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번만’의 기도 / 정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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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ooner 작성일08-11-09 17:42 조회43,59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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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번만’의 기도
정 희 자
가을입니다
며칠 전 비가 촉촉이 내려서 한층 가을이 짙어졌습니다.
왠지 가을이 오면 우리 모두는 겸손해 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이 우리 공동체의 해피 데이 입니다.
저는 모든 해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가을이 깊어가는 이 계절에 저에게 열매로 주신“기도의 열매”를 여러분들과 같이 겸손히 올려드리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지난 10월 11일 !
제 아들이 오랜 방황과 어둠의 굴레에서 세상 속으로 한 발자국 걸어 나왔습니다. 비록 한걸음이지만, 심리적으로 마냥 유아인 우리 아들에게는 그 한걸음이 기적과도 같은 의미입니다.
저의 아들은 자타가 인정하는 콘트라베이스를 전공하는 음악 영재였습니다.
그런 그가 집안 가세가 기울던 대학 1학년이던 2004년부터 학교에도 가지 않고 PC방으로 숨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세상과 소통을 끊고서 말이 없어진 아이는 사이버 공간에서만 대화 하고 마치 자기운명에 총질을 하듯, 총 싸움하는 이상한 게임에 빠져 순식간에 그 세계의 지존이 되었습니다.
아이를 찾으러 야간에 PC방을 전전하면서, 혹시 이러다 내가 변을 당하더라도 오히려 그 일로 우리아이가 회심을 하게만 된다면 차라리 그 편을 택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중독이 되어버린 아이에겐 소용이 없었습니다.
도리 없이 그 후 휴학을 시키고 1년의 시간을 보낸 후 그 아이를 강제로 최전방 사병으로 군에 입대 시켰습니다. 아들이 돌아올 땐 달라질 것이라 꿈을 꾸며 말입니다.
그러나 아이가 무사히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왔으나 게임으로 부터는 여전했습니다. 마지막 남은 기회를 다 써버린 허탈함 ........
그렇습니다.........군대를 아이의 마지막 기회라 여긴 것입니다.
나는 그때부터 마음이 너무나 힘이 들고 솔직히 하나님께 섭섭하였습니다. 절 더러 어떻게 하라고 그러십니까? 깊은 밤 잠 에서 깨어 광야의 당아새처럼 울고 또 울었습니다.
이렇게 아무방법이 없을 땐 오히려 이제 분명 하나님 차례가 아닐까?
그런데 다음날 아침 아이의 이모인 나의 언니가 찾아왔습니다.
“낼 모레 우리아이를 데리고 교수님을 만나러 직접 가겠노라고.......”
그날 저는 하나님께 삼손이 마지막으로 했던 ‘이번 한번만의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이를 그곳에 보내기를 원하면서 마지막으로 했던 기도문을 소개합니다.
오늘은 하나님 앞에 벌거숭이로
수사도 논리도 부끄럼도 다 벗어 버리고
가난한 마음을 열어서 하나님께 말씀 드립니다.
하나님! 불쌍한 제 기도를 들어 주소서.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의 고쳐주심도 어미의 간청이 아니었습니까?
그러니 이 여인의 아들도 제발 고쳐 주소서.
차라리 제가 수로보니게 여인이고 싶습니다.
저를 개라 불러 주셔도 괜찮습니다.
아니 제가 가나안 여인보다 못한 개입니다.
어떤 모욕의 말도 아들의 병과 바꿀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이제 낼 모레면 내 심장에 가시로 박힌 아픈 아들이
오래전 아주 멀리 떠나온 음악에게로 가고자 합니다.
이방인으로 살다가 탕자처럼 되돌아갑니다.
만신창이 아들이 그곳에 지친 걸음으로 당도하면
스승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마음처럼 아들을 용서하게 하시고
배신한 베드로를 민망히 보시던 그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게 하소서.
마음을 지으신 하나님시여!
어찌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고칠 수 있으며 움직이게 하리요.
그것은 사람의 원주인이신 당신만이 가능합니다.
하오니 주님이시여! 제발 나를 보시고 제 아들의 영혼을 고쳐주소서.
백부장의 하인과 야이로의 딸과 우정 어린 벗들의 아픈 친구
중풍병자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고쳐주소서.
제 아들이 자신의 분신이었던 손때 묻은 악기를 다시 만지는 순간
그 서먹함과 미안함이 친구에게 대하듯 가슴 저리게 하시고
다시는 ‘이제 널 떠나지 않겠노라’며 입 맞추게 하소서.
