례를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한 마디로 말씀드리자면 성령을 받는 것 아주 쉽습니다. 받기를 소원하기만 하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 약속하신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그 중요성을 고려하면 ‘성경의 단 한 가지 약속’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성령세례는 처음 하나님을 믿을 때 받기도 하나, 제 경우도 그러했지만 믿은 후 받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성령세례는 전적으로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것이나 이를 받기 위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까요?
  1) 먼저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며 자기를 포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령은 십자가에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던 세례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라고 소개한 바 있으며 예수님이 떠나시면서 하나님께 구하여 보내주시겠다고 하신 또 다른 보혜사가 성령님이기 때문입니다.(요1:32-33, 요14:16)
  2) 그리고 사모하는 마음과 믿음으로 간구하며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눅11:13, 행1:14, 고전14:1)
  3) 아울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세도 요청된다고 하겠습니다.(행5:29-32) 주님께서 명령하시는 것은 분석하거나 저울질하지 않고 순종하는 자세 말입니다.
  4) 한편, 사도의 말씀이 전해지는 중(행10:44) 또는 안수(행8:14 -17, 9:17, 19:1-7)중에도 성령세례가 임하였는데 과정이 어떠하든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하겠습니다.

  1993년 11월 제가 북경으로 떠나기 직전 그간 인도해오던 직장의 성경공부모임에서는 파송 겸 잠시 헤어짐을 위한 기도회를 가진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예수님의 찢겨진 살과 흘린 피를 묵상하며 함께 기도하였는데 20명 가까운 모든 참석자들이 성령의 임재를 강하게 경험하였습니다.
  특히 3년 반 동안 제 대신 성경공부모임을 인도할 자매님(현재 다비다자매회 회장으로 계시는 분입니다.)을 비롯하여 4명의 소그룹 리더들이 방언으로 기도하게 되는 성령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이를 통하여 저는 성령의 은혜는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일을 새로 맡길 때 강하게 베풀어진다는 사실과 함께, 특히 십자가와 깊은 연관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가는 말

  저는 다비다자매회원들이 메뚜기와 늣과 황충과 팟종이에게 빼앗긴 날들을 하나님께서 그 햇수대로 다 갚아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모든 회원들에게 날마다 찬양이 넘쳐나고 요엘서 2:28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부어주겠다는 약속이 자매님들에게만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다비다회원들 중에는 마음의 상처를 입은 자, 육신이 아픈 사람이 많은데 회장님과 십부장을 비롯한 여러 회원들에게 다양한 성령의 은사가 부어져 질병을 고치고 상처를 치유하는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사랑하는 자매들이기에 반드시 이루어 질 것입니다. 우리들은 “아주 특별한 약속”을 간직한 자들이기에 영영히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들의 남은 시간들은 한량없이 아름다울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야기>
영혼의 금식

김혜란 회장

1) 안목의 정욕금식 : TV 시청, 인터넷 접속 금식
2) 물질 금식 : 돈, 쇼핑, 음식물 버리는 것
3) 언어 금식 : Yes, No 외에는 가능한 침묵
4) 생각 금식 : 자기비하, 판단, 부정적인 말, 무시당함, 불평, 욕망, 욕심, 대항, 절망, 모욕참음
 
