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살아갈 힘을 주시는 주님의 은혜 / 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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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im 작성일18-12-19 15:59 조회25,85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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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캠프 참가소감>
매일 살아갈 힘을 주시는 주님의 은혜
허 진
남편과의 사별 10개월을 지나는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제 마음의 요동함으로 인해 무언가를 정리해서 글로 표현하는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행복 캠프가 끝나고 이영복 장로님이 소감문을 써보라고 해서, 하나님께서 분주한 제 상황을 글로 정리해보고 다시 마음을 재정비하라는 사인으로 받고 용기를 내게 되었습니다.
저는 딸 부잣집 세 딸 중 둘째로 태어나 경제적으로는 어려움 없이 자랐지만 사업을 하셨던 부모님의 잦은 싸움은 저의 정서를 메마르게 했었습니다. 특히 아버지에 대한 깊은 상처는 하나님과의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이성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과 함께 부정적인 결혼관을 갖게 했습니다. 그러던 중 아버지께서 주님을 영접하셨습니다. 오랜 소원이 이루어진 역사적인 사건은 저의 삶에 있어서 한 줄기 빛으로 다가왔습니다. 아버지의 공개적인 사과와 사랑 표현에 강퍅했던 제 마음은 솜사탕처럼 녹았고 또 그 시기와 맞물려 무늬만 그리스도인이었던 저 또한 주님을 만나는 중요한 30대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뒤늦게 공부에 취미가 생긴 저는 학창시절 다하지 못한 열정을 쏟아 부으며 학업과 일을 병행하며 워커홀릭으로서의 삶을 누렸습니다. 결혼도 마다한 채...
그렇게 38살 가을을 지나던 무렵 “내 인생의 마지막 소개팅!”이라 외치며 나간 자리에서 말씀으로 응답받은 내 사랑 숨은 보화를 만나 39살에 결혼하고, 40살에 아들 주안이를 낳으며 늦깎이 엄마로서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육아휴직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일과 육아 두 마리 토끼를 성공적으로 잡겠다며 굳은 결심으로 꽃길만 걸을 줄 알았던 저의 인생에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주안이가 태어난 일주일 만에 남편이 직장암 3기 진단을 받은 것입니다. 한 겨울 조리원에 주안이를 맡기고 중환자실에 오가며 눈물로 기도하며 그렇게 광야의 시간은 시작되었습니다. 늦깎이 엄마의 육아와 맞물린 남편의 투병생활에 저는 마음처럼 잘해주지 못했고 많은 도움이 되지를 못했었습니다. 그래도 항상 온유했던 남편은 아픈 가운데서도 짜증 한 번 안내고 늘 웃으며 저의 편이 돼 주었습니다. 남편은 빨리 회복되어 주님의 일을 하리라 매일 다짐했었지만 1년 반이란 오랜 항암치료는 남편의 면역체계를 무너뜨렸습니다. 설마 세상을 떠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남편은 2017년 10월 16일 갑자기 장에 천공이 생기며 병원에 입원한 지 하루 만에 천국으로 떠났습니다.
저는 하루하루 남편을 살려내지 못한 죄책감, 더 잘해주지 못한 후회에다, 안하겠다던 결혼은 왜 하게 하셨는지,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생겼는지 등등의 수많은 질문으로 생애 처음으로 하나님을 원망까진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존재여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억지로 힘겹게 견뎌가며 시간을 보내던 중, 온라인 카페의 소모임, 크리스천 방에서 한 자매를 통해 다비다자매회를 알게 되었습니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자매였지만 지적이고 영적인 인상의 자매였기에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당연히 다비다자매회에 나가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마침내 올 4월의 어느 멋진 날 다비다자매회와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봄나들이 행사로 모였던 그 자리에서 느꼈던 따뜻한 영적인 온기는 저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제 인생에 있어 메마른 땅에 단비가 내리고, 앞으로의 갈 길이 환히 비춰지는 것 같은 희망을 찾게 된 날이었습니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는 생활 속에 한 달에 한 번 다비다 정기모임이 열리는 마지막 토요일은 더디게 돌아왔습니다. 43살 늦깎이 장난꾸러기 아들 엄마로서의 고된 삶 속에서 해피맘반에서의 이 장로님과의 말씀 나눔, 예배, 또 선배 언니들과의 교제는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안과 함께 또 영적인 도전을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8월초에 행복캠프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매일 매일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면서 기대감 속에 캠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32개월 된 주안이가 낯선 곳, 낯선 대학생 선생님들과 잘 적응하길 기도했고, 또 주안이가 엄마에게서 안 떨어질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에서 며칠 간 금식도 했습니다. 캠프기간 동안 중간 중간 주안이를 돌보느라 주제강의와 교제시간에 온전히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그 자체로 감사를 드리게 되었고, 참여하는 시간 동안에는 그만큼 더욱 더 사모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캠프에서 저에게 주셨던 주님의 말씀은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아가서 2장 10절)였습니다. “나의 부족으로 남편을 데려가신 건 아닐까? 흠 있는 내가 다시 주님 앞에 설 수 있을까?”라는 저의 걱정스런 물음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사별 이후 자신감이 없던 제 마음에 노크하시며 지금의 모습 이대로 사랑해주시고 또 깊은 만남의 때가 오기를 애타게 기다려주시는 주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의 인생 그래프의 물리적인 숫자가 100점에 훨씬 못 미쳐 50점에 머문다 해도 주님 안에서 존재이유를 새롭게 발견했기에 주님이 함께 해주시는 그 자체로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인생은 아침에 꽃을 피웠다가 저녁이 되면 시드는 풀과 같은 인생임을 경험했기에 이제는 제가 계획하는 삶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소중한 시간 속에 주님이 원하시는 삶이 무엇인지, 또 어떻게 개입해주실지 묻고 기대하며 답을 찾아가고 싶습니다.
캠프가 끝난 후 저는 여전히 일터에서, 또 4살 1춘기의 사랑스런 장난꾸러기 주안이와 함께 분주한 삶을 보내며 마음 한 구석에서 남편을 그리워하며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치고 마음이 어두워질 때 “영원부터 영원까지 나의 주는 하나님이시라.” 고백하며 마음을 다잡습니다. 이제는 나의 강한 자아의 힘이 아니라 예비해주신 다비다에서 주안이와 함께 주님의 강한 손에 이끌리기를 소원합니다.
기도하는 여인 ‘한나’처럼 기도의 자리를 지키고 마침내 본향에 가는 그날 하나님과 함께 버선발로 뛰어나와 격하게 환영해 줄 남편을 기대하며 오늘도 힘을 내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리라.”(로마서 8장 28절)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