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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이혼 그리고 사별(1) / 장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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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그의목적 작성일12-11-08 21:12 조회45,6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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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

결혼과 이혼 그리고 사별(1)

장 순 덕

<?xml:namespace prefix = v /><?xml:namespace prefix = o /><?xml:namespace prefix = w />내 나이 29살 때 행복을 꿈꾸면서 축복 속에서 결혼을 했다. 신혼살림은 시댁에 들어가서 살게 되었다. 행복한 가정을 꿈꾸었던 나의 행복은 결혼 생활 3년도 채 되기 전에 천국에서 지옥이 되어 물거품이 되었다.

누구나 결혼 할 때 이혼 해야지 하면서 결혼한 사람은 없다. 나는 남편의 외도로 끝내 이혼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18개월 된 아들을 데리고 양육비 한 푼 받지 못하고 위자료는 전셋집과 남편의 월급에서 월 20만원씩 받기로 하면서 협의 이혼을 했다. 그러나 양육비와 위자료는 통장에 입금 되지 않았다.

(이혼 후 18개월 된 아들과의 생활)

어린 아들 데리고 생활 하면서 돈 벌기란 쉽지가 않았다. 아침에 일찍 잠자는 아들을 놀이방에 맡기면 밤늦게 잠자는 아들을 데리고 와야 했다.

한 달 가까이 일을 하는 동안 어린 아들은 병이 나 버렸다. 놀이방에서 아이가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고 한다. 엄마 얼굴을 보지 못해 어린 것이 병이 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난 직장을 그만 두고 아들을 위해 한 달 번 돈으로 아들과 먹고 살았다.

남편과 시댁에 연락을 해서 양육비 위자료 달라고 하니 준다고 말만 하지 주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 한 사람 나에게 돈 한 푼 주는 사람이 없었다. (나의 자존심 때문에 누구한테 말 하지 않았다.)

나는 결혼 패물과 아들의 첫 돌 반지를 팔고 아들을 친정에 맡겨 두면서 식당일, 가사도우미, 분식집 배달도 했다. 그러나 오래 하지 못했다. 나는 열심히 일을 하지만 주인의 눈에 차지 않아 금방 그만 두어야만 했다.

(삶의 고달픔)

처녀 때 직장 생활 하면서 돈을 벌 때보다 이혼하고 나서 돈을 벌기 위해 직장을 구하는 것이 훨씬 힘이 들었다. 결혼 전에 했던 직업을 구할 수는 더 더욱 어려웠다.

아는 언니의 소개로 다방 (요즘은 커피숍) 주방에서 일하게 되었다. 주인이 “애기 엄마! 돈을 벌 것이면 차비 들이고 왔다 갔다 하지마.”라 한다. 그 차비 아껴서 모으라 한다. 난 그렇게 하기로 하고 그 다방에서 숙식하기로 했다. 숙식 하는 대신 주민등록증을 맡기라고 한다. 나는 아무 의심 없이 주민 등록증을 주인에게 맡겼다. 그런데 그날 밤 잠을 자는데 무서운 꿈을 꾸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밤 무서운 꿈에 시달려 잠을 자지 못해 주방 일을 하지 못 하겠다고 했다. 나가겠으니 주민등록증을 달라고 하니 주인은 주민등록증으로 뺨을 왕복으로 때리면서 “불쌍해서 있게 했더니…….” 하면서 그간 일한 돈도 한 푼도 주지 않았다.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며 옷 보따리를 챙겨 나오면서 내 마음으로 하늘을 쳐다보고 남편에게 “나쁜 놈, 더러운 놈, 네 놈은 잘 살줄 아나? 네가 얼마나 잘 사는가 내가 볼끼라.” 하면서 아들을 보기위해 친정으로 갔다.

마침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얼마동안 엄마를 보지 못한 아들은 엄마를 보자 밥 그릇을 들고 밥 통으로 간다. (나의 아들은 일찍 철이 들었다) 친정아버지는 아들에게 “너 엄마 밥 주지마라!” 하니 어린 것이 제 어미 생각하고 고개를 푹 숙이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친정 엄마는 아들에게 “할배가 일부러 그런 것이다. 할매가 니 엄마 밥줄께! 울지 마라.” 그 모습을 본 나는 친정 부모 앞에서 울지도 못하고 가슴 속 깊이 울음을 삼키면서 밥을 먹었다. 살아가기가 참 막막했다.

허름한 빈촌의 아파트를 찾아다니면서 옷 보따리 장사도 해 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나에게 만만치가 않았다. 살아갈 용기가 생기지 않게 되고 삶의 의욕도 떨어지게 되고 죽자 죽는 것이 사는 것이다. 죽기위해 교회를 갔다. 이 땅에서 이렇게 힘들게 살다가 천국은 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찾은 것이다. 교회에 가서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며 “내가 죽어야 되는데 왜 이러고 있노? 내가 미쳤다.” 하면서 3개월을 울면서 어린 아들을 데리고 교회를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마음에 알 수없는 기쁨이 찾아오면서 나는 ‘내 아들과 살아야 된다.’ 그러면서 마음에 작심을 했다. 첫 번째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고 두 번째 자식 앞에 부끄러운 엄마가 되지 말자하면서 다짐을 했다.

또한 살기 위해서 전세를 줄여 이사를 하게 되었다. 남은 전세금으로 재봉틀을 배워서 살아 보기로 했다. 없는 돈으로 재봉틀을 배웠지만 나에게 쉽지만은 안았다. 그래서 나는 또한 아들을 친정에 맡기고 미싱공장과 남의 집 아이 돌 보는 일을 병행 하면서 신앙생활을 했다.

남편 없이 혼자 사는 여자는 사람들의 이용 대상이 된다. 한복집을 하는 여 집사 한 분이 자기 집이 비워 있으니 와서 살라고 한다. 그리고 재봉틀을 할 줄 아니 한복 속 옷 만드는 것 배워서 아이 데리고 살라고 한다. 정말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었다. 그래서 없는 돈에 구입한 재봉틀을 교회의 여 집사 한복집에 두고 여 집사 빌라 집으로 이사를 했다. 이사를 하고 한복집에 가서 한복 속옷을 배우러 갔는데 실질적으로 한복 속옷은 가르쳐 주지 않고 그냥 있게 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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