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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면 뛰어! / 박 향 희(SBS 생활의 달인 출연자/김의 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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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혜란 작성일12-10-17 14:57 조회45,9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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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울하면 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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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향 희(SBS 생활의 달인 출연자/김의 달인)

안녕하세요? 조미 김 업체 한백 대표 박향희입니다

저는 손 구이 김과 김자반을 만들어 김 프랜차이즈 본점을 운영하며, 국내유통과 일본과 호주 ,중국 등에도 수출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 장사를 할 때만 해도 청주 육거리 시장 노점에서 비닐을 치고 시작했어요. 그런 제가 어떻게 여기까지 성장할 수 있었는가 하면 노점 생활 1년 되었을 무렵의 어느 날 교회 철야기도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제 고향은 원주입니다. 어린 시절 비교적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별 고생 없이 살았고 능력 있고 가정적인 남편을 만나 세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우리 가정에 재앙이 덮쳤어요. 잇따른 어음부도 남편의 외도 등등……. 용서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 사람은 오히려 나를 떠났습니다.

저는 매일매일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술을 먹고 울면서 잠이 들었어요. 친정언니와 친척들이 보증서준 3억 원의 빚, 그 빚을 갚기 위해서 세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야 했지요 당시, 아이들이 세 살, 아홉 살, 열한 살 저는 매일 매일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술을 먹고 울면서 잠이 들었어요. 친정언니와 친척들이 보증서준 3억 원의 빚, 그 빚을 갚기 위해서 세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야 했지요 매일 매일 죽고 싶은 날 들이었습니다.

신앙인이던 저는 기도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함께 신앙생활 했던 성실하고 믿음 좋던 남편이……. 개척교회로 열심히 헌신하며 섬기던 교회의 목사님이 외도했던 두 사람을 부부로 받아주시다니……. 또 자살기도 하려 했던 친구를 전도 했더니 우리 남편을 빼앗아 가다니……. 하나님이 원망스러웠고 그들을 부부로 인정해준 목사님이 미워서 기도도 할 수 없었지요. 그저 죽고만 싶었습니다.

이렇게 죽음만을 생각했던 저에게 살고자 마음을 먹게 한 것은 어머니의 사랑과 제 아이들 때문이었습니다.

하루는 길에서 조카를 만났어요. 저보다 5살이 아래였던 조카는 주머니에서 부스럭 부스럭하더니 4만원을 꺼내 주는 거예요 “이모 미안해, 이것 밖에 없다…….”하면서.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모, 할머니가 너무 불쌍해 어제 이모 집 앞에서 할머니를 봤어, 이모 집 벽에 귀를 대고 계신거야. 매일 밤마다 이렇게 이모 소리가 들리면 그제 서야 집에 가서 주무셨데. 혹시 가슴 아픈 딸이 자살이라도 할까봐서…….” 또 하루는 어머니가 제 빚을 갚아주기 위해서 사시던 집을 세를 주고 지하방으로 이사 가시던 날이었어요.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 하시는 거예요. 향희야. 집이 작으니까 너무 좋다. 기름 값도 덜 들고 청소도 쉽고…….” 그러면서 웃으시는 거예요.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네게 줄 수 있어서 너무 좋다’라고…….

어머니가 제게 돈을 주실 때에는 행복한 마음으로 기쁘게 주시는 거예요 저는 이때 결심했어요. 내가 다시 돈을 벌어 어머니께 돈을 드릴 수 있다면 어머니가 제게 주신 것처럼 기쁜 마음으로 드리겠노라고…….

제 딸의 초등학교 1학년 운동회 날이었어요. 마스게임에 색동저고리를 입어야 하는데 그 돈과 김밥 살 돈 15,000원이 없어서 그 돈을 구해서 간신히 학교에 갔어요. 마스 게임은 시작되었고 정문 앞에서 제 딸아이가 발을 동동 구르며 울고 있었어요. 아이를 데리고 급히 운동장으로 갔고 음악소리에 맞춰 마스게임을 하면서 저는 피눈물을 흘리며 결심했어요. 이제 다시는 능력 없는 엄마가 되어 내 아이에게 이런 불행한 일을 만들지 않겠노라고…….

