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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께 순종하며 멍청이 같이 기다립시다 / 송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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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im 작성일17-10-23 17:40 조회27,8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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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선애 교수님 방문후기>

그분께 순종하며 멍청이 같이 기다립시다

송선희

여름의 끝자락 가을의 문턱은 참으로 고요하다. 흐르는 강물조차 침묵하는 이 고요가 있는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계절넘이를 나는 좋아한다. 축 쳐지지도 그렇다고 들뜨지도 않는 평온한 계절넘이를 앓고 있던 차에 목사님께서 늘 존경하는 주선애 교수님을 방문하신다기에 주저 없이 따라 나서게 되었다. 아름다운 자연과 영성 깊은 교수님에게 나의 고요해진 마음의 귀를 기울이고 싶어서다.

양평을 지나서 용문산 자락 초입에 자리 잡고 있는 안식관을 향해 차는 달리고 있었다. 예쁘고 정취가 있는 좁은 오솔길을 따라 가보니 아담하고 정갈한 모습의 안식관에 도착하게 되었다. 안식관은 은퇴하신 여교역자들의 노년을 위한 안식처로 주선애 교수님과 여러분이 함께 세우신 곳이라고 한다.

우리 일행은 안식관 가족들이 주변 텃밭에서 직접 재배한 채소들로 정갈하게 차려 주신 음식으로 교수님과 함께 행복한 식사를 하게 되었다. 식사를 마친 후 주 교수님이 안내해 주신 예쁜 카페로 자리를 옮겨 담백하게 물 흐르듯이 말씀하시는 교수님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지며 한 마디도 놓치지 않기 위해 드문드문 녹음을 하면서 경청하기도 하였다.

만 93세이신 교수님은 당신께서 살아오신 삶은 마치 물위에 띄워진 단풍잎처럼 당신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께 밀려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하셨다. 자신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하다 보니 숭실대학과 장신대 교수직을 맡기셨고, 울면서 하지 않으려는 여전도회 회장직을 두 번이나 맡기셨으며, 그 외에도 YWCA 회장직 등등 여러 분야에 걸쳐 한국교회와 한국사회의 여성 지도자로 세워주셨다고 하셨다.

교수님은 내성적이며 조용하신 성품이라고 하신다. 그런데 그런 분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한국교회와 사회의 큰 리더로 세우시고 이끄시고 인도해 주셨는지 담담히 말씀해 주셨다. 말씀 중간 중간 내 모든 삶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 진 것이라고 말씀하실 때는 조용한 음성임에도 큰 힘이 실려 있었다.

안식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두물머리가 있다. 두물머리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함께 만나서 합쳐지는 곳이다. 그 두 강물이 합쳐져서 위의 표면에서는 고요히 흐르는 듯해도 물 밑에서는 역동적으로 흐르리라. 문득 교수님의 삶이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선애 교수님의 삶에 합력하셔서 두물머리의 큰 강물처럼 도도히 흐르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는 진정 멋지신 아버지이시다. 교수님에게서 자연스럽게 풍겨 나오는 인간의 품위는 곧 하나님께서 우리를 최종적으로 완성하고 싶으신 모습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93년을 하나님과 함께 사신 주 교수님은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원하시나?”를 알기 위해 항상 깨어 있어야 하며 나이가 들어도 살아있는 동안 날마다 성숙해져 가야 하는 게 우리의 인생이라는 점을 강조하시며 거기에 꼭 겸손을 더하라고 하셨다. 겸손은 인격 발전의 중요 요소라고 하셨다.

우리는 주선애 교수님의 93년 인생 스토리를 마치 하나님께서 만드신 명화 한 편을 보는 것처럼 눈물을 훔치며 감동 깊게 보고 돌아왔다. 그 감동은 왜 이렇게 진한 걸까? 실재이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하나님의 또 다른 많은 작품들을 기대해본다. 한 사람의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그 품위 있는 이야기들. 하나님의 “레디”, “액션”의 소리로 우리의 온 몸과 영혼의 촉각을 깨우며 하나님께서 써 내려가실 나와 우리의 이야기를 소망하면서 그때에 볼 수 있을 나와 우리의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함께 동행 했던 김혜란 목사님의 모습, 이영복 장로님의 모습, 애순 자매의 모습, 나의 모습, 다비다식구들의 모습...

주선애 교수님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세 글자의 단어가 나의 귓전을 내내 울렸다. 멍.청.이. “멍청이 같이 기다립시다. 그분께서 하심을 믿고 말입니다.” 그렇다. 주 교수님은 당신의 말씀대로 구제불능의 최고의 멍청이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다릴 줄 아는 우직한 지혜자이셨다. 달력의 시간인 크로노스의 시간을 넘어 주님이 믿는 자의 삶 가운데 의미를 가지고 만들어주시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기다릴 줄 아는 교수님이야말로 영원한 신랑 되신 주님의 아름다운 신부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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