이것으로 오랜 방황은 그만 마치게 하시고
처음보다 더 첫 마음으로 처음보다 더 첫사랑으로
당신이 주신 하늘의 재능으로 이렇게 결단의 노래를 부르게 하소서.
“주님은 선하시며 용서하기를 기뻐하시는 분,
주님은 나와 내 어미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
주님은 나를 기가 막힌 웅덩이에서 건지시는 분,
이젠 다시 떠나지 않으리........ ”
오! 가난한 자들의 주님! 오! 눈물을 멸시치 않으시는 주님!
지난날 제가 방황 하였을 때 아프셨을 주님의 마음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제 아들도 어느 그 날 천상의 멜로디로 연주 할 때에
하늘 문이 열리고 은혜의 빗줄기 내려와 주님의 마음을 알게 하소서.
이제 머잖아 그날이 오면‘이제야 알리라’하시며
하나님의 본심이 아닌‘아픈 사랑’내게서 그만 그쳐 주시니
나, 그동안 너무나 아팠지만 그러나 마침내 사랑이신 당신의 크신 뜻
깨달아 목 놓아 크게 울어 보리라.
그리고 마침내- 아들은 이모와 함께 자신의 악기가 있는 선생님의 연습실에 만 4년 만에 당도해 그 문 앞에 섰습니다.
안본사이에 모습에서 세월이 느껴지는 선생님은 양팔을 벌리고 단숨에 달려와서 아이를 덥석 끌어안고 연습실로 들였습니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오래 동안 아이를 따스하게 감싸 안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안도감에 무너지듯 스승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한없이 울었습니다. 그곳은 이내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모두들 베토벤이 돌아온 것을 그렇게 감격하며 환영해 주었습니다.
“괜찮아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면 돼. 나는 너를 잊은 적도, 버린 적도 없다.”스승이 하신 한마디는 딱 이것뿐이었습니다.
이 아이 하나를 세우기 위해 스승의 마음은 마치 예수님의 마음을 보여주었으며 이모의 헌신 또한 사람을 살리는 헌신 이었습니다.
이제아들은 손에 물집이 생기도록 연습을 하며 음악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며,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겠습니까?
한 사람이 세워지는 데는 수많은 눈물의 헌신과 기도가 있어야 함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려야 함도 알았습니다.
내년 해피데이의 새로운 주인공은 바로 당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은 10월 ‘해피데이’에서 나눈 간증입니다)
정 희 자
가을입니다
며칠 전 비가 촉촉이 내려서 한층 가을이 짙어졌습니다.
왠지 가을이 오면 우리 모두는 겸손해 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이 우리 공동체의 해피 데이 입니다.
저는 모든 해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가을이 깊어가는 이 계절에 저에게 열매로 주신“기도의 열매”를 여러분들과 같이 겸손히 올려드리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지난 10월 11일 !
제 아들이 오랜 방황과 어둠의 굴레에서 세상 속으로 한 발자국 걸어 나왔습니다. 비록 한걸음이지만, 심리적으로 마냥 유아인 우리 아들에게는 그 한걸음이 기적과도 같은 의미입니다.
저의 아들은 자타가 인정하는 콘트라베이스를 전공하는 음악 영재였습니다.
그런 그가 집안 가세가 기울던 대학 1학년이던 2004년부터 학교에도 가지 않고 PC방으로 숨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세상과 소통을 끊고서 말이 없어진 아이는 사이버 공간에서만 대화 하고 마치 자기운명에 총질을 하듯, 총 싸움하는 이상한 게임에 빠져 순식간에 그 세계의 지존이 되었습니다.
아이를 찾으러 야간에 PC방을 전전하면서, 혹시 이러다 내가 변을 당하더라도 오히려 그 일로 우리아이가 회심을 하게만 된다면 차라리 그 편을 택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중독이 되어버린 아이에겐 소용이 없었습니다.
도리 없이 그 후 휴학을 시키고 1년의 시간을 보낸 후 그 아이를 강제로 최전방 사병으로 군에 입대 시켰습니다. 아들이 돌아올 땐 달라질 것이라 꿈을 꾸며 말입니다.
그러나 아이가 무사히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왔으나 게임으로 부터는 여전했습니다. 마지막 남은 기회를 다 써버린 허탈함 ........
그렇습니다.........군대를 아이의 마지막 기회라 여긴 것입니다.
나는 그때부터 마음이 너무나 힘이 들고 솔직히 하나님께 섭섭하였습니다. 절 더러 어떻게 하라고 그러십니까? 깊은 밤 잠 에서 깨어 광야의 당아새처럼 울고 또 울었습니다.
