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다필그림’의 청풍호반 여행 동행기 / 이영복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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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im 작성일22-11-11 11:34 조회3,84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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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다 필그림>
‘다비다필그림’의 청풍호반 여행 동행기
이영복(본회 사무국장)
2022년 10월 28일 아침 7시. 청량리역 대합실에 백발의 꼬부랑 노파가 나타났다. 파란색 뿔테 안경을 쓰고 우리 일행이 모여 있는 긴 의자 주변을 중얼거리며 돌고 있었다. "젊은 것들이 버릇도 없이 쯧쯧!" 일행 중 누군가가 말했다. "쯧쯧! 치매 노인인가 보다."
의문의 노파는 한참을 서성거리다 허리를 쭉 펴고 뿔테 안경을 벗었다. "허걱! 세상에 유숙자 반장이었구나!" 모두가 깜짝 놀라며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금년에 김혜란 목사님이 다비다 회장직을 내려놓은 후 섬기기 시작한 70세 이상 다비다 큰언니들 모임인 ‘다비다필그림’의 제천 청풍호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지난 5월의 안면도 여행에 이어 두 번째 여행이다.
오전 7시 34분. 제천행 무궁화호 기차에 올랐다. "전쟁 시나 여행할 때는 반드시 먹을 것을 넉넉히 확보해야 한다."는 숙자 반장의 여행지침에 따라 나를 뺀 10명의 언니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각자가 싸온 먹을 것을 꺼내어 나누어준다. 오병이어의 현장이 다시 재연된다면 안드레가 소년이 아닌 필그림 언니들에게서 도시락을 받아 주님께 드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동행한 남동생은 연신 빈손만 내밀었는데도 대 환영을 해준 누나들이 고마웠다.
기차 출입구 쪽 1~2번 첫 좌석에 앉은 숙자 반장은 심심한지 좌석을 돌려 서로 마주보는 네 명 자리를 만들었다. 앞에 앉은 채희정 자매에게 발을 쭉 뻗으라고 하고서 발마사지를 해주며 차비를 더 내라고 했다. 그 장면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내 옆 자리의 김 목사님이 지난 토요일 다비다 가을캠프에서 새가족과 나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초등학교 4학년인 딸 김다연과 함께 다비다 캠프에 참석한 박선주 자매에 관한 이야기였다. 자매가 사는 집이 김 목사님이 사는 남양주 도농과 멀지 않는 별내라서 집 거리가 가깝기에 자연히 동네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단순히 사는 곳이 가깝다는 것을 넘는 인연을 찾았다고 했다. 이수교회로 주일 예배를 드리러가는 김 목사님이 매일 새벽에는 집 근처 새벽기도에 나가고 있는데 박선주 자매가 바로 그 다산중앙교회의 교인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이주은 회장이 자녀들과 함께 처음 온 5명의 자매들에게 선물과 함께 올 봄에 다비다에서 출간한 시집 <여백>을 나눠주었는데 딸 다연이가 캠프 기간 중 그 책을 열심히 읽었다는 것이다.
시집을 읽다가 엄마에게 질문을 했단다. 내가 쓴 ‘혜란 √8’ 이란 시를 보여주며 “엄마 이게 무슨 기호예요?”라고. 엄마는 책을 건네받아 시를 다 읽어본 후 중학교 가면 배울 거라며 김 목사님이 다비다자매회를 섬긴 28년에 관한 것을 기호로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단다. √8이 뭐냐는 딸의 질문은 선주 자매의 모녀를 더욱 깊이 다비다로 안내하는 사인이 된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들이 다비다의 식구로 잘 정착하리라는 기대감이 든다. 그리고 내가 쓴 시에 관심을 가져준 나이 어린 독자가 생겨 고맙다. 기차는 어느새 원주역을 지나 제천역에 도착했다.
