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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自存)’에서 ‘관계(關係)’로 / 이영복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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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im 작성일18-06-18 11:41 조회8,46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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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존(自存)’에서 ‘관계(關係)’로

 

이영복 장로(본회 사무국장)

 

“스스로 있는 자”, 영어로는 “I am who I am”. 출애굽기 3장 14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이름이다. 모세가 출애굽의 소명을 받고 하나님께 이름을 물었을 때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것이다. 고등학교 때 교회에 처음 나가 성경을 접하면서 알게 된 이 하나님의 이름이 참으로 멋있고 신비스럽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후 “스스로 있는 자”나 “I am who I am"으로 번역된 이름이 표현이 하나님의 속성을 온전히 표현한 것이 아님을 이내 알게 되었다. 출애굽기 3장을 조금 더 읽어 내려가면서 이름 속에 숨겨진 비밀을 깨달은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이 크고 영화로운 것은 단지 스스로 존재하심, 즉 자존(自存)하신다는 데 머물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있기 때문이라는 비밀이다.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출애굽기 3:13~15)

 

실제로 하나님의 이름과 관련하여 출애굽기 3장 14절의 ‘스스로 있는 자’는 15절에서 아브라함, 이삭 등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의 하나님으로 확장된다. 이 관계라는 관점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좀 더 풀어보면 ‘스스로 있는 자’에서 ‘관계 속에서 계시는 자’ ‘I am who I am’ 보다는 ‘I will be who I will be’가 보다 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출애굽기를 기록한 히브리어에는 명확한 미래를 나타내는 조동사가 없어 문맥에 따라 현재와 미래 양쪽으로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강조하시며 출애굽을 주도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선언은 단순히 지금이 아니라 미래를 담보하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이름’이라는 표현에도 미래의 개념이 당연히 포함된다고 할 것이다.

 

나는 최근 이사야서 63장 16절 말씀을 묵상하며 이 말씀이 곧 출애굽기 3장 13~15절에 기록된 하나님 이름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나 주께서는 우리 아버지십니다. 비록 아브라함이 우리를 알지 못하고 이스라엘이 우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해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Father)시고 옛날부터 주의 이름은 ‘우리의 속량자(Redeemer)’이십니다.”(이사야 63:16, 우리말성경)

 

문득 약 20년 전 홍콩에서 직장 주재원으로 살던 때의 일이 떠오른다. 당시 아들이 초등학생이었는데 첼로 레슨을 받고 있었다. 아들은 레슨 받기를 싫어해서 자주 빼 먹었고 그럴 때마다 서로 티격태격하곤 했다. 하루는 아들이 집에 들어오면서 “나 오늘 랜섬(Ransom) 보고 왔어”하는 것이었다. “그래 잘했다. 레슨(lesson) 받고 왔구나!” 순간 아들은 당황하면서 “아니, 첼로 레슨 받고 온 게 아니고 ‘랜섬’ 영화 보고 왔다고...”

당시 개봉된 영화 제목 ‘랜섬’을 ‘레슨’으로 잘못 들은 것이다. 순간, 영화 속에서 납치된 아들의 몸값이란 의미로 사용된 ‘랜섬’이란 단어가 십자가에서 구원을 위해 이루신 예수님의 대속을 의미하는 단어로 다가왔다. 그렇다. 아들에게 있어서도 레슨은 율법이고 숙제였다면 랜섬은 은혜고 놀이였던 것이다.

“랜섬을 레슨으로 듣지 않고 레슨도 랜섬으로 듣는 것”, 어쩌면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방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에게나 다비다 가족들에게나 ‘내가 무엇을 해내기 위한 훈련으로서의 레슨’보다 ‘그리스도의 대속 또는 속량의 은혜인 랜섬’이 먼저인 일상의 삶이 되기를 소원한다. 영적인 그 어떤 레슨도 그분의 대속, 곧 랜섬 안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랜섬이야 말로 자존보다는 관계를 중시하신 하나님 사랑의 절정이요 관계의 회복을 위한 유일한 길인 것이다.

 

나는 이사야 63장 16절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에 관계 속에서 함께하시는 지고의 사랑이 담겨 있음을 묵상하며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수밖에 없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는 이사야 43장 21절 말씀이 이사야서 63장 16절 말씀에 부딪쳐 메아리(echo)치는 듯한 마음의 전율이 일었다고나 할까.

이 칼럼의 제목으로 삼은 <‘자존’에서 ‘관계’로는>은 일찍이 1994년 1월에 그리스도의 사랑에 바탕을 두고 싱글맘도 행복한 세상’을 꿈꾸며 설립된 다비다자매회의 방향성이기도 하다는 것을 새삼 확인해 본다. ‘혼자’에서 벗어나 서로 도우며 ‘함께’ 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부디 다비다자매회라는 이름은 감춰질지언정 우리의 아버지요, 속량자 되시는 오직 그분의 이름은 끝까지 남기를 소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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