  고난 주간을 거쳐 부활주일을 맞으면 사람들은 금식을 하지만, 교수님께서는 우리 신대원생들에게 음식을 금식하기보다는 위의 4가지를 실천할 것을 제안하셨다. 교수님의 영혼의 금식 제안에 나는 자신이 없었다. 내 자신에게 가장 약한 점이 바로 TV 시청문제였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에 TV시청을 무척 즐긴다. 넓지 않은 우리 집에는 안방에도, 거실에도 커다란 TV가 벽에 달려있다. 잠시 쉴 때에도 편안하게 쉬면서 TV를 보면서 쉬고, 또 집에 혼자 있기 때문에 적적함을 면하기 위해 시청하다 보니 어느새 드라마 광이 되어버렸다.
  영적 생활에 가장 방해 되는 요소임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여러 번 시도 해 보았지만 번번히 실패했기 때문에 고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 과제물을 받은 날 나에게는 큰 사건이 있었다. 하나님 앞에서 “용서”를 체험하며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을 받은 일이다.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은 나는 감사함을 TV금식으로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2주간이 지난 부활주일이 되는 이 시간까지 한번도 TV 시청하고 싶은 충동을 받지 않고 아주 편안하게 잘 지내고 있다.
  지난 3월27일 “우리 예쁜 연아가 쇼트프로그램 한답니다. 이번 시즌 마지막인데 우리 응원해요.”라는 김총무의 문자를 받았다. 혹시 모르고 있을까봐 늘 연아가 출전하는 날이면 서로 확인해왔던 것이다. “내가 TV금식 멋있게 해내는 것은 연아 쇼트프로그램보다 중요해”라고 답장 보냈다. 내가 이렇게 냉정하게 TV 금식을 할 수 있는 것은 내 힘이 아니다. 그동안 내가 해 내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일인데 이번에는 주말인 토, 일요일에도 전혀 보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TV시청을 하지 않으니 늘 시간에 쫓기던 나에게 시간이라는 선물이 생겼다. 시간이 없어 집안 살림을 미루고 살던 내가 어머님 위해, 그리고 손녀 딸을 위해 반찬을 만들기도 하고, 밀린 과제도 서둘지 않고 여유 있게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님 앞에 나아가 묵상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참 마음이 편안하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TV드라마에 바쳤나?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그 뿐 아니라 한 가지 금식에 성공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언어, 물질, 생각의 금식도 함께 병행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성령님, 그리고 교수님...





<우리들의 이야기>
봄날의 이야기 -

(정희자전도사의 반 시골생활 적응기)

이사하는 날부터 때 아닌 진눈개비가 날리더니 날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내가 부임하는 교회는 신도시와 농촌이 공존하고 기성세대와 신세대가 공존하고
전통과 첨단문화가 공존하는 이상한 구조의 작은 도시 겸 농촌마을이다.

교회건물은 얼마 전에 신축을 하였기 때문에 그 마을에선 제일 번듯하고 빛난다.
사방이 거침없이 트인 넓은 밭으로 이루어진 지형적 특성상 바람이 사통팔달 불어와 여름에도 서늘한 일명 ‘바람의 땅’(내가 지음)이다.

그런 곳에 덩그러니 집이라곤 교회 하나뿐, 그런 곳에 위풍당당 주변경관과 어우러져 예배당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사택은 본당 위층에 자리해서 넓고 편리하다. 이상한 방법으로 기도에 응답해주신 하나님의 후히 주심에 가끔씩 스스로 놀라고 감사하다.

이곳은 대학이 있는 학교 주변이다.
시내버스가 가끔씩 다니기는 하는데 아직도 노선을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나와 우리 아이는 천안으로 나가고 들어올 때 대학 스쿨버스를 이용한다.
나는 대학생들의 눈치가 보일까봐 가능하면 젊은 복장을 하거나 교수인 체하며 차를 탄다. 그리고 중학생인 우리 딸은 다행히 키가 커서 의심 없이 대체로 무사통과다. 물론 우리는 차비는 내고 탄다. 그러나 내심 떳떳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도리가 없다. 이곳에서 살아내려면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아침이면 집집이 연기가 피어오르는 평화로운 농촌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잠시 후 출퇴근 시간이면 차들이 꼬리를 물고 쉼 없이 왕래하는 교통체증, 막상 이럴 땐  도시와 다를 바 없다.
이곳에선 도로에 인도가 따로 없기 때문에 오히려 승용차 없이는 이동하기가 불편하다. 때문에 운전이 싫고 미숙한 내가 드디어 기능인(?)이 될 수 있는 최적의 시기가 되었다. 요즘은 딸의 통학을 위해 스쿨버스 타는 데 까지 차로 데려다 준다.
사춘기의 예민한 딸을 시골로 데리고 온 미안함 때문에 이것마저 외면하기엔 마음이 아프기 때문이다.
이렇듯 어쩔 수 없는 현실의 필요(?)가 그동안 미루고 소극적인 나를 보통사람(?)으로 하나씩 만들어 가는 중이다.

벌써 여러 차례 춘설이 많이 내려 그야말로 영화와 같은 설국을 경험하는 일이 있었고 이런 날 누가 이 눈길을 헤치고 새벽기도에 나오겠나 싶어서 창밖을 내다보며 기다리고 있는데 저기서 두 개의 눈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바로 연로하신 두 분의 권사님이 마치 눈사람같이 되어 그렇게 새벽에 나오신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이곳에 더욱 마음으로 정을 붙이게 되었다.

