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테디오스 박선미 / 박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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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im 작성일20-03-06 15:09 조회22,10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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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테디오스 박선미
박선미
저는 선미조 조장인 박선미입니다. 그간 서산댁이라 불렸는데 이제는 서울로 이사를 와서 서울특별시민이 된 지 한 돌이 지났습니다. 저는 고3이 되는 잘 생긴 아들과 꼬맹이 숙녀랑 셋이서 그야말로 아주 오순도순 잘 살고 있습니다.
제가 혼자가 된 지가 벌써 14년이 됐습니다. 제 인생 중에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고 하면 믿으실까요? 저희 남편은 아이들 2살, 4살 때 뇌종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당시 남편은 중국에, 저는 아이들과 친정집에 살았습니다. 자정이 넘은 시각에 받은 전화에 얼마나 놀랬는지 지금도 밤늦은 시각에 벨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제가 오늘 하는 간증은 주제가 있습니다. 그동안 혼자가 되어 아이들을 키우느라 고생을 한 사람이 세상에 어디 저 혼자뿐이겠습니까? “내가 무얼 그리 잘못했기에 이 나이에 과부가 됐지?”하며 서러워서 눈물을 짓고. 저 어린 남매를 무엇을 해서 먹여 살릴 것인가 걱정되어 눈물을 짓고. 아이가 자꾸 친구들을 때리고 괴롭힌다는 선생님의 연락을 받고 저 아이가 도대체 커서 어찌 되려는지 걱정이 되어 눈물을 짓고. 사람들을 만날 때면 괜히 주눅이 들고 교회에서조차 괜스레 외로움을 타던 세월이 어디 저 혼자만 경험한 눈물의 하소연이었을까요?
저마다의 아픔을 갖고 여기까지 온 다비다 자매님들이 흘렸을 눈물을 정말 남들은 몰라줘도 오직 예수님 한 분만은 아실 거라 믿습니다. 그동안 제가 살아온 세월이 여러분과 별반 다르지 않고 저도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좌절되고 삶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그동안 어찌 살아왔는지는 다들 비슷할 거라 생각이 듭니다.
저는 애칭이 있는데 카카오톡 닉네임에도 이 애칭을 썼습니다. ‘무한상큼 박선미’라고. 좀 민망하네요. 낼모레 50을 바라보는 여자가 상큼이라니요. 지금도 여전히 ‘상큼아 상큼아’ 하고 불러주는 이들이 있습니다. 저는 혼자가 되어 구질구질하게 사는 인생이 참 싫었습니다. 오래전 친구 하나가 ‘무한상큼’ 하고 불러줬는데 그 단어와 느낌이 그야말로 신선해서 좋았지요. 구김살 없이 젊고 신선한 내가 되고 싶다는 심리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제 닉네임은 ‘티테디오스 박선미’로 바뀌었습니다. 티테디오스(Titedios)는 ‘염려하지 않는 사람’, ‘염려에서 해방된 자’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저는, 모든 걱정과 염려 두려움에서 살아오다 진정 예수님과 함께하면 그 염려까지 해방된 삶을 살 수 있음을 지난 일 년간 깊게 깨달은 은혜에 대해 들려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20년 전에 1형 당뇨 진단을 받고 평생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살 수 있는 운명을 받아 들여야만 했습니다. 여기 계신 우리 자매님들도 당뇨가 얼마나 피곤하고 지치고 힘들게 하는 질환인지 아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동안 “하나님 이 당뇨를 고쳐주소서.” 소리 질러 하나님께 기도를 안 해 봤을까요? 평생기도가 아마 이 당뇨질환을 고쳐달라는 기도였던 것 같습니다. 급성케토산증으로 크게 두 번의 죽을 고비도 넘겼고 수시로 찾아오는 저혈당 때문에 제 일상은 규칙적이지 못하였습니다. 아이들 식사준비에 많은 정성을 들이지 못하고 그야말로 부실한 엄마로 살아왔습니다.
