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나 된 것은 오로지 주님의 은혜로다 / 최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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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ooner 작성일08-10-04 08:41 조회44,99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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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나 된 것은 오로지 주님의 은혜로다
최연희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불신자의 집에서 열심히 혼자서 신앙생활을 해 나갔습니다. 중. 고등부 청년부를 지내면서 부족하나마 주일학교교사, 성가대원, 청년부임원 등으로 교회생활에 넘치는 기쁨과 행복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겨왔습니다.
하지만 말씀 가운데 거하면서도 뒤돌아서면 여전히 세상 사람들하고 똑같은 마음과 행동들이 주님 앞에서는 연약한 존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 열심히 교회에 출입하면서 주님을 더 간절히 찾고 만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초등학교 때부터 머리에 난 부스럼이 20살 되던 해는 난치병 건선이라는 피부병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 비늘들이 온몸에 덕지덕지 두껍게 싸였고 오래된 딱지가 떨어져나가면 그 속에 피와 고름이 함께 흘러 옷 사이에 묻어 옷을 결국 가위로 자르는 상황까지 피부병이 심했습니다.
낮에는 전혀 외출이 어렵고 활동할 수 없어 해가 어두워질 때까지 온종일 집안에서 시계만 보면서 생활을 했습니다. 온몸을 소독하고 난 후 약을 먹고 또 시작되는 하루일과에 대한 무력감과 답답함이 밀려왔고, 또 다른 한편에는 마음에 간절한 소망을 두고 저녁이면 누구 알아볼까 모자를 반쯤 가리고 교회기도실에서 눈물 콧물 흘리면서 욥과 같은 사람 되게 해달라고 작정하며 기도해 보기도 했습니다.
악창에 시달렸던 욥이 문득 떠올랐던 것입니다. 사단의 진을 무너뜨리고 승리한 욥처럼 나도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자신의 물음에 아직은 “아니야“ 하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될 거야“ 라고 마음으로 믿음을 세웠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일으키신다는 말씀을 붙잡고 기도로 한걸음씩 나갔습니다. 주위 분들의 권유로 마지막 병원이다 생각하고 문둥이촌 이라는 곳에서 약을 타다가 먹으면서 조금씩 차도가 있었지만 의사는 약이 너무 강해서 결혼하면 임신이 어렵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기도하면서 약을 먹고 조금씩 차도가 생겨 몸에 비늘들이 조금씩 가라앉고 회복되어져가고 있었습니다.
저를 지켜보았던 부모님과 형제들도 몸과 마음이 변화된 내 모습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조금씩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저희 가정은 아버지 사업실패로 가세는 점점 기울고, 위암말기 진단을 받은 엄마는 막내딸 시집가는 것 까지 보고 세상을 등지고 싶어 하시어 엄마의 소원대로 나는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엄마는 내가 결혼 한 지 3개월 만에 힘겹게 예수님을 영접하고 주님 품으로 떠나셨습니다. 가진 것은 없지만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사위모습을 좋아하셨던 엄마이셨기에 더욱 마음이 아파옵니다.
남편은 선교활동 단원으로 교회 성가대 지휘자로 여러 가지 악기도 잘 다루고 믿음도 좋은 성실한 청년으로 보였지만 결혼 한지 2년 만에 믿을 수 없는 외도로 아들 첫돌 되던 해 저는 힘겨운 홀로서기를 시작하여야 했고 전세800만원이 전부였던 결혼생활은 끝이 나고 주위 시선 속에 교회를 다니면서 보이지 않게 겪는 수모와 상처는 또한 감당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후 혼자된 친정아버지를 모시면서 일도 열심히 다녔고 아들은 어느덧 유치원생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고 친정아버지는 열심히 교회를 다니면서 세례증도 받았다고 저에게 건네주시기도 하시고 주일날만을 기다리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정기검진을 받고 오시겠다고 평상시와 같이 아침식사를 하고 나가셨습니다. 하지만 검진결과는 8년 전의 대장암 수술부위가 재발되어 병원에 급하게 입원을 하셨는데 빠른 속도로 암세포는 전이가 되어 2달도 넘기지 못하고 혼수상태에서 천국으로 보내드려야만 했습니다.