요즘은 교회주변의 밭에 한창 한해농사가 시작되고 있다. 겨우내 단단해진 밭을 기경하는 농부의 돌봄을 바라보며 ‘농부 하나님’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게 되었고 우리의 심령을 왜 밭에 비유했는지도 알 것 같았다.
농사는 교회와 신앙생활과도 너무나 흡사해서, 하나님의 특별한 시청각 교육을 받으며 영혼의 창을 통해 깊은 묵상을 하게 되어 참 좋다.

어제는 농부들이 밭에다 연한 새싹을 가져다 줄을 맞추어 심더니만 하얀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줄지어 덮어주었다. 아마도 스스로 찬바람과 햇볕을 이길 힘이 자랄 때 까지 새싹을 보호하려는 것이리라 그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며 저 비닐하우스가 영적인 시각으로 보면 아마도 성령님의 역할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곳은 거름냄새와 질척한 땅 벌레들....... 조금은 성가시고, 오랫동안 도시의 산뜻함에 길들여진 나에겐 다소 불편이 있지만
오히려 이곳이 내 생에 깊은 영적 통찰을 주는 하나님의 보너스의 시간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탈 도시생활을 적극적으로 즐기며 하나님과 깊이 교감하는 귀한 시간으로 보내고 있다.

자연은 우리 모두의 고향이다. 그러기 때문에 자연에는 평안이 있다.
이제 이곳에 온지 한 달이 되었다. 앞으로 이곳에서의 사계절을 보내고 나면 아마도 할 이야기들이 참 많을 듯싶다.
정희자 전도사님의 새로운 사역에 박수를 ~

그러리라 조금은 짐작 했지만, 떠난 지 몇 년이 지나도록 소식 한번 주지 않고 잠적해 버린 당신이 내 머릿속에서는 왜 그렇게 맴돌고 떨쳐지지 않았는지...
그렇게 쫓기는 교회의 일정 속에서도 내 마음속의 당신의 자리는 그냥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빈 채로 있었어요. 언젠가는 찾아보리라 생각하던 중 간신히 연락이 되어 천안으로 찾아가 당신을 만났을 때, 내가 얼마나 당신을 아끼고 있었는지 확인을 했지요.
내 마음이 왜 그렇게 당신에겐 특별했는지 지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울타리 없이 날아갈 듯 바람부는 광야에 홀로 세워놓으시고 그래도 누군가 벗이 필요하여 나를 보내신 하나님의 의도가 있었기 때문인 것 분명합니다.

당신이 경험했던 지난날들의 아픔, 듣기만 해도 가슴이 그토록 아팠는데, 말로는 다할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혼자 병들어 죽어가던 당신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죽지 않고 살아준 것만으로도 당신은 대단한 사람이야!
이제 교회를 담임하여 부임한 당신의 첫발 내디딤을 생각하며 마태복음 4장을 묵상하며 축하의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물위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임하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3: 16,17),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마4:1)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 하나님의 아들로 인증하시는 확실한 사건 직후 바로 공생애에 들어가게 하시지 않고 성령님은 예수님을 광야로 이끌어 그곳에서 시험받으시도록 내버려 두셨습니다.
예수님의 첫 사역지가 광야였지요.
굶주림, 고통, 늑대, 이리, 사단의 역사가 있는 광야. 그 과정을 견딘 후에야 성령님은 주님을 능력의 사역장으로 옮기셨지요. 척박한 광야에서 훈련받으신 후에야 놀라운 능력의 장으로 인도하시었던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곧 바로 능력과 형통한 길로 가면 타락하고 변질 될 것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현실의 장애물, 고통의 자리에서 실패와 좌절, 무기력, 무능력, 통곡을 하게 하심으로 철저히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뼛속 깊이 각인시키기 위해서 성령님은 때때로 우리를 광야로 이끌어 가시고 마귀의 시험을 받도록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만 나의 도움이라고 두 손 들고 나올 때까지 자기 백성을 불과 같이 연단하신 후에야 놀라운 은혜와 능력을 증거하는 사역자로 삼으십니다.
모세가 그랬고, 다윗이 그랬고, 요셉이 그랬고, 이들과 비교할 수도 없지만 제게도 그러셨습니다.
지금의 다비다가 있기까지 말할 수 없는 훈련의 시간들이 있었지요. 이젠, 더 이상 못하겠다는 생각을 포기할 수 있을 만큼.
그 훈련이 나에게 준 큰 가르침은 주의 일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나는 다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자리에 있을 뿐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셨지요.
특히 그 때 나에게 주신 생각은 “이처럼 최저 밑바닥을 잘 견디어 내지 않고서는 앞으로 이 어려운 사역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 이 고통의 시간을 끝까지 잘 견디며 포기하지 말아야한다.”라는 것이었어요.
제가 다비다자매회 일을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때 그 광야를 견디어 냈기 때문입니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정전도사님!
아직도 다 끝나지는 않았지만 그간의 험한 광야의 여정을 정말 잘 견뎌내시었습니다. 그 광야 여정 가운데에서도 신대원 공부를 잘 마치고 마침내 새롭게 능력의 사역장으로 성령님께서 인도하셨음을 축하드립니다.
당신이 광야의 깊은 골짜기에서 만난 예수님, 그 깊은 우물에서 퍼 올린 생수로 또 다른 광야를 헤매며 목말라하는 양떼들을 먹일 때 생명을 살리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기에 당신의 사역에 기대가 큽니다.
당신이 광야에서 훈련받은 대로,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고 작은 것의 소중함을 알아 한 생명을 주께 대하듯 소중하게 여기는 참 목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다비다자매들은 언제나 당신을 뜨겁게 지지합니다. 힘내세요!!

