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세 고비” (이화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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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ooner 작성일09-08-12 17:23 조회47,56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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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세 고비”
지난 6월 다비다자매회 정기 모임에서 나누어주신 이화세님의 인생 세 고비를 소개합니다.
첫째 고비
- 심장판막 수술 (부천세종병원) (1987.6.5.)
심장판막증으로 13년을 앓았습니다. 삶을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수술해야 된다고 하셨지만 심장수술이 무서웠고 수술비용도 엄청 비쌀 때 여서 그냥 살다가 죽겠다고 고집했습니다. 병이 점점 심해졌고 몸은 퉁퉁 붓고 숨은 차고 거동이 많이 불편했습니다.
아들이 고교 3학년, 딸이 초등 6학년이라 아직은 아이들과 함께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마음 고쳐먹고 기도하였습니다. 히스기아왕의 눈물의 기도, 통곡의 기도를 들으시고 15년을 연장시켜 주신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이라는 믿음의 확신이 왔습니다. 치료약을 사용하고 수술을 한다 할지라도 낫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확신으로 눈물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뜻밖에도 부천시청 복지과에서 직원가족에게 주는 수술비 일부와 순복음교회에서 주신 수술비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병원을 찾았을 때 이미 늦어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말에 남편이 애원해서 죽어도 좋다는 각서를 쓰고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장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 바로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면 넘지 못할 장애물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둘째 고비
- 남편이 교통사고로 사망 (1989.9.5.)
남편이 교통사고로 먼저 떠나버렸습니다. 수술 2년 겨우 회복되었을 때였습니다. 2년 동안 정말 남편 사랑받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다시 태어났다하여 어린애 마냥 나는 응석을 부리고 힘든 일은 다 남편이 도와주었습니다.
수술이 막 끝나고 보호자 면회할 때 중환자실에 들어와서 “당신 정말 살았어? 진짜 살은 거지?” 눈물 흘리던 그 모습은 지금까지도 생생합니다.
아침에 나간 사람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할 수밖에요. 아이들한테는 아빠보다 엄마가 더 필요한 거였나 보다고 생각을 고쳐먹고 남은 세 식구는 하나 되어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다비다” 모임을 알게 되었고 나보다 더 젊고 예쁘고 우리 아이들 보다 더 어린자녀들이 있는 걸 봤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가장 가까운 것은 상처 입은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감싸주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다비다 모임에 보탬이 될까하고 이화여대 평생교육원 카운슬러 2년 전문 과정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뜻밖의 문제란 없다 하나님의 손안에는 이미 답이 있다고 생각하며 늘 하나님께 감사감사 드립니다.
셋째 고비
- 두 번째 판막수술 (2004.3.17.)
18년 만에 송명근 박사님이 계신 아산병원에서 재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제껏 환자라는 사실을 잊은 채 살았는데 몸이 붓고, 숨이 차고, 거동이 불편했습니다. 수술 날짜를 받고 입원했습니다. 이젠 두렵지 않았습니다. 의술도 좋아졌고 수술비용도 적게 들고 죽어도 괜찮고 살아도 괜찮고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게 늘 하나님께 감사 했습니다.
심장수술을 받기위해 수술날짜를 받아놓고 두려움, 불안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제 경험을 말해주고 안정시켜 편안한 마음으로 수술 받게 했습니다. 내가 닥칠 두려움보다 그 분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수술 받기 위해 기도 했습니다.
나 보다 먼저 수술 받고 퇴원할 때 찾아와서 감사의 인사를 하고 퇴원하는 모습들이 내가 큰 일을 해낸 것처럼 기뻤습니다. 매일 하나님을 믿으며 그 분의 인생계획에 따라 살면 더 행복하고 건강해지며 상상하지도 못했던 높이까지 날아오를 수 있다는 것을 다비다 자매님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지난 6월 다비다자매회 정기 모임에서 나누어주신 이화세님의 인생 세 고비를 소개합니다.
첫째 고비
- 심장판막 수술 (부천세종병원) (1987.6.5.)
심장판막증으로 13년을 앓았습니다. 삶을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수술해야 된다고 하셨지만 심장수술이 무서웠고 수술비용도 엄청 비쌀 때 여서 그냥 살다가 죽겠다고 고집했습니다. 병이 점점 심해졌고 몸은 퉁퉁 붓고 숨은 차고 거동이 많이 불편했습니다.
아들이 고교 3학년, 딸이 초등 6학년이라 아직은 아이들과 함께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마음 고쳐먹고 기도하였습니다. 히스기아왕의 눈물의 기도, 통곡의 기도를 들으시고 15년을 연장시켜 주신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이라는 믿음의 확신이 왔습니다. 치료약을 사용하고 수술을 한다 할지라도 낫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확신으로 눈물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뜻밖에도 부천시청 복지과에서 직원가족에게 주는 수술비 일부와 순복음교회에서 주신 수술비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병원을 찾았을 때 이미 늦어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말에 남편이 애원해서 죽어도 좋다는 각서를 쓰고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장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 바로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면 넘지 못할 장애물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둘째 고비
- 남편이 교통사고로 사망 (1989.9.5.)
남편이 교통사고로 먼저 떠나버렸습니다. 수술 2년 겨우 회복되었을 때였습니다. 2년 동안 정말 남편 사랑받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다시 태어났다하여 어린애 마냥 나는 응석을 부리고 힘든 일은 다 남편이 도와주었습니다.
수술이 막 끝나고 보호자 면회할 때 중환자실에 들어와서 “당신 정말 살았어? 진짜 살은 거지?” 눈물 흘리던 그 모습은 지금까지도 생생합니다.
아침에 나간 사람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할 수밖에요. 아이들한테는 아빠보다 엄마가 더 필요한 거였나 보다고 생각을 고쳐먹고 남은 세 식구는 하나 되어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다비다” 모임을 알게 되었고 나보다 더 젊고 예쁘고 우리 아이들 보다 더 어린자녀들이 있는 걸 봤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가장 가까운 것은 상처 입은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감싸주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다비다 모임에 보탬이 될까하고 이화여대 평생교육원 카운슬러 2년 전문 과정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뜻밖의 문제란 없다 하나님의 손안에는 이미 답이 있다고 생각하며 늘 하나님께 감사감사 드립니다.
셋째 고비
- 두 번째 판막수술 (2004.3.17.)
18년 만에 송명근 박사님이 계신 아산병원에서 재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제껏 환자라는 사실을 잊은 채 살았는데 몸이 붓고, 숨이 차고, 거동이 불편했습니다. 수술 날짜를 받고 입원했습니다. 이젠 두렵지 않았습니다. 의술도 좋아졌고 수술비용도 적게 들고 죽어도 괜찮고 살아도 괜찮고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게 늘 하나님께 감사 했습니다.
심장수술을 받기위해 수술날짜를 받아놓고 두려움, 불안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제 경험을 말해주고 안정시켜 편안한 마음으로 수술 받게 했습니다. 내가 닥칠 두려움보다 그 분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수술 받기 위해 기도 했습니다.
나 보다 먼저 수술 받고 퇴원할 때 찾아와서 감사의 인사를 하고 퇴원하는 모습들이 내가 큰 일을 해낸 것처럼 기뻤습니다. 매일 하나님을 믿으며 그 분의 인생계획에 따라 살면 더 행복하고 건강해지며 상상하지도 못했던 높이까지 날아오를 수 있다는 것을 다비다 자매님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