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다비다 유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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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ooner 작성일09-08-12 17:24 조회45,962회 댓글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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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다비다 유미숙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사도행전 9장 36절)
‘다비다’는 아람어로 된 이름이고 헬라어로는 ‘도르가’이다. 이 이름의 뜻은, 은혜롭고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노루를 의미한다.
또한 ‘도르가’라는 이름은 “배우는 자, 닮아가는 자”라는 뜻이기도 하다.
성경에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란 표현과, 여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여성을 제자라 하여 ”여제자“라고 기록된 것을 보아 예수님의 삶을 따르고 배우는 여인이었기에 사람들이 불러주었던 이름인 것 같다.
우리 회원들은 간혹 싱글이 된 돌싱을 가리켜 ‘다비다’ 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다비다란 혼자 사는 여인을 가리키는 이름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싶다. 자신의 삶도 부족함이 많고 외롭지만 이웃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며 사랑으로 섬기고 돌보는 사람을 가리켜 다비다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우리 회원 중에서 진정한 다비다 한명을 소개하고 싶다.
다비다 정기 모임에 참여하는 자매들과 “다비다 이야기”를 읽으신 분들은 유미숙 자매의 삶의 이야기를 기억할 것이다.
그녀의 삶의 고백 중 특히 남편과 헤어진 후 어린 아들 재준이를 키웠던 이야기를 읽으며 눈물을 흘리지 않은 분이 없었으리라 생각된다.
미숙 자매는 지난 여름 다비다 가족 캠프장에 아들과 함께 처음 보는 소년 아이를 한 명 더 데리고 온 일이 있다. 웬 아이인가? 의아해 물어보니 지방에 살고 있는 친구의 아들이라 하였다.
자기 아들 돌보기에도 벅찬 어려운 상황에서도 다른 아이를 데리고 여름 캠핑을 참석하였던 자매.
자신의 형편도 어려운데 이웃의 아픔을 못견뎌하여 머물 곳 없는 자매들을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하고, 고통 받는 자매들의 사정을 하소연 하며, 이들이 당하는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을까 여기 저기 찾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또한 알고 보니 ‘모자가정’이라는 인터넷 카페를 통해 얼굴도 알지 못하는 많은 여성들을 섬기는 엄청난 일을 하고 있었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이웃과 함께 고통의 자리에 머물고 그들의 살길을 찾으려고 애쓰는 자매의 삶을 주님은 기억하실 것이다.
사도행전 10장에 고넬료를 향하여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라고 하시었고, 다비다 여제자의 선행과 구제를 기억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하나님께 영광 돌렸던 사실을 우리도 기억한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리라”(잠언 19장 17절)고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미숙 자매를 기억하시고 갚아 주실 것을 믿는다.
절망 속에서 예수님을 만난 미숙자매는 지난번 그녀의 간증을 이렇게 마무리 한 것을 기억한다.
“더 이상의 절망은 없다. 내 안에는 관념적인 하나님이 아닌 살아서 도우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매일이 내려놓는 삶이되길 기도하며 이 글을 끝으로 더 이상 넋두리 같은 내 인생의 한 점은 여기서 끝내려한다.”
그녀가 선포한 대로 그녀는 더 이상 넋두리 인생이 아니라 진정한 다비다로서 지금 이렇게 근사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녀의 삶은 이미 자신의 삶이 아니라 주님이 함께하시는 삶인 것을 확인하며 큰 박수를 보낸다.
또한 우리 다비다자매회 안에 이와 같은 진정한 다비다들이 많이 나타나길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김혜란)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사도행전 9장 36절)
‘다비다’는 아람어로 된 이름이고 헬라어로는 ‘도르가’이다. 이 이름의 뜻은, 은혜롭고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노루를 의미한다.
또한 ‘도르가’라는 이름은 “배우는 자, 닮아가는 자”라는 뜻이기도 하다.
성경에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란 표현과, 여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여성을 제자라 하여 ”여제자“라고 기록된 것을 보아 예수님의 삶을 따르고 배우는 여인이었기에 사람들이 불러주었던 이름인 것 같다.
우리 회원들은 간혹 싱글이 된 돌싱을 가리켜 ‘다비다’ 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다비다란 혼자 사는 여인을 가리키는 이름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싶다. 자신의 삶도 부족함이 많고 외롭지만 이웃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며 사랑으로 섬기고 돌보는 사람을 가리켜 다비다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우리 회원 중에서 진정한 다비다 한명을 소개하고 싶다.
다비다 정기 모임에 참여하는 자매들과 “다비다 이야기”를 읽으신 분들은 유미숙 자매의 삶의 이야기를 기억할 것이다.
그녀의 삶의 고백 중 특히 남편과 헤어진 후 어린 아들 재준이를 키웠던 이야기를 읽으며 눈물을 흘리지 않은 분이 없었으리라 생각된다.
미숙 자매는 지난 여름 다비다 가족 캠프장에 아들과 함께 처음 보는 소년 아이를 한 명 더 데리고 온 일이 있다. 웬 아이인가? 의아해 물어보니 지방에 살고 있는 친구의 아들이라 하였다.
자기 아들 돌보기에도 벅찬 어려운 상황에서도 다른 아이를 데리고 여름 캠핑을 참석하였던 자매.
자신의 형편도 어려운데 이웃의 아픔을 못견뎌하여 머물 곳 없는 자매들을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하고, 고통 받는 자매들의 사정을 하소연 하며, 이들이 당하는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을까 여기 저기 찾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또한 알고 보니 ‘모자가정’이라는 인터넷 카페를 통해 얼굴도 알지 못하는 많은 여성들을 섬기는 엄청난 일을 하고 있었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이웃과 함께 고통의 자리에 머물고 그들의 살길을 찾으려고 애쓰는 자매의 삶을 주님은 기억하실 것이다.
사도행전 10장에 고넬료를 향하여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라고 하시었고, 다비다 여제자의 선행과 구제를 기억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하나님께 영광 돌렸던 사실을 우리도 기억한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리라”(잠언 19장 17절)고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미숙 자매를 기억하시고 갚아 주실 것을 믿는다.
절망 속에서 예수님을 만난 미숙자매는 지난번 그녀의 간증을 이렇게 마무리 한 것을 기억한다.
“더 이상의 절망은 없다. 내 안에는 관념적인 하나님이 아닌 살아서 도우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매일이 내려놓는 삶이되길 기도하며 이 글을 끝으로 더 이상 넋두리 같은 내 인생의 한 점은 여기서 끝내려한다.”
그녀가 선포한 대로 그녀는 더 이상 넋두리 인생이 아니라 진정한 다비다로서 지금 이렇게 근사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녀의 삶은 이미 자신의 삶이 아니라 주님이 함께하시는 삶인 것을 확인하며 큰 박수를 보낸다.
또한 우리 다비다자매회 안에 이와 같은 진정한 다비다들이 많이 나타나길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김혜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