다비다자매들을 대표하여 김혜란 드림



<잠시 쉬어가는 글>
‘십자가를 경험하는 삶’
 -헨리 블랙커비-

변화는 새로운 깨달음에서 시작됩니다.
독생자를 내어주시고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해내신 하나님의 사랑이
문자가 아닌 우리 삶 가운데 체휼될 때,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누군가를 위한 사랑이 아닌,
나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보십시오.
진정 주님을 만나고 그의 목소리를 듣고
그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기를 소망하십시오.
십자가의 사랑이 신앙의 타성에 젖은 우리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하나님의 비전 가운데로 인도하길 원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 -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 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강안삼의 가정편지>
나쁜 이웃, 좋은 이웃
 
어느 동네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 가는 사람이 새로 이사 오는 사람에게 하는 말입니다. “이 동네는 사람이 살 곳이 못됩니다. 사람들이 너무 예절도 모르고 이기적이고 싸움만 일삼습니다. 그래서 생각다 못해 저는 이 동네를 떠나기로 결심했지요.”
그러자 그 동네로 이사온 사람이 그 말을 듣더니 또 한마디 합니다. “그렇습니까? 저는 이 동네 사람들이 가난하고 또 병에 자주 걸려 무척이나 고생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이웃이 되려고 이사 오기로 결심했지요.”

네, 이 두 사람의 차이는 간단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좋은 이웃이 되려 하느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내게 좋은 이웃이 되어주기를 바라느냐의 차이인 것이지요. 바로 이 차이에 따라 그들의 삶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사실 자신은 좋은 이웃이 되려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만 내게 좋은 이웃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을 괴롭힌다고 생각하는 소위 나쁜 이웃만을 만나게 되겠지요.

하지만 나 자신이 먼저 좋은 이웃이 되려는 사람은 언제나 나에게 호감을 가진 좋은 이웃들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성경은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내가 먼저 좋은 이웃이 되어 그들을 내 몸같이 사랑하며 섬기라고 가르치지요. 그렇게 할 때 그들도 좋은 이웃으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랑의 삶을 살면서 이웃에게 최고의 사랑인 복음을 전해 줄 때 그날 천국에서는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됨을 기뻐하는 잔치가 열릴 겁니다. 이 같은 좋은 이웃의 삶이 우리 모두의 삶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좋은 책 소개>

 ‘인생수업’
(지은이 :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데이비드 케슬러)

“영원과 하루”
오늘날 미국에서 자동차 사고의 가장 큰 원인으로 화를 꼽는다. 화를 싸이게 놔두면 화는 부정적인 힘으로 돌변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화를 내고 그것을 표현하면서 1분가량 지속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그러나 화를 폭발시키는 식으로 부적절하게 표현하거나 그것을 억제해서 쌓이게 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게 되면 어떤 상황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지나치게 화를 내거나, 아니면 전혀 화를 내지 않는 것으로 끝맺게 된다.
억압된 화는 단순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해결되지 않은 채로 마음속에 남는다. 이 작은 화들을 그 때 그 때 풀어주지 않으면, 그것은 점점 커지다가 대개 엉뚱한 곳에서 폭발한다.
화가 쌓여서 생기는 또 다른 문제점은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이 자신들의 행동에 책임을 질 준비가 되어 있는데도 우리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이다. 잘못을 인정하는 상대방의 사과가 진실한 것을 알면서도 계속 화가 난다면 그것은 오래된 화이다.

