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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 / 김현숙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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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im 작성일21-06-10 13:10 조회17,75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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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

 

김현숙 전도사(나룻배터 선교회 대표)

 

“절망의 끝 그 너머를 바라보며...사명자의 삶을 사는 기쁨을 얻다.”

 

담장을 넘은 넝쿨 장미가 예쁜 계절이다. 아주 특별한 모임, 다비다자매회의 새 가족이 된 지 어느새 1년이 되었다. 한 살짜리 아장걸음이지만 27살 청년이 된 싱글 맘들과의 애정표현도 이젠 낯설지 않다. 조금씩 간격을 좁히며 정분을 쌓는 이때 은혜로 채워둔 추억상자를 열어보는 시간을 주심이 감사했다. 자매들을 향해 이야기할 수 있는 히스토리는 주님이 던져주신 문제를 열심히 풀어보니 풀 수 없는 문제는 없었다는 이야기뿐이다. 그 근간은 대물림 신앙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고, 할머니로부터 믿음의 계승자로 살아온 신앙의 뿌리가 든든한 피난처 역할을 해주었으며 부모님이 쏟으신 큰 사랑이라 생각된다.

모태라고 하지만 미성숙 신앙으로 살다 삼십이 다 돼서야 회심한 후 그 당시로는 조금 늦은 나이에 시집을 갔다. 우상숭배를 하며 미신을 섬기는 불신가정이라 반대하신 어머니 만류에도 불구하고 교인이라는 소리에 교제한지 6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별일 없이 남매를 낳고 가정이란 울타리를 엮어가던 중 승산 있는 사업이라 믿고 뛰어든 남편 사업터에 부도사태가 터졌다. 던져진 문제지를 받아들고 풀어야 할 숙제를 남편과 열심히 믿음으로 풀기 시작했지만 풀수록 문제에 한계가 생겼다. 급기야는 미국에 사시는 시어머니의 지원으로 분양받은 널찍한 아파트가 몇 년이 못돼 남 소유가 되었고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잃어 아무것도 없이 혹독한 가난의 겨우살이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시작된 새벽기도는 엉뚱한 터닝 포인트가 되면서 ‘신학교 입학’이란 부르심으로 답을 주셨다.

 

자타가 인정한 모범적 신앙이 부끄러워지며 신앙을 점검하는 계기를 삼고자 신학을 공부하던 중 유치원 교사의 이력으로 의도치 않게 교육전도사 요청을 받고 사역자로 첫발을 내디뎠다. 주님은 경제적 회복보다는 먼저 영적회복의 숙제를 풀게 하신 후 확실한 사명을 주셨다. 빚쟁이를 피해 노숙자처럼 살던 남편 영향 때문인지 시립병원의 알콜릭 행려환자 등 소외계층들이 늘 마음 한 곳에 있었기에 병원을 찾아 그들을 섬기게 하셨고 특수 목회인 자비량 병원 사역을 시작케 하신 것이다.

 

친지의 배려로 임시 장막에 살면서 조금씩 회복된 사업으로 모두가 어려운 IMF 터널도 비켜가며 빚을 갚고 조그만 아파트도 선물 받았다. 그러나 안일한 교만함일까? 생각지도 않은 더 큰 문제가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바로 남편의 영적 문제였다. 또다시 광야로 내몰린 남편은 예배를 중단하고 조상이 섬긴 우상숭배를 하면서 주님과 가족들에게 등 돌리는 황당한 일을 벌였다. 사업은 망하고 다시 많은 빚이 쌓이면서 자녀들에게도 쉽게 아물지 않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 증오의 불길이 거세지며 잠을 잘 수가 없는 나날 속에 한 달간 맘속의 전쟁을 치르며 뒤늦게 정신을 차리니 남편 문제가 아니라 우리 가정에 완전 소탕하지 않은 가나안 일곱 족속의 잔존이 그렇게 버티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남편을 섬기지 못하고 교만했던 모습을 절절이 눈물로 회개한 후 사탄과의 치열한 영적 전투를 선포하고 아침 한 끼를 금식하며 입던 옷이 헐렁해지도록 밤낮으로 죽기 살기로 기도했다. 주님의 긍휼을 입어 어느새 증오가 사라졌다. 구원 받을 남편의 영혼을 위해 손을 들자 평안의 물결이 온몸을 감싸기 시작했고 승리의 깃발은 높이 들렸다.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지니 비로소 돌아온 탕자를 맞이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되었고 영적 눈을 가리게 한 들보를 보게 되었다. 사탄은 마침내 백기를 들었고 2년 동안 방황하던 남편은 돌아와 십자가 앞에 바로 섰으며 잎만 무성한 나무가 아닌 접붙임의 은혜로 참 감람나무가 되어 신앙의 꽃을 활짝 피우기 시작했다. 상상 못한 믿음으로 거룩한 영적일기를 써내려 가는 믿음의 아들이 되어 회복된 가정의 울타리는 더 견고해졌다. 그러나 승리감에 도취된 행복한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결혼기념일 특별히 아들이 만든 케이크를 선물 받은 기쁨도 잠시 조카 결혼식을 마치고 집에 온 남편은 느닷없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역으로 바쁘다며 그동안 남편을 등한시했던 죄를 회개하며 행복한 부부의 롤 모델이 되길 원했지만 주님은 왜 남편을 데려 가셨느냐는 문제 앞에 “why me?”를 수없이 던져보았다. 주님은 절망적인 호소에 색다른 사명의 길을 보여주시며 답을 주셨다.