소중한 사람들이 내 곁에서 떠나면서 겪어야 하는 슬픔과 아픔은 교회 나가는 것 조차 너무도 힘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늘 나와 함께했던 작은언니는 힘든 내 마음을 알고 음으로 양으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함께 신앙생활을 하면서 은혜도 함께 나누고 말씀도 붙잡고 하루에 한 번씩 전화통화도 하면서 만날 정도로 마음이 통했던 작은언니랑 한번은 보라매병원에서 만났습니다.
B형간염보균자였던 언니는 10년 동안 치료를 꾸준히 받고 있었는데, 진료 후 의사가 보호자를 찾더니 저에게 언니상태가 간암으로 진행이 된 것 같다고.....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리고 언니한테 애써 슬픔을 감추고 희망적일 수 있다고 말을 하면서도 아픔과 절망이 주님께 향한 원망으로 돌려졌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번만큼 “주님의 기적을 원합니다. 살려주세요“ 라는 애원과 간구함에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화장실로 달려가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주님은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내 딸아 내가 너를 잘 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강하고 담대 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노라“ 라고 말씀 하십니다.
나와 언니를 위한 주님의 위로하심이었습니다.
결국 언니는 2002년 6월에 힘겨운 암투병을 끝내고 고통 없는 주님 품으로 떠났습니다.
오 주님! 앞으로의 내 삶은~ 주님의 손에서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지금껏 살아온 조각난 상처들을 싸매시고 다시 모으시는 주님에 손길을 오늘도 경험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여전히 사단은 저에게 답하고 있습니다. 너는 안돼, 네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잖아, 남편도 없고 자녀는 방황하고, 구멍 난 물질에 쯧쯧..... 끊임없이 상처 난 곳을 파헤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오늘도 사단을 능히 이기는 말씀을 저에게 부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할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다비다자매회 모임을 통해 귀한 만남을 허락주신 주님. 우리 주님의 손과 발에 안위 받는 것처럼 내 영혼이 편안하고 기쁩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 주님에 놀라운 은혜입니다. 날마다 주님 임재 안에 거하게 하옵소서!
최연희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불신자의 집에서 열심히 혼자서 신앙생활을 해 나갔습니다. 중. 고등부 청년부를 지내면서 부족하나마 주일학교교사, 성가대원, 청년부임원 등으로 교회생활에 넘치는 기쁨과 행복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겨왔습니다.
하지만 말씀 가운데 거하면서도 뒤돌아서면 여전히 세상 사람들하고 똑같은 마음과 행동들이 주님 앞에서는 연약한 존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 열심히 교회에 출입하면서 주님을 더 간절히 찾고 만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초등학교 때부터 머리에 난 부스럼이 20살 되던 해는 난치병 건선이라는 피부병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 비늘들이 온몸에 덕지덕지 두껍게 싸였고 오래된 딱지가 떨어져나가면 그 속에 피와 고름이 함께 흘러 옷 사이에 묻어 옷을 결국 가위로 자르는 상황까지 피부병이 심했습니다.
낮에는 전혀 외출이 어렵고 활동할 수 없어 해가 어두워질 때까지 온종일 집안에서 시계만 보면서 생활을 했습니다. 온몸을 소독하고 난 후 약을 먹고 또 시작되는 하루일과에 대한 무력감과 답답함이 밀려왔고, 또 다른 한편에는 마음에 간절한 소망을 두고 저녁이면 누구 알아볼까 모자를 반쯤 가리고 교회기도실에서 눈물 콧물 흘리면서 욥과 같은 사람 되게 해달라고 작정하며 기도해 보기도 했습니다.
악창에 시달렸던 욥이 문득 떠올랐던 것입니다. 사단의 진을 무너뜨리고 승리한 욥처럼 나도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자신의 물음에 아직은 “아니야“ 하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될 거야“ 라고 마음으로 믿음을 세웠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일으키신다는 말씀을 붙잡고 기도로 한걸음씩 나갔습니다. 주위 분들의 권유로 마지막 병원이다 생각하고 문둥이촌 이라는 곳에서 약을 타다가 먹으면서 조금씩 차도가 있었지만 의사는 약이 너무 강해서 결혼하면 임신이 어렵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기도하면서 약을 먹고 조금씩 차도가 생겨 몸에 비늘들이 조금씩 가라앉고 회복되어져가고 있었습니다.