화를 내는 것은 정상적인 반응이며 알맞은 시간과 장소에서 적절하게 표현할 때는 매우 쓸모가 있다. 화를 내면 주위 사람들의 행동이 달라지고, 그럼으로써 주위 환경을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된다. 따라서 그것은 우리의 삶에 알맞은 경계선을 설정해 준다. 부적절하거나 폭력적인 방식으로 표현되지 않는 한, 화를 내는 것은 유익하고 건강한 반응이다.
신체의 중요한 경고 체계 중 하나인 화의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억눌러서는 안 된다.
화를 낸다는 것은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상처가 현재의 고통인 반면, 화는 가끔씩 찾아오는 고통이다. 이 상처들을 쌓아 두기만 하고 밖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점차 화로 자라나게 된다. 상처들이 오랫동안 쌓이면 치유하기가 점점 더 힘 든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그것을 화라고 인식하지도 못하게 되고 그 감정을 품고 사는 것에 익숙해진 당신은 마침내는 화의 감정을 자기 존재의 일부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나쁜 사람이라고 판단하게 된다.
화를 안으로 삭일 때 그것은 종종 우울증이나 자기비난으로 표현된다. 안으로 억누른 화는 과거에 대한 기억을 바꿔놓으며, 현실을 보는 관점을 왜곡한다. 이런 오래된 분노는 다른 이들 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는다.
두려움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분노로 변한다. 두려움을 회피하거나 자신이 두려워한다는 것조차 알지 못할 때 그것은 화로 변한다. 화를 처리하지 않으면 심한 분노가 된다.
우리 사회가 화내는 일을 나쁘고 잘못된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건강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화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그것을 밖으로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못하다. 그저 그것을 마음속에 쑤셔 넣고 부정하거나 그냥 간직한 채 살 뿐이다. 그러다가 결국 한꺼번에 폭발시키고 만다. 작은 일에 대해 화내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평정을 유지하면서, “난 이것에 대해 화가 나요.”하고 말할 줄 모른다. 또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면 화를 낼 거예요.”하고 말할 줄도 모른다. 그 대신 마치 자기는 절대로 화를 내지 않는 착한 사람인 척한다.

“놀이!”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가장 후회하는 것은 “삶을 그렇게 심각하게 살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별의 순례자이며, 단 한 번의 즐거운 놀이를 위해 이곳에 왔다. 우리의 눈이 찬란하지 않다면, 어떻게 이 아름다운 세계를 반영할 수 있는가?
죽음은 놀이의 필요성을 아주 분명하게 보여준다.
“놀이가 왜 배움이 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후회에서 찾을 수 있다. 그들이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은 “인생을 그렇게 심각하게 살지 않았어야 하는 건데.”하는 것이다.
우리는 삶을 누리고 놀이를 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놀이는 아이들만의 소일거리가 아니다. 그것은 모든 생명 가진 존재의 생명력이다. 놀이는 마음을 젊게 하고, 일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며, 인간관계를 잘 맺게 해준다. 또한 젊음을 되돌려 준다. 놀이는 삶을 가장 충만하게 사는 방법이다.
그럼에도 놀이는 삶의 우선순위에서 낮게 취급되어 왔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항상 생산적이고 성공적이어야 하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시달린다.
놀이란 순수한 즐거움을 얻기 위해 하는 행위이다. 놀이는 내면의 기쁨이 바깥으로 표현된 것이다.
놀이는 삶의 모든 측면을 더 의미 있고 즐겁게 만든다. 자신이 하는 일에도 더 만족감을 느끼게 하고, 인간관계도 좋아진다. 놀이는 사람을 절어지게 하고 긍정적으로 만들어준다. 놀이는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서 순수한 놀이의 시간을 거의 갖지 못한다는 것은 정말로 슬픈 일이다.
삶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놀이를 잊어버린다. 생산성을 생각하기 이전의 순수하게 놀이 자체를 즐기던 시절을 기억해야 한다.
자기 자신에게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신 혼자 있을 때도 근사하게 시간을 쓸 줄 알아야 한다.
<사랑밭 편지>

  소심한 A형
 
저는 유머 강의 중에 종종
제 혈액형 이야기를 꺼냅니다.

