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다비다 엄마 1호, 나는 다비다 자녀 1호 / 김혜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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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09-04 15:55 조회9,39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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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다비다 엄마 1호, 나는 다비다 자녀 1호
김혜란 목사(다비다자매회장)
“엄마는 다비다 엄마 1호, 나는 다비다 자녀 1호.”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 아들이 한 말이다. 엄마들이 자녀들로 인하여 마음의 고통을 받고 힘들어 하는 다비다 엄마들에게 나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장가가고 자식 낳을 나이 35세까지 꾹 참고 기다려보세요.” 라고 말하곤 한다.
우리 아들도 장가가고 아기 아빠가 되는 시간까지 끝없는 방황의 수레바퀴를 돌리던 아들이다. 이 방황이 언제나 끝이 날까? 결코 끝날 것 같지 않아 얼마나 안타깝고 답답했던가... 그러나 그 아들이 지금은 아내와 함께 신앙생활을 잘 하며 성실한 남편, 믿음직한 아빠가 되었고, 뉴질랜드에 찾아온 한국 청년들을 돌보는 일을 자원하여 즐겁게 섬기는 일까지 하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 어린 나이에 갑작스럽게 철썩 같이 믿었던 아빠를 잃고 나름 자신의 외로움과 답답함을 그런 식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을 아들. 엄마가 바라는 대로 성장하지 못한다 하여 이해는커녕 늘 책망하며 인정해 주지 않았기에 아들은 자기 마음 알아주는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밖으로만 나돌았다.
‘싱글맘 뉴라이프 스쿨’ 강사로 오셨던 문경보 소장님의 말씀에 소위 문제아라고 불리는 청소년들이 다니는 특수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너희들도 엄마를 사랑하느냐?”고 물었더니 펑펑 울면서 엄마를 사랑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비록 모범적으로 학교생활을 하지 못하고 학교에서나 집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아이들이었지만 그들은 거친 행동 속에서도 ‘엄마’라는 단어를 더욱 그리워하며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득, 오래전 아들의 친구들이 나를 만나면 “어머님, 효성이가 늘 엄마 걱정 많이 해요.”라고 나에게 말해 주었던 것이 기억난다. 우리 아들도 엄마와 마음이 통하지 않아 얼굴 마주치길 피했으나 속으로는 엄마를 사랑했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한 아들이었기에 다비다자녀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어 자신의 경험을 다른 다비다자녀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한다.
군대에서 갓 제대한 어느 다비다 청년의 진로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아들과 통화를 하게 했다. 그때 아들이 한 말, “우리 어머니는 다비다 엄마 1호, 나는 다비다 자녀 1호이잖아요.” 그 의미는 우리 어머니가 다비다 엄마들을 사랑으로 섬기듯 나는 자녀들을 그렇게 섬기고 싶다는 고백인 것이다.
고맙고 다행스럽다. 아들이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그것은 한국사회에 적응하기 힘들고 미래에 대한 소망이 없어 힘들어 하는 청년들이 뉴질랜드의 넓고 아름다운 땅에 와서 새로운 희망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고 했다. 다른 누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자신이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다른 청년들에게도 그런 기회를 주고 싶다고 했다.
나의 아들과 딸은 엄마가 하고 있는 다비다 사역을 귀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도 그렇게 살고 싶어 한다. 내 아들과 딸들이 인정해주고 이해해 주고 자랑스러워한다면 그보다 다행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나?
우리 모든 자매님들도 부디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행복을 누리는 어머니들이 되길 바란다. 그러한 어머니의 삶을 바라보면서 자녀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여주리라 생각한다. 하나는 어머니의 하시는 일이 혹 이해되지 않고 마음에 흡족하지 않더라도 “어머니가 하시는 일을 뛰어넘어서 훨씬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애를 써야 되겠다.”라는 반응이고, 다른 하나는 어머니가 하시는 일을 보면서 “굉장히 보람 있는 일을 하시는구나. 내가 지금까지 어머니를 높게 안 봤는데 그게 아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가업을 이어받으려고 하는 반응일 것이다.
어떤 일을 하든지 아이들에게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엄마가 자녀들을 큰 사람으로 만들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비다자매님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지금 하고 있는 일들에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사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당당하게 보여주시길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