이 무렵 예전부터 저를 많이 아끼시는 여자목사님이 계셨는데 하루는 운동장을 가자고 하셔서 함께 운동장을 갔어요. 운동장을 돌기 시작했는데 목사님은 땀이 흠뻑 젖도록 400m를 5바퀴나 도셨는데 저는 2바퀴만 돌고 더 이상 못 돌겠더라고요. 헉헉거리고 있는데 목사님이, “향희야 억울하지? 억울하면 뛰어! 분하지? 분하면 뛰어! 넌 아직 쓰러지지 않았잖아!”

이렇게 말씀하셨고 저는 억울한 생각 분한 생각을 하니 갑자기 힘이 나면서 더 뛸 수 있었어요. 그때부터 저는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이 순간을 떠올리며 일을 했어요. 예전에는 그렇게 끈기 없는 대명사였던 저는 왕끈기 여인이 되었어요.

저는 큰 달력에 나는 누구인가라고 써 보았어요. 그때 이렇게 썼던 것 같아요.

‘남자는 나를 싫어한다.’ ‘여자와 어르신들은 나를 좋아한다.’아 그래 ~ 그렇다면~ 여자와 어른신들과 관련된 일을 하자. ‘나는 술을 좋아한다.’ ‘나는 보람 있는 것을 좋아한다.’ 술이랑 관련된 장사는 하지말자. 내가 다 먹어 없앨 테니까. 그리고 보람 있는 일을 하자. ‘나는 빚이 3억이다.’ 월급으로는 평생 벌어도 못 갚겠다. 그렇다면 장사를 하자 장사를 하려면 밑천이 없다 그렇다면 노점을 하자~ ‘노점을 모른다.’ 그렇다면 노점에 취직을 하자.

저는 매일 교차로를 보기 시작했어요. 그리곤 장마다 다니는 김장사집에 취직을 하게 되었지요. 거기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어요. 노점에도 자기자리가 있다는 것과 자리가 없으면 수레에 바퀴를 달아서 왔다 갔다 하면 된다는 것과 또 재래시장 중에는 청주와 안산이 잘된다는 것 등을 알게 되었어요. 저는 무작정 청주로 갔어요. 원주를 떠나기 전 아이들과 학교운동장에 그네에 앉아서 약속했어요. 엄마는 반드시 빨리 너희를 데리러 올 것이다. 타락하지 않고 열심히 살겠다. 너희들도 그때까지 착하게 자라줘야 한다고 …….

그렇게 청주에 도착하였고 노점자리를 얻기 위해 한 달을 쫒아 다녔어요. 1달 만에 노점자리를 얻게 되었어요. 하지만 장사는 너무 너무 안 되고 그 와중에 옆에서 장사하던 할머니는 제가 화장실을 갔다 올 때마다 제 물건을 하나씩 가져가시는 거예요. 저는 정말 살기 싫었어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남편도 돈도 훔쳐가는 이런 세상에 무슨 노력이 필요할까? 저는 마지막으로 기도하기로 마음먹고 철야기도를 갔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어요. “사랑하는 딸아 나는 예전에도 너와 함께 있었고 지금도 너와 함께 있다 그리고 나는 네가 가는 길에 함께 할 것이다” 저는 새 힘이 생겼어요. 그리고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았어요. 하지만 노점장사에서 제조업과 프랜차이즈 본점은 너무나 다른 영역이어서 많이 힘들었어요.

그때마다 하나님이 저와 함께하신다는 약속을 굳게 믿고 기도하면서 나는 누구인가 나의 장점은 무엇인가 ? 지금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빼놓고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할 수 없는 것, 못하는 것은 놔두고 할 수 있는 것만 한 개씩 한 개씩 하다 보니 어느새 할 수 없었던 일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갔더니 노점에서 수출 까지 하게 되었지요.

지금 저는 세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왔고 착하고 믿음 좋은 남편을 만나 함께 개척교회를 섬기며 예전엔 생각도 못했던 해외 출장도 다니면서 재미있게 사업하며 살고 있어요.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지금도 우리의 삶에 직접적으로 역사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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