제가 자주 듣는 칭찬의 소리가 있습니다. “선미 너는 정말 긍정적이야. 낙천적이야. 걱정 없이 아주 잘 살아.” 이런 말들이었습니다. 예전에 다니던 교회 목사님도 성도들 앞에서 박선미 집사는 애들을 혼자 키우면서도 저리 꿋꿋하게 잘 산다며 칭찬하시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속으로 “나는 고난 중에도 긍정적으로 걱정 없이 지내는 괜찮은 사람이야.” 라며 자만했습니다. 사실 저는 예수님과 무관하게 제 스스로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 성공한 인생이 되어보고자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애쓰고 노력했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버스를 타고 어디를 가는 길이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차창 밖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두려움과 염려가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나는 그저 가만히 있는데 왜 불안해지지? 맘속에서 염려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서울로 이사 왔는데 이제 뭘 해먹고 살지? 앞으로 애들 학원비는 어떡하나?” 나는 겉으로는 걱정 안하며 산다고 약간은 자신했지만 나의 깊은 무의식은 여전히 염려와 걱정 속에 있었던 겁니다. 그렇게 불안과 걱정은 정도를 달리하며 느닷없이 찾아오곤 했습니다.
작년에 서울로 이사를 오며 저는 다비다의 젊은 엄마들의 조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매주 화요일 다비다 큐티 모임에도 참석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깊은 말씀에 빠져본 적이 없는 저로선 큐티 참석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시 감사가 회복되고 이렇게 주님께서 맺어준 자매들이 있음에 너무 감사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보고 큐티를 하는데도 자신도 모르게 걱정하는 습관이 오래되어서 그런지 금세 하루아침에 바뀌어 지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하나님과 친해지니까 걱정염려마귀가 나를 시험하나?” 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늘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김혜란 목사님의 권면, 그리고 염려하지 말라는 제목의 좋은 설교 영상들을 들으며 차츰 “주님은 내가 기뻐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산책을 하며 만나게 되는 하늘과 나무와 풀, 꽃들을 보며 저절로 내 안에서 주님을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꽃들과 함께 말이죠.
다비다 큐티에서 말씀을 전해주시는 이영복 국장님 설교의 마무리는 주님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겁니다. 저는 저 스스로를 별로라고 여기고 도무지 맘에 들지도 않고, 사랑받을 만한 것 하나 없는데 조건을 따지지 않고 저를 사랑한다니요. 그리고 저에게 수없이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예수를 믿기 시작한 20년 전부터 항상 보았던 말씀이 눈에 들어오고 그 말씀이 믿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왜 저는 그 말씀을 그전부터 수없이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제 삶에서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던 걸까요? 그것은 제가 눈으로만 보았기 때문입니다. 마치 하나님의 말씀을 오늘 처음 만나는 것처럼 말씀의 의미가 가슴에 꽂혔습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신다는 게 바로 이런 것이구나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일 년간 아무 일을 하지 않으며 지내왔다고 하지만 사실 내 안에서는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냥 믿어지는 거예요. 예수님이, 말씀이 그냥 믿어지는 겁니다. “내가 믿어야지. 내가 주체가 되어 믿어야지.” 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그분이 이제는 제 삶의 완전한 주인이 되시고 예수님은 저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신뢰가 확신이 되었습니다.
‘내 인생에 내가 주인 되어 내 맘대로 내 뜻대로’가 되지 않아 그동안 짜증이 났습니다. 죽은 자도 살리신 능력 많은 분이 왜 내 당뇨는 못 고쳐주시나 불평했습니다. 세상에 그 많은 금은보화 내게 좀 주시면 안 되나 서운하기도 했습니다. 남들은 재혼도 잘해서 잘만 산다는데 어디 보아스 같은 사람은 없나 두리번거리기도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 있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이제 저의 노래가 되었습니다. 가만히 과거에 제가 드렸던 기도를 생각했습니다. “아버지 이 당뇨를 고쳐주세요! 너무 힘들고 괴로워요. 아버지께서 고쳐 주실 줄 믿습니다.” 그동안 저의 기도는 이랬습니다. 감사의 기도가 아니라 사실은 엄청난 불평이 담긴 기도였습니다. “자다가 저혈당으로 죽으면 어떡해요. 불안하니 좀 고쳐주세요.”
