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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린 ‘감사노트’ / 김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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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3-12 12:00 조회47,1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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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린 ‘감사노트’

김혜영

이수교회에 처음 올 때가 생각납니다. 그저 망설이며 쳐다보기만 3개월가량 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대형교회를 2년 정도 다녔지만, 친한 사람도 없고 교구모임에 적응하지도 못해서 예배만 억지로 드렸을 무렵 다른 교회는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고 오랜 망설임 끝에 이수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다비다자매회 플래카드가 교회 외벽에 크게 붙어 있었으나 바라보면서도 의미도 모른 채 지나쳤습니다. 다비다 모임에 참석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지금은 원로 목사님이 되셨지만, 임병우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등록하기로 결심하고 목양실 문을 두드렸습니다. 마침 그곳에 김혜란 목사님이 계셨고 제 가족상황을 보시더니 다비다 모임 참석을 권하셨습니다. “아니요.” 라고 거절하지 못해서 구두로 약속은 했지만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람들 모임에 가면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라 ‘혹시’ 라는 불안감도 있었습니다.

약속을 하였기에 마음의 문을 닫아둔 채 그냥 앉아있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제 우려와는 다르게 너무나 따뜻하고 편안했습니다. 그저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고 한없이 눈물이 났습니다. 참 고생 많으셨다는 눈인사가 저를 감동시켰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다비다는 저의 오랜 상처로 인해서 생긴 불신과 자기방어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습니다. 두 달 뒤 사랑의 교회 안성 수양관에서의 영성훈련을 통해 제 오랜 쓴 뿌리가 잘려 나가며 하나님을 다시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제 과거를 조금 밝히자면 저는 이혼한 지 13년 되었습니다. 너무 철없이 일찍 결혼했습니다. 캠퍼스 커플로 대학교 2학년 때 만나서 헤어지기를 수차례하며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반항하듯 대학교 졸업 후 바로 결혼했습니다. 결혼한 지 5년이 못가서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고 후회하며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 아팠습니다. 우울과 자살로 이혼을 원했고, 이혼하기 한 달 전 남편의 외도를 알았고 이중성을 보게 되었습니다. 극단적으로 싸워서 살해 위협을 받아 너무 무서웠고 도망치듯 이혼했습니다. 너무 급하게 이혼을 하는 바람에 위자료나 양육비조차 챙기지 못했습니다. 두 아이만 데리고 나와서 친정에서 지냈습니다. 친정의 도움으로 장사를 시작했으나, 사회경험의 부족으로 접게 되었고 친정에 경제적 손실을 많이 끼치며 아버지 명의의 아파트마저 팔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하셋방으로 이사하였으며 신용불량으로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어 식당 홀 서빙과 주방 파출부 일을 하며 지냈습니다. 어머니는 화병으로 우울증 약을 드셨고 고혈압과 당뇨에 더하여 한쪽 눈을 바이러스 감염으로 실명하게 되었으며 서울 생활이 어려워 시골로 이사를 하셨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제 탓으로 여기며 죄책감과 실망감으로 너무나 힘든 나날을 보냈고 모든 인간관계는 끊어졌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다비다를 만난 것입니다. 사람들 눈도 못 맞추던 그 시절 다비다는 저에게 유일한 숨통이었습니다. 김혜란 목사님은 저에게 ‘감사노트’ 쓸 것을 권하셨습니다. 큐티와 함께 쓰기 시작한 감사노트에 하루 10가지씩 감사거리를 적어보라고 하셨습니다. 처음 감사노트를 샀을 때 제일 작은 손바닥만 한 노트를 샀습니다. 억지로 10가지를 써 내려갔습니다. 감사거리가 없어서 살아 있는 것에 감사, 막연한 것에 감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제 환경에 감사했습니다. 제 두 아이들로 인해 감사했습니다. 두 아들이 속을 썩여도 대학을 가지 않아도 하루 종일 컴퓨터만 하고 있어도 그 존재만으로도 소중하고 감사했습니다. 비난과 원망들이 감사거리로 바뀌어 나갔고 아이들과 다툴 일이 없어 집안은 평온해졌습니다. 제 잔소리가 줄어들었습니다. 감사와 큐티가 저를 살게 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오프라윈프리는 감사노트를 통해 미혼모와 마약중독자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세계적으로 당당한 멋진 여성이 되었다고 합니다.

저도 죄책감이란 사탄이 주는 고통에서 벗어났습니다. 아이들만 왕래하고 저와 단절된 채 불신과 원망으로 가득했던 친정을 용서와 화해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한마디 말도 할 수 없었던 아버지께 “사랑해요.”라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창피하고 불평거리였던 지하 단칸방이, 단란한 가정과 기도의 쉼터로 바뀌었습니다. 큰아이는 전액 장학금을 준다는 학교의 만류에도 한 학기를 마치고 힘든 특수부대를 선택해서 갔고 그곳에서 무릎을 다쳐 수술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 상황에도 주님께 감사했습니다. 작은아이는 대학을 가지 않는다고 해서 저와 갈등했지만 그래도 감사했습니다. 점점 저를 내려놓게 했고 주님께 모든 걸 맡기는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여러분도 이제 감사의 집으로 들어가세요. 아버지 집에 살아도 감사하지 못하는 자가 되지 마시고 풍성한 천국잔치를 맛보세요. 얼마 전에 출간된 <하늘수레>의 활자 너머에 있는 엄마들의 말 못할 눈물들을 보며, 황폐한 시간을 혼자 걷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주님과의 동행함을 느끼고 모두 승리하는 삶을 살고 계시는 것을 보며, 상처 난 마음 깨어진 관계를 주님이 너무 사랑하시기에 들어 쓰시려고 주님 영광 나타내려 하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런 우리 다비다가 너무 소중하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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