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의 징검다리 / 김영경
페이지 정보
작성자 kim 작성일19-04-17 12:23 조회24,803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은총의 징검다리
김영경
나에게 7년간의 결혼생활은 준비가 안 된 두 사람이 펼친 억울한 시간이었다. 살갑게 다가온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고 인생을 같이 가기로 했다. 여러 가지 약속이 하나둘 깨어져 가는 가운데 실망감은 커지기만 했다. 서로 바라는 인생의 가치가 너무 달랐다. 모든 기대가 사라지고 가정생활은 성실했으나 친밀감과 따사로움이 없었다. 무미건조한 일상이었다. 그런 가운데 남편에게 여자가 생기고 그 여자로 인해 많은 빚을 졌다. 나는 배신감도 컸고 월세 보증금도 없이 시작한 신혼이라 그동안 가난을 극복하려 애쓴 것이 너무도 억울했다. 아이들과 같이 또다시 그 지독한 가난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선택은 갈라서는 것이었다. 정신병이 재발해 심리적으로 힘든 상황에 남편의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들의 친권자가 되어 양육하게 되었다. 아이들 양육은 나에게 지상 명령 같은 사명이었다. 어려서 내가 받아 보지 못했던 보살핌을 아이들에겐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모든 삶의 중심에 아이들이 있었다. 지금 와서 보면 실수도 있었다. 그때 상황에서는 나의 최선이었다. 특히 아이들의 신앙에 공을 많이 들였다. 인생의 험산 준령을 넘을 때 꼭 필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동행임을 알려주고 싶었다. 아이들은 건강히 잘 자라 주었다. 여러 선생님의 도움이 컸다.
가사 도우미로 일을 했다. 몇 년간의 힘든 일 때문에 두 무릎의 연골판이 찢어져 강남 힘찬 병원에서 관절 내시경 시술을 받았다. 많은 경비가 필요했음에도 무료로 치료해주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2004년부터 수급권자가 되어 나라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영구 임대 아파트에도 입주하였다. 주거가 안정되고 나는 힘든 노동에서 벗어났다.
지금은 남서울 중앙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원로목사님, 담임목사님의 관심 속에서 나의 영성이 조금씩 자라가고 있다. ‘다비다자매회’라는 싱글맘 공동체를 극동방송을 듣다 알게 되었다. 기독교 정신으로 치유와 회복,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모임이다. 나와 같은 상황의 사람들을 만나 서로를 공감하고 격려도 해주니 큰 힘이 된다. 회장인 김 목사님은 지난 24년간 이 모임을 이끌고 있는데 사랑과 헌신으로 싱글맘들을 섬기고 있다. 항상 기도와 행동으로 선한 영향력을 나에게 끼치고 있다. 나에게 중요한 공동체이다.
2000년도부터 현재까지 나의 정신병을 치료해 주시는 아산병원 K 과장님께 감사를 드린다. 항상 변함없이 자상하시고 인정 많으신 분이시다. 나는 요즘 비만으로 인해 고혈압, 당뇨병을 앓고 있다. 의료보호 덕분에 잘 치료받고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아이들이 20대가 된 지금 오히려 나의 손이 많이 가는 느낌이다. 어릴 적 잘 자라고 모범적이어서 항상 마음속의 자랑거리였던 두 아이, 그런 아이들이 청소년기를 요란하게 거쳐 갔다. 특목고에 진학했던 큰아이가 체력이 약해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작은아이도 예민하게 되어 두 아이의 갈등이 3년 정도 심하게 있었다. 어른들 싸움보다도 더 치열했다. 집에 세간이 남아 있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 두 아이의 불화를 보면서 나의 양육에 회의를 느꼈다. 아이들이 독립을 원한 동시에 나도 마음으로부터 아이들을 떠나보냈다. 그리고 나의 삶을 되돌아보았다. 심한 회의와 허무가 찾아왔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말씀을 배우고 가까운 양재천에 나가 자연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나 혼자서 견뎌내야 했던 고독한 시간이었다.
나의 40대는 아이들의 사춘기와 맞물려 갈등과 관계 회복,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었다. 아이들은 이제 서로를 인정하고 챙겨주고 자신의 갈 길을 찾아 힘쓰고 있다. 평화가 찾아왔다. 나도 그동안 소홀히 했던 나를 다독여주고 꿈을 찾아가는 길이다. 몸은 여러 질병으로 치료가 필요하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부유하다. 가난한 가운데서도 풍요로움을 누리는 충만한 삶, 나는 지금 은총의 징검다리를 건너는 중이다.
* <작은나귀> 책을 낸 김영경 자매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정리하고 또 다시 새로운 앞날을 향해 나아가는 계기로 삼고자 서울 ‘강남구립즐거운도서관’에서 개설한 ‘자서전 쓰기’ 수강을 끝내고 자서전을 썼습니다. 이 글은 네 번째 연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