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 이야기 / 유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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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im 작성일20-11-11 11:16 조회19,66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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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 이야기
유숙자
“엄마~~ 도와주세요!” 가산요양원 실내를 쩌렁쩌렁 울리는 그 목소리에는 힘이 있다. 야심한 밤이라 조용한 분위기 탓도 있으리라. 나는 “픽!” 웃음이 터졌다. 오늘 밤도 안심해도 되겠다. 옛날부터 “노인 목소리가 우렁차면 아직 돌아가시려면 멀었네.”하지 않았던가?
힘없이 고개를 옆으로 떨어뜨리고 숨소리도 들리지 않게 주무시던 그제 밤엔 얼마나 가슴이 덜컹했던가? 코에 손가락을 대보고 그것도 믿기지 않아 혈압과 체온체크를 하고 기저귀도 볼 겸 옆으로 뒤집어 보았을 때 “아야~~ 아파~~ 살려주세요.” 하는 깜짝 놀랄 정도의 큰 목소리. 그제야 안도하며 나오지 않았던가?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팔이 부러져 수술 받고 몇 달을 고생 끝에 완쾌되어 당당함을 잃지 않고 계셨는데, 무심코 변기에 툭 앉으시다가 고관절이 부러져 코로나 19가 온 나라를 휩쓸고 있을 때 위험을 무릎 쓰고 병원을 찾았으나 연세가 95세로 너무 연로하시다는 이유로 수술도 거절당하시고 약만 처방 받아 왔던 분이다.
치매도 심하시지만 바싹 야윈 작은 몸에 설상가상으로 식사를 거부하실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땐 하모닐란(콧줄을 사용하는 환자에게 투입하는 고단백액)을 드리고 그것도 거부하실 땐 고혈압 약만 겨우 드릴 뿐, 독한 약을 빈속에 드릴 수 없어 약을 안 드린 날은 통증을 느끼시나보다.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제가 뭘 잘못했나요?” 복도 끝까지 울려 퍼지는 멘트에 우린 한편으론 안도하게 된다.
젊은 시절 주님과 동행하시며 40년 동안 2개의 교회를 개척하셨고 26세 어린 청춘 나이에 아들 하나 달랑 남겨두고 하늘나라로 떠나버린 남편 몫까지 억척스럽게 전도사 사역 그 이상을 주님의 충실한 종으로 사역에만 몰두하시어 지금은 그 교회가 아주 엄청 큰 교회로 성장해 있단다.
성품이 대쪽 같으시고 독립심이 강한 생활 철학으로 그 연세에 남의 손은 절대 빌리지 않으시고 꿋꿋하게 사셨는데 작년에 팔이 부러져 수술하시고 겨우 완쾌될 무렵 고관절이 부러지시니 어쩔 수 없게 되신 것이다. 이젠 우리 모든 쌤들을 엄마라고 부르신다.
오늘 주일 낮엔 “내 평생 소원” 찬양을 끝 소절까지 부르신다. “우릴 위해 기도해 주세요.”라고 했더니 이름을 물으신다. 조그마한 눈 속의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반짝반짝 맑은 수정과 같은 젊은 빛이 있다.
불쏘시개 같은 육체만 보고 날마다 “혹시 오늘은?” 하고 마음 졸였던 건 나의 기우였다. 역시 하얗게 퇴색해 버린 뇌세포완 관계없이 하나님을 꽉 붙들고 계시니 영혼은 육신의 나이와 상관이 없고 날마다 새로운 옷으로 갈아 입혀 주실 것을 믿고 또 믿어야 되는 게 아닌가 싶다.
반으로 잘라 만든 극세사 담뇨가 하도 냄새가 나서 살짝 빨았더니 “내 담뇨 어디 갔느냐?”고 호통 치시던 전도사님. 놀라 급한 김에 살짝 덜 마른 담뇨를 걷어다 드리니 왜 함부로 내 것에 손을 대었느냐며 분을 참지 못하시던 작년의 그 전도사님의 모습이 차라리 그립다. 수술도 거절당하고 누워계시며 재산 목록 1호인 담뇨와 성경책의 애착도 끊어지신 지금의 전도사님 모습은 아기 천사의 모습으로 변해 가신다. 날개만 달면 훨훨 날아가 버리실 것처럼 가볍고 작아지는 육신. 진짜 하나님께서 날개를 주시러 오시려나?
오늘도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더욱 더 크게 뜨고 전도사님 방 앞을 서성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