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옥의 삶과 하나님의 은혜 / 박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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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im 작성일24-04-11 13:01 조회4,57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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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옥의 삶과 하나님의 은혜
박정옥
안녕하세요. 저는 필그림 반의 박정옥이라고 합니다. 삶의 나눔을 부탁받고 나의 일대기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결코 순탄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결코 여기에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없는 제 삶을 얘기해보려 합니다.
소싯적 한 동네에 사는 남자에게 중매로 시집갔습니다. 시어머니의 혹독한 시집살이를 어린 나이에 어찌 견뎠는지 바로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네요. 1998년 7월 시어머니가 소천하신 후 당뇨와 뇌경색, 심근경색 등 여러 가지 병을 달고 사는 남편 병수발은 시어머니의 시집살이 못지않게 나를 곤경에 빠뜨렸지요.
의사 선생님의 주의하라는 말도 무시한 채 식이요법은 물론 퇴원도 남편 마음대로 해버리니 의사 선생님들도 손을 들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어요. 죽음을 재촉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렇게 청개구리처럼 진상의 환자노릇을 했겠어요. 남편은 입원과 퇴원 등을 수없이 반복하다 급기야는 119 구급차까지 불렀지요.
이런 와중에 친정어머니께서 편찮으신데 남편 간병으로 자주 가뵙질 못하여 전전긍긍할 즈음 어머니의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한동네에 살면서도 어머니의 병환에 소홀했던 자책으로 울면서 병실의 남편을 간호사에게 부탁하고 어떻게 갔는지 기억을 못할 정도로 기진맥진하여 친정집에 당도해보니 벌써 돌아가신 뒤였죠.
가까운 데서 시집살이를 하는 막내딸의 삶을 보시면서 얼마나 속이 상하셨을까 생각하면 저는 이런 불효녀는 없을 거라 자책했죠. 그때가 2000년 2월이었고 5개월 뒤, 가려서 먹어도 위태로운 남편이 자기 마음대로 먹더니 이 세상을 떠나대요. 큰딸만 빼고 아직 결혼하지 않은 두 아이도 있는데 저 혼자 어떡하라고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느낌을 그때 처음으로 체험했어요. 그러고 보니 3년이 채 못 되어 네 분의 장례를 치른 셈이죠.
그런데 큰일을 연거푸 치르다보니 그러려니 했지만 제 얼굴이 너무 안 좋은 것을 보고 출가한 딸의 권유로 동네 병원에 갔더니 큰 병원으로 빨리 가보라며 소견서를 써 주는 거예요.
저의 투병생활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병명은 심방중격결손증이었어요.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다.”라는 표현을 쓰며 의사 선생님은 이런 몸 상태로 어찌 견뎠냐며 놀라워했습니다. 식구들의 권유로 결국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피가 모자라 식구들을 다 대동하였는데도 맞는 혈액이 없어 쩔쩔 매고 있을 때 마침 목사님이 전화가 와서 교회 청년들에게 광고하여 5명의 수혈을 받아 무사히 마치게 되었답니다.
15년 전 어깨에 큰 힘줄이 끊어져 수술한 적이 있는데요. 얼마 전부터 그곳이 다시 쑤시고 아파서 잠을 못 잤는데 아들이 무심히 넘기지 않고 팔을 고쳐주겠다며 CT며 MRI 촬영까지 다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은 심장 수술한 것 등을 지적하시며 나이가 많아 수술을 못해주고 진통제 등으로 참으며 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막막하고 괴로운 밤을 지새우던 중 또 다시 목사님께서 안부전화를 주셔서 사정을 들으시고 중보기도를 성도들께 부탁한 거예요. 그래서인지 지금은 팔도 안 아프고 등 시리고 발 시린 증상도 많이 좋아졌답니다.
꼭 필요할 때 목사님을 통해 도움을 받게 해 주시는 ‘나의 주 하나님’을 제가 어찌 신뢰하고 믿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다비다자매님 여러분! 신실하신 주님을 믿고 기도합시다. 중보기도의 능력을 믿고 주님께 모든 걸 맡깁시다. 특히 다비다 필그림 반에서 주님의 사랑을 느끼며 즐겁게 지내고 있어 마냥 행복합니다. 천국의 소망을 꿈꾸는 박정옥의 일생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