그런데 데살로니가전서의 말씀처럼 “항상 기뻐하며 감사하며 기도하자.”라고 마음을 먹으니 감사가 어렵지 않았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당뇨가 저를 평생 옥죄는 사슬처럼 느껴졌는데 어느 날부터 당뇨가 있음이 감사로 여겨졌습니다.
저는 오래된 당뇨로 인해 근로무능력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 덕에 일을 하지 않아도 생계급여가 나옵니다. 쌀도 나옵니다. 아이들 교육비도 공짜구요. 이렇게 일을 안 하는데도 복지가 좋은 우리나라에 감사하고 모든 게 감사합니다.
또한 그 덕에 매주 화요일이면 다비다 큐티에서 은혜를 나누니 이 또한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인’인 것을 인정하고 모든 것을 감사로 여기니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그렇다고 염려나 걱정이 왜 한 번도 올라오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 염려도 잠시. “아, 몰라요 주님이 알아서 해주세요.” 하며 그 걱정을 주님께 슬그머니 밀어냅니다. 주님은 이렇게 무거운 짐을 지어주는 걸 좋아하시나 봐요.
불평이 담긴 기도가 감사의 기도로 바뀌니 저의 삶은 이제 부족한 것도 불평할 것도 없는 감사한 삶입니다. 고3인 아들이 여자 친구한테 빠져 공부를 좀 소홀히 해도 감사하고, 딸아이가 징징거리며 무얼 사달라고 졸라도 감사합니다.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감사로 승화시키니 제 맘이 이렇게 홀가분해질 수가 없습니다.
지난달에 간증을 하였던 송영순 자매님은 오랜 시간을 혼자 고립된 채 살아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 그녀의 일상은 하루가 너무 짧다고 했습니다. 큐티를 하며 말씀을 묵상하는 게 즐겁고 돈을 안 벌고 있는데 걱정도 안 되고 하루가 지루할 틈도 없이 후딱 지나간다고 했습니다.
영순 자매님의 그 깨달음이 저한테 확 느껴지는 게 너무 감동이 되었습니다. 우울과 염려 속에서 살았던 자매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하루의 일상을 그렇게 기쁘게 보낼 수 있을까요?
티테디오스. 염려에서 해방된 자. 성령이 충만했던 초대교회에서는 성도들 이름 앞에 이 ‘티테디오스’를 붙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피 값으로 구원받은 우리는 세상의 모든 염려에서 해방시키신 그분께 감사함으로 나아가는 은혜 입은 자라는 거지요.
맛있는 초밥이 먹고 싶은데 돈이 없어도 저는 걱정을 안 합니다. 왜냐면 다비다자매회에는 밥 잘 사주는 예쁜 언니 티테디오스 김혜란 목사님이 계시기 때문이지요.
티테디오스 박미자, 티테디오스 허진. 여러분들의 이름 앞에 ‘티테디오스’를 붙여봅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염려가 되고 걱정도 되셨을 텐데 이렇게 이 자리에 오신 것도 저는 주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십여 년 전에 다비다자매회를 알았지만 세상 사는 것에 바빠 이 모임의 귀중함을 몰랐습니다. 제가 선미조의 조장을 맡았지만 늘 조원들에게 미안하고 송구한 마음이 큽니다. 그런데 저희 조원들은 사랑이 많아 늘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함께 같이 이 길을 가는 김혜란 목사님, 이영복 국장님, 그리고 다비다 자매님들 모두 감사합니다.
끝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일깨워 주는 말씀 구절로 저의 간증을 맺을까 합니다. 고린도후서 6장 10절 말씀입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우리 다비다자매님들은 항상 기뻐하고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감사합니다.
* 2020년 2월 22일 다비다정기모임에서 했던 간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