개인적으로 소심하고, 쉽게 상처받는 성격이
A형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한 마디로 A형이 별로 좋은 피가 아니라는 것이죠.

그런데 지난 주 강의를 하는데
강의를 듣던 한 분이 이렇게 말합니다.
 
“강사님, A형이 피가 나쁜게 아닙니다.
얼마나 좋으면 A급이겠습니까?

부정적인 것을 단 한방에 긍정으로 바꿔버리는 것.

이제부터 저는 소심한 A형이 아니라
최고 품질의 특A급 피를 가진 사람입니다.

                                  -최상규 유머발전소-



 
<싱글맘 정보방>

<1> 국회의원 김금래 의원, 한부모가족 지원 확대 법안 발의 

국회의원 김금래 의원은 2010년 2월 3일, 한부모가족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내용의 한부모가족지원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현행법상, 한부모가정에 18세(취학 중인 경우 22세) 이상의 자녀가 있을 경우 다른 자녀들도 한부모가정 지원받을 수 없게 돼 있어 한부모가족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개정안은 한부모가족 구성원 중 18세 이상의 자녀가 있는 경우, 해당 자녀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을 지원하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또한 부모가 이혼하거나 유기된 아동을 한부모가족 지원 보호대상자로 추가하도록 했다. 김 의원은“경기불황 여파로 인하 이혼과 배우자 가출 증가 등으로 한부모가족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하며 “한부모가족은 1인 소득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양부모가족에 비해 경제적 어려움과 심리적 불안정을 겪고 있다"며 입법취지를 밝혔다.


<2> 서울시, 저소득층 청소년에 ‘스포츠바우처’확대

서울시는 올해 저소득층 가정의 만 7~19세 청소년에게 체육시설 이용권과 운동용품 교환권을 주는 ‘스포츠 바우처’제도를 확대 시행한다고 한다.
시는 올해부터 기초생활보장 수급 가정뿐 아니라 차상위 계층 가정에도 바우처를 지급하고 스포츠용품 지급도 개인당 1회에서 종목별 연 1회로 확대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용권을 가진 청소년은 자치구가 지정한 체육시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6만5천원 이내의 스포츠 용품을 교환할 수 있다.
신청은 거주지 주민센터에 하면 된다.
<소식>
● 지난 3월 30일(화) 김혜란 회장과 임원단 5명은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한 ‘한부모가족 지원 정책세미나’에 참석하였다.
이 회의는 국회의원 김금래 의원이 주최한 한부모가족 지원을 위한 첫 번째 정책토론회였기에 그 의미하는 바가 크다.
김금래 의원은 2006년도에 다비다자매회 모임을 위하여 건국대 입구 여성회관을 모임 장소로 제공해 주셨던 분으로 다비다자매회에 많은 관심과 애정이 있는 분이다. 앞으로 한국 한부모들을 위해 더욱 큰 역할을 하시리라 기대하며 박수를 보낸다.

김금래 국회의원과 사역자들이 함께...


● 다비다자매회 이영복 이사장님의 결혼주례 :
  5월 5일 김삼임 자매님의 장녀 결혼을 시작으로 10월에는 승영애 자매의 장남 결혼식 주례를 예약했습니다.
  우리 자매님들의 축복된 자녀 결혼식에 이사장님께서 진심으로 축복해 주시는 마음으로 주례를 맡아주시기로 하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우리 자매님들과 함께 하기를 즐기시는 이사장님께 감사드리며 주례문제로 고민하는 자매님들의 가정에게 반가운 소식을 전합니다.

<모임 안내>
◆ 바자회 개최
  일시 : 4월 24일(토) 오후 2시
  장소 : 나눔교회
  이웃들과 함께 모두 모두 오십시오.
 
