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못다 한 말” 박남수권사님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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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ooner 작성일09-08-12 17:27 조회45,129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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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못다 한 말”
박 권사님을 추모하며
09년 7월 6일 사랑하는 박 남수 권사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우리 곁을 떠나셨다. 우리 회원 중에 처음 있는 슬픔이라 당황스러운 가운데 많은 자매들이 떠나시는 권사님의 빈소를 찾아뵈었다. 그리고 정기 모임 시간에 그분을 애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래 글은 회원 한 분이 낭독하였던 애도사이다.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리던 지난 7월 7일 날
세차게 비가 내리다 잠깐 멈춘 시각, 휴대폰 화면 액정에 권사님의 소천 소식이 떴습니다.
서둘러 기차를 타고 올라오는데, 권사님의 생전의 모습이 저에게는 아프게 아른 거렸습니다.
장례식장 발인예배에서 비로소 저는 박 남수 권사님의 생애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발인예배 주례를 맡은 정릉교회 목사님께서는 박 남수 권사님을, 예배에 열심이셨고 항상 조용히 웃으시며, 미소 짓는 얼굴이었다고 고인을 추억했습니다.
저 역시 권사님을 떠올리면, 미소 짓는 조용한 얼굴이었는데, 이것이 우연이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권사님은 곤궁한 살림가운데서도 3형제를 잘 키워내셨고, 그동안 아픈 몸으로도 세상 떠나시기 전까지 빌딩에서 청소 일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일예배만큼은 남달리 철저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그동안 다비다 모임에도 빠지지 않으시고, 어쩌다 혹 늦으시더라도 뒤늦게나마 꼭 참석하셨던 권사님의 성실하심이 충분히 짐작이 되었습니다.
권사님은 오래전에 뇌출혈로 2번이나 이미 쓰러지신 후로, 그 후유증으로 다소 균형을 잃은 걸음걸이셨습니다.
어깨에는 늘 배낭을 둘러메시고, 정기 모임을 마치고는 때때로 저와는 여러 번 지하철을 함께 타고 집으로 돌아갔던 일이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 연세에도 지하철 노선을 저보다 더 잘 아셨고, 그래서 길을 헤매는 저에게 그 때마다 총기 있게 잘 알려주시던 지혜로운 분이셨습니다.
소천 소식을 듣고 저는 내내 가슴이 아팠던 또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저는 부끄럽게도 그분이 권사님이신 줄도 사실 그간 잘 몰랐었습니다.
사역자이면서도 그저 만나면 겉으로만 대했던 나의 이중성에 자책이 되어 마음이 내내 괴로웠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나는 그분에게 진정으로 곁을 내드리며 가슴으로 대화를 나눴을까 생각해보니 너무나, 너무나 죄송했습니다.
어떤 자매도 그분이 그분 인줄 몰랐다며, 내내 가슴아파하며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왜 그리하였을까?
말이 없으셨던, 그러나 믿음이 좋으시고 속 깊으셨던 권사님의 모습을 그동안 제대로 알아봐드리지 못한 것이 무엇보다 나를 오래 동안 자책케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사람을 외모로만 판단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그렇게도 여러 번 당부하고 당부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권사님 정말 죄송합니다. 저와 우리를 용서해 주십시오.
권사님은 세상 어떤 누구처럼, 아프다고 엄살떨며 녹슬어 없어지지 않으시고, 가시는 그날까지 열심히 일하다 닳아서 없어진 진정, 진정으로 ‘거룩한 삶’이셨어요.
권사님, 이 순간 당신 앞에서 겉만 번지르한 저의 삶이 너무나 작고 초라해집니다.
권사님, 비록 이 땅에서는 조금은 초라하고 작으셨을지 몰라도, 이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유업으로 받으셨으니, 당신은 결코 작고 모자란 삶이 아니었고, 가장 값진 것을 얻고 남긴 게 있는 부요한 삶이셨습니다.
기뻐하십시오. 권사님. 이제 이 땅의 수고를 다 마치셨으니 주님의 품안에서 저희를 기다려 주십시오.
이제야 뒤늦게 못다 한 말을 올립니다.
“우리 자매들은 당신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발인예배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이 땅의 모든 사람들 경우처럼, 작은 소나무상자에 누워서 장지로 떠나는 권사님께 오래 동안 머리 숙여 손을 흔들며 작별을 고하고 돌아왔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아울러 사랑하는 자매 여러분 ,
지금까지는 ‘우리 다비다 자매회’는 아름다운‘만남’만을 생각하며 지내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자매 중 처음으로 권사님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내면서‘이별’또한 우리에게 동전의 양면처럼 우리 곁에 가까이 있음을 인정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일부인 이별도 준비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이 그날에, 어떤 모습으로 우리 자매들에게 기억되며 떠나게 될지 미리 한번 스스로 점검해보는 지혜를 가져야만 할 것입니다.
오늘이 7월 정기모임인데, 저의 눈은 아까부터 자꾸만 들어오는 출입문 쪽으로 시선이 가곤 합니다.
뒤 늦게나마 권사님이 익숙한 미소로 들어 설 것만 같아서 말입니다.
지난번 모임 때, 권사님이 마지막 손님으로 뒤늦게 들어오셨습니다.
그 때 반갑게 맞으며 ‘왜 이리 늦으셨어요?’했더니 권사님은 대답 대신 그저 미소로 답하셨습니다. 그것이 저와의 개인적인 마지막 대화였습니다.
그날 한자매가 얼른 일어서서 반기며 권사님께 녹차를 타서 갖다드렸고.......
사랑하는 자매여러분,
죽음은 생명이 끝나는 것이지 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권사님은 우리들의 가슴속에 별 하나로 살아갈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권사님을 추모하며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