내가 슬픔도 추스를 겨를 없이 바빴던 종합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의 전임 사역을 끝내고 요양병원으로 자리를 옮겨 호스피스 사역을 이어가다가 2018년에 병원을 퇴직하게 되자, 하나님은 14년부터 비전을 품게 하신 ‘나룻배터’란 이름으로 호스피스 사별가족 지원센터를 설립하게 하신 것이다. 아내를 먼저 보내고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던 남편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충격적 비보에 사별가족 케어의 중요성을 통감했다. 20년 간 병원 사역의 굳은살이 박였지만 선교회는 6월 1일이면 세 돌이다. 이제 걸음마 단계는 지났다. 뜻을 함께하며 뭉친 동역자들과 병원예배 사역과 호스피스 병동 그리고 사별가족을 지원하며 열심히 사역 중이다.

사역을 하다 보니 사별가족들에게 부족한 지원을 공급받을 수 있는 협력 기관이 필요해 찾던 중 너무나도 확실한 다비다 자매들을 만난 것은 주님의 큰 은혜다. 가을이면 결혼기념일에 남편과 여행을 즐겼던 가슴 저미는 추억으로 외로워하는 나. 먼 여행길 혼자 떠나간 남편을 그리워하며 멈춰버린 여행길에서 서성대는 모습이 안쓰러우셨는지 하나님은 동병상련의 맘으로 함께 길동무해주는 자매들을 만나게 해주셨다.

 

사랑 행보를 기대하며 찾는 다비다의 품은 포근하다. 27년을 한결같이 사역하신 김혜란 목사님이 걸어가신 그 사명의 길을 모방하며 걸어가 보련다. 사명의 길이 만만치 않지만 여전히 주어지는 문제를 풀어내며 묵묵히 그 길을 걸을 것이다. 이젠 마지막 과제가 남은 것 같다. 호스피스 쉼터를 세우는 일이다. 임시로 암 환우이신 선교사들을 위한 쉼터를 영종도에 만들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잠시 멈춰진 채 혼자 관리 중이다.

 

믿음의 망대가 세워지기까지 단련하신 고되고 힘든 훈련이었지만 단단한 무장을 한 영적군사로서 정금 같은 믿음의 삶을 살게 된 것이야말로 돌아보니 엄청난 축복이다. 이제 남편 없이 산 세월 만 10년이 지났다. 상처로 방황하며 맘몬을 섬기며 주님을 불신하던 아들은 거듭남의 역사로 멋진 신앙인이 되어 남편의 빈자리를 채우는 든든한 영적 파트너가 되었다. 딸은 기도한 대로 신앙의 명문 가문의 며느리가 되어 사모의 길을 걷고 있다. 외며느리의 희생을 고마워하신 시어머니는 늦게 믿은 것을 후회하셨지만 눈물의 기도는 목회자 셋을 둔 믿음의 가문을 만드셨고 남겨진 후손들이 대물림하고 있다. 속수무책으로 곁에서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죄책감에 한동안 우울을 경험한 10년 전 결혼기념일이 검은 상복을 입은 슬픈 추모일로 기억되지만 이젠 먼저 간 남편이 종종 부러울 때가 있다.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를 안고 살아가지만 저 너머 하늘 소망이 있기에 힘을 내본다. 내 것이 없기에 잃을 것도 없기 때문이다.

 

장미꽃 가시도 감사하며 저마다 아름다운 빛깔로 모인 다비다 자매들의 밝은 웃음소리가 담장 안에 가득하다. 그동안 어린 감람나무 같은 아이들이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그늘을 만들어 줌이 큰 행복이다. 일상 가운데 이 땅에서의 존재의 이유를 발견하며 부끄러움 없는 사명자로 살 것을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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