이렇게 아무방법이 없을 땐 오히려 이제 분명 하나님 차례가 아닐까?
그런데 다음날 아침 아이의 이모인 나의 언니가 찾아왔습니다.
“낼 모레 우리아이를 데리고 교수님을 만나러 직접 가겠노라고.......”
그날 저는 하나님께 삼손이 마지막으로 했던 ‘이번 한번만의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이를 그곳에 보내기를 원하면서 마지막으로 했던 기도문을 소개합니다.
오늘은 하나님 앞에 벌거숭이로
수사도 논리도 부끄럼도 다 벗어 버리고
가난한 마음을 열어서 하나님께 말씀 드립니다.
하나님! 불쌍한 제 기도를 들어 주소서.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의 고쳐주심도 어미의 간청이 아니었습니까?
그러니 이 여인의 아들도 제발 고쳐 주소서.
차라리 제가 수로보니게 여인이고 싶습니다.
저를 개라 불러 주셔도 괜찮습니다.
아니 제가 가나안 여인보다 못한 개입니다.
어떤 모욕의 말도 아들의 병과 바꿀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이제 낼 모레면 내 심장에 가시로 박힌 아픈 아들이
오래전 아주 멀리 떠나온 음악에게로 가고자 합니다.
이방인으로 살다가 탕자처럼 되돌아갑니다.
만신창이 아들이 그곳에 지친 걸음으로 당도하면
스승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마음처럼 아들을 용서하게 하시고
배신한 베드로를 민망히 보시던 그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게 하소서.
마음을 지으신 하나님시여!
어찌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고칠 수 있으며 움직이게 하리요.
그것은 사람의 원주인이신 당신만이 가능합니다.
하오니 주님이시여! 제발 나를 보시고 제 아들의 영혼을 고쳐주소서.
백부장의 하인과 야이로의 딸과 우정 어린 벗들의 아픈 친구
중풍병자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고쳐주소서.
제 아들이 자신의 분신이었던 손때 묻은 악기를 다시 만지는 순간
그 서먹함과 미안함이 친구에게 대하듯 가슴 저리게 하시고
다시는 ‘이제 널 떠나지 않겠노라’며 입 맞추게 하소서.
이것으로 오랜 방황은 그만 마치게 하시고
처음보다 더 첫 마음으로 처음보다 더 첫사랑으로
당신이 주신 하늘의 재능으로 이렇게 결단의 노래를 부르게 하소서.
“주님은 선하시며 용서하기를 기뻐하시는 분,
주님은 나와 내 어미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
주님은 나를 기가 막힌 웅덩이에서 건지시는 분,
이젠 다시 떠나지 않으리........ ”
오! 가난한 자들의 주님! 오! 눈물을 멸시치 않으시는 주님!
지난날 제가 방황 하였을 때 아프셨을 주님의 마음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제 아들도 어느 그 날 천상의 멜로디로 연주 할 때에
하늘 문이 열리고 은혜의 빗줄기 내려와 주님의 마음을 알게 하소서.
이제 머잖아 그날이 오면‘이제야 알리라’하시며
하나님의 본심이 아닌‘아픈 사랑’내게서 그만 그쳐 주시니
나, 그동안 너무나 아팠지만 그러나 마침내 사랑이신 당신의 크신 뜻
깨달아 목 놓아 크게 울어 보리라.
그리고 마침내- 아들은 이모와 함께 자신의 악기가 있는 선생님의 연습실에 만 4년 만에 당도해 그 문 앞에 섰습니다.
안본사이에 모습에서 세월이 느껴지는 선생님은 양팔을 벌리고 단숨에 달려와서 아이를 덥석 끌어안고 연습실로 들였습니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오래 동안 아이를 따스하게 감싸 안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안도감에 무너지듯 스승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한없이 울었습니다. 그곳은 이내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모두들 베토벤이 돌아온 것을 그렇게 감격하며 환영해 주었습니다.
“괜찮아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면 돼. 나는 너를 잊은 적도, 버린 적도 없다.”스승이 하신 한마디는 딱 이것뿐이었습니다.
이 아이 하나를 세우기 위해 스승의 마음은 마치 예수님의 마음을 보여주었으며 이모의 헌신 또한 사람을 살리는 헌신 이었습니다.
이제아들은 손에 물집이 생기도록 연습을 하며 음악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며,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겠습니까?
한 사람이 세워지는 데는 수많은 눈물의 헌신과 기도가 있어야 함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려야 함도 알았습니다.
내년 해피데이의 새로운 주인공은 바로 당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은 10월 ‘해피데이’에서 나눈 간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