저를 지켜보았던 부모님과 형제들도 몸과 마음이 변화된 내 모습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조금씩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저희 가정은 아버지 사업실패로 가세는 점점 기울고, 위암말기 진단을 받은 엄마는 막내딸 시집가는 것 까지 보고 세상을 등지고 싶어 하시어 엄마의 소원대로 나는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엄마는 내가 결혼 한 지 3개월 만에 힘겹게 예수님을 영접하고 주님 품으로 떠나셨습니다. 가진 것은 없지만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사위모습을 좋아하셨던 엄마이셨기에 더욱 마음이 아파옵니다.
남편은 선교활동 단원으로 교회 성가대 지휘자로 여러 가지 악기도 잘 다루고 믿음도 좋은 성실한 청년으로 보였지만 결혼 한지 2년 만에 믿을 수 없는 외도로 아들 첫돌 되던 해 저는 힘겨운 홀로서기를 시작하여야 했고 전세800만원이 전부였던 결혼생활은 끝이 나고 주위 시선 속에 교회를 다니면서 보이지 않게 겪는 수모와 상처는 또한 감당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후 혼자된 친정아버지를 모시면서 일도 열심히 다녔고 아들은 어느덧 유치원생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고 친정아버지는 열심히 교회를 다니면서 세례증도 받았다고 저에게 건네주시기도 하시고 주일날만을 기다리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정기검진을 받고 오시겠다고 평상시와 같이 아침식사를 하고 나가셨습니다. 하지만 검진결과는 8년 전의 대장암 수술부위가 재발되어 병원에 급하게 입원을 하셨는데 빠른 속도로 암세포는 전이가 되어 2달도 넘기지 못하고 혼수상태에서 천국으로 보내드려야만 했습니다.
소중한 사람들이 내 곁에서 떠나면서 겪어야 하는 슬픔과 아픔은 교회 나가는 것 조차 너무도 힘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늘 나와 함께했던 작은언니는 힘든 내 마음을 알고 음으로 양으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함께 신앙생활을 하면서 은혜도 함께 나누고 말씀도 붙잡고 하루에 한 번씩 전화통화도 하면서 만날 정도로 마음이 통했던 작은언니랑 한번은 보라매병원에서 만났습니다.
B형간염보균자였던 언니는 10년 동안 치료를 꾸준히 받고 있었는데, 진료 후 의사가 보호자를 찾더니 저에게 언니상태가 간암으로 진행이 된 것 같다고.....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리고 언니한테 애써 슬픔을 감추고 희망적일 수 있다고 말을 하면서도 아픔과 절망이 주님께 향한 원망으로 돌려졌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번만큼 “주님의 기적을 원합니다. 살려주세요“ 라는 애원과 간구함에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화장실로 달려가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주님은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내 딸아 내가 너를 잘 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강하고 담대 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노라“ 라고 말씀 하십니다.
나와 언니를 위한 주님의 위로하심이었습니다.
결국 언니는 2002년 6월에 힘겨운 암투병을 끝내고 고통 없는 주님 품으로 떠났습니다.
오 주님! 앞으로의 내 삶은~ 주님의 손에서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지금껏 살아온 조각난 상처들을 싸매시고 다시 모으시는 주님에 손길을 오늘도 경험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여전히 사단은 저에게 답하고 있습니다. 너는 안돼, 네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잖아, 남편도 없고 자녀는 방황하고, 구멍 난 물질에 쯧쯧..... 끊임없이 상처 난 곳을 파헤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오늘도 사단을 능히 이기는 말씀을 저에게 부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할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다비다자매회 모임을 통해 귀한 만남을 허락주신 주님. 우리 주님의 손과 발에 안위 받는 것처럼 내 영혼이 편안하고 기쁩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 주님에 놀라운 은혜입니다. 날마다 주님 임재 안에 거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