◆ 큐티, 중보기도 모임
  인도 : 김혜란 회장 
  참가자 : 누구나 환영
  일시 : 매주 화, 금요일 오전 10시30분
  장소 : 다비다 쉼터

◆ 독서모임
  일시 : 매월 2번째 수요일 오후 7시
  장소 : 다비다 쉼터
  인도 : 이영복 이사장
  교재 : ‘인생수업’(지은이 :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데이비드 케슬러)

◆ 하모니커 교실
  정기 모임일(4번째 토요일) 오후 2시
  장소 : 나눔교회

◆ 축하합니다.
  김삼임 자매 장녀 지현양의 결혼을 축하합니다.
  시간 : 5월 5일(수) 1시
  장소 : 성북구청(성북구 삼선동 5가)
  주례 : 이영복 다비다이사장님
  찾아오는 길 :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돈암역) 3번출구 : 구청까지 5분거리
                6호선 보문역 3번출구 : 구청까지 5분거리


<2010년 3월 후원자 명단>

광명중앙성결교회(조남국목사), 금곡교회(채영간목사), 나눔교회(김수영목사), 높은뜻숭의교회(김동호목사), 부산호산나교회(최홍준목사), 산본산울교회(이문식목사), 서초동영화교회(손훈목사), 아침교회(안석문목사), 안산평안교회(이창섭목사), 염광교회(최기석목사), 우리들교회(김양재목사), 은혜와영광교회(방선기목사), 일산은혜교회(강경민목사), 전주바울교회(원팔연목사), 주안중앙교회(박응순목사), LA죠이펠로십교회(박광철목사), 한국은행선교회, 향상교회(정주채목사)

강윤중, 권영선, 금위연, 김병숙, 김삼임, 김자여, 김연옥, 김옥성, 김정옥,  김춘희, 김현숙, 김형종, 김혜란, 김혜영, 김혜온, 문화숙,  배재우, 박경순, 송선희, 송임순, 신숙희, 신요순, 오영순, 윤 수, 윤영숙, 윤정윤, 윤여금, 이명옥, 이숙여, 이영복, 이영옥, 이인자, 이진욱, 이화세,  장  민, 장복자, 정미옥, 정  호, 정희자, 조미숙, 주진형, 채희정, 최동하, 최문숙, 최미자, 최순덕, 최윤경, 최정림, 최효진, 하남희, 한명술, 허경자, 허연순, 한은주, 황귀옥.




<우리의 기도>
성경암송 :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역대상 4:10)

■ “순종하는 당신에게 복이 있으리라.”
  2010년도는 우리 모두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해’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 오늘은 제가 무엇을 순종할까요?” 라고 기도 하셨나요?
■ 다비다가 서로 위로하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헌신하여, 환난 당한 자들이 찾아와서 보호를 받고 다시 힘 있게 일어서는 진정한 아둘람 굴의 공동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 출판을 준비하고 있는 다비다 책이 아름답게 완성되어 베스트셀러가 되길 원합니다.
■ 자매들의 가정마다 건강과 생활의 어려움이 없기를 기도하며, 결혼을 앞둔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배우자들을 만나 아름다운 가정을 이룰 수 있길 기도드립니다.
■ 어린 자녀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보호하심으로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마음이 외롭지 않은 행복한 나날이 되길 기도합니다.
■ 정희자 전도사님이 새로 시작하는 ‘우리동네 좋은 교회’ 사역위에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넘치며, 전도사님의 건강을 붙들어 주시어 잘 감당할 수 있길
■ 투병중인 자매들의 건강이 쾌유되길 기도합니다.
- 두 달간 입원하여 치료 받던 정영미 자매가 퇴원하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당뇨가 있는 자매님이 건강해지길 바라며 자매에게 합당한 직업을 찾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 고성애 자매도 여러 가지 질병으로 인하여 병원치료를 받고 퇴원하였습니다. 혈압이 높은 상태입니다. 건강한 몸으로 직장 생활을 계속 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 송연옥 자매가 왼쪽 팔 수술하였습니다. 후유증 없이 깨끗이 낫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 오랜 투석으로 인하여 쇄약해진 이영옥 자매가 육신의 연약함 중에도 딸과 함께 주안에서 잘 견딜 수 있는 은혜를 주시길 기도해 주십시오.
-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몸이 많이 상한 김도연 자매의 회복과 자녀들이 엄마와 함께 교회에 나와 예배드릴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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