제천역에서 내려 예약해둔 1일 시티투어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동승한 여행 해설사는 제천은 겨울이면 시베리아처럼 춥다고 해서 ‘제베리아’라고 불린다고 했다. 내가 살던 대구는 여름에 아프리카처럼 더워서 ‘대프리카’라고 불리기에 무슨 의미인지 공감할 수 있었다. 위도 그 자체보다는 지형의 특성 때문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대구는 가마솥 같이 생긴 분지이고 제천은 어디를 가더라도 물과 산을 만나는 이중분지이니 그럴 것이다.
첫 일정으로 케이블카를 타고 청풍호에 둘러싸인 비봉산에 올랐다. 옅은 물안개가 오히려 강과 산과 마을이 어우러진 풍경을 수채화처럼 곱게 채색해주었다.
한정식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두 번째 일정으로 청풍나루에서 유람선을 탔다. 옥순봉과 구담봉의 절경을 보며 하하호호하며 사진을 찍는 큰언니들의 모습은 딱 수학여행 온 여고생들이었다. 약 40분의 유람 끝에 장회나루에 도착했다.
배에서 내리기 전 단체사진을 찍어줄 테니 모두 모이라고 했다. 구담봉을 배경으로 배의 난간을 잡고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는데, 거북이 모양의 구담봉이 사라지고 새로운 또 하나의 옥순봉이 솟아 있는 것이 아닌가? ‘필그림 바보’가 탄생하였다고? 옥순봉은 1548년, 단양 군수였던 퇴계 이황 선생이 청풍군에 배를 타고 다녀오다가 강변에 솟아 있는 멋진 바위산을 보고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희고 푸른 바위들이 마치 대나무 순 모양으로 천 여 척이나 힘차게 치솟아 있는 봉우리를 이루고 있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필그림 바보’가 된 김에 조금 더 나가야겠다. 큰언니들이 옥순봉처럼 멋있다는 나의 착각은 왠지 옥순봉을 절경이라고 극찬했던 퇴계 선생도 인정해줄 것 같다. 이번 여행에 동행한 10명 큰언니들의 이름에 ‘옥’(박정옥, 김옥희)이 두 자, ‘순’(박경순)이 한 자 들어 있으니까. 하하. 또한 1일 시티투어 참가 기념으로 퇴계 이황이 그려진 천원권의 갑절에 해당하는 2천 원짜리 제천 지역화폐를 한 장씩 받게 된 것도 예사롭지 않다. 하하.
청풍호 유람을 마치고 대기하고 있던 버스를 타고 출렁다리를 건너보러 갔다. 작년 10월에 개장한 남한강 최초의 출렁다리로서 청풍호를 가로지르는 다리다. 평지나 계단은 물론 흔들리는 출렁다리도 무서워하지 않고 걷는 큰언니들은 더 이상 70대가 아니었다.
마지막 일정은 역사 오랜 제천의 의림지를 둘러보는 것이었다. 의림지 주변엔 오랜 세월을 살며 가지를 비틀어 예술로 승화시킨 소나무들이 많았다. 오색단풍과 어우러져 더욱 멋있었다. 경로 우대의 나이가 된 나도, 필그림 언니들도 그들처럼 잎이 청청하고 서로 어울려 고난도 예술로 승화시키는 창조적인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했다.
저녁식사는 제천역 앞 칼국수 집에서 칼국수와 만둣국으로 했다. 11장의 지역화폐를 사용했다. 저녁 7시 28분에 제천역에서 청량리로 오는 무궁화호를 타기 위해 5번 플랫폼에 도착했다. 기차를 기다리는 필그림 가족들은 여행을 끝낸 지친 표정들이 아니었다. 유숙자 반장의 주도로 떠들기 시작한 그들은 이제 여행을 시작하려는 사람들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기차가 플랫폼에 들어서자 열차를 타기 위해 스텝을 밟듯 기분 좋게 달려가는 큰언니들의 모습. 그게 ‘다비다필그림’이다. 그렇다. 언제든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그분이 공급하는 에너지를 가진 자들의 모임이 아닌가?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고린도후서 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