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 / 허윤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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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im 작성일22-12-16 15:03 조회9,74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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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 종
허윤숙
지난달에 있었던 다비다 가을캠프의 여운이 아직도 남아있는데, 벌써 한 달이 지났다고 생각하니 시간이 정말 빨리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중2와 초1의 두 아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이고, 막내조의 허윤숙입니다. 제가 3년 전 다비다에 왔을 때, 얼굴 안색이나 표정이 굉장히 안 좋았다고 하시더라고요. 3년간 다비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게 드리워졌던 슬픔의 그늘이 사라지고 또 제법 체격도 좋아져서 더 건강해진 삶을 살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동안 저는 다비다에서 큐티훈련과 제자훈련, 기도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도 나눌 수 없는 마음을 깊이 이해해 주시는 다비다 언니들 덕분에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한 분 한 분의 마음을 제가 기억하고 감사하고 있다고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현재 저의 인생은 아이들과 부모님의 스케줄에 맞춰 돌아갑니다. 저희 윤숙조의 조원들이 대부분 삼사십 대인데 저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직장생활과 양육을 동시에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저는 주중에 아이들 등하교 준비를 도와주고 기도모임과 부모님 댁에 한두 번 다녀오면 일주일이 정말 화살같이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큰 아이는 중학생이라 작년에 사춘기가 왔는데,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정말 어려웠습니다. 저의 모든 생각이나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는 이미 자녀들이 장성하여서 독립을 하기도 하고, 결혼도 해서 어쩌면 할머니가 되신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지금처럼 복지제도도 부족하여 몇 배로 더 힘드셨을 텐데, 수많은 세월을 견뎌 오신 것만으로도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제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느낀 것은 아이들이 제 인생의 선생님 같다는 것입니다. 사실 아이들은 엄마인 저를 통해 인생을 배우고, 교회에서는 말씀을 배우며, 학교에서는 사회와 세상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오히려 아이들이 거울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서 제 모습이 보였고, 교회가 보였고, 학교가 보였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대가 느껴졌습니다. 소통방식과 대상을 인식하는 방법도 차이가 났습니다. 이렇게 아이들을 통해 저는 세상을 배우고 있습니다. 제가 배울게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것은 인내와 순종입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눈높이를 맞추고, 때로는 멈춘 듯한 아이들의 시간 옆에 서 있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엄마로서 내가 했던 실수를 아이들은 하지 않도록 돕는 게 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아이들 스스로 실패하고 배우도록 기다리는 것이 저의 일인 듯했습니다. 아직 10년도 채 살지 않은 둘째 녀석이 엄마의 잘못을 지적할 때, 할 말은 많지만 수용하고 사과해야 했습니다. “그래, 알았어. 미안해” 아무리 하나하나 가르친다고 다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큰 아이를 통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기분 상해하는 아이에게, 마음이 회복될 수 있도록 들어주고 위로해 주어야 했습니다. 정리를 힘들어 하는 두 아들의 뒤치다꺼리를 하자면, 전 시간도 없고 몸도 피곤한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잠시 멈추어 아이 입장에 서서 아이에게 주도권을 내어주는 일은 제게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게 찾아오셔서 제가 마음의 문을 열 때까지 기다려주셨던 예수님을 떠올리면, 힘들어도 배워가는 게 맞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말도 안 되게 아이들이 제게 짜증을 부리는 날은, 골고다 언덕을 오르실 때 수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으며 십자가를 짊어지신 예수님을 떠올립니다. 그러면서 겨우 마음을 추스릅니다. 이렇게 조금씩 엄마가 되어가고, 조금씩 성숙해가는 제가 되는 듯합니다. 아이들 덕분에 예수님께 더 나아가게 되니 사실 제가 감사할 일입니다.
제가 순종해야할 대상이 아이들 뿐만은 아니었습니다. 부모님도 계십니다. 지난해 기도해 주신 덕분에 저희 아버지는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식사도 하시고, 집 안에서는 잘 걸어 다니십니다. 많은 병이 생기셨지만 잘 인내하고 계십니다. 아버지가 쓰러지시고 난 후에, 아버지를 보살펴 드리며 저는 또 다른 순종을 배웠습니다. 병원에서는 시간에 맞춰, 20가지가 넘는 약을 순서대로 챙겨드려야 했는데, 약마다 사용하는 기계도 각각 달랐습니다. 어떤 약들은 상충되어 시간차를 두고 섞이지 않게 드려야했습니다. 너무 혼란스러워서 간호사 선생님들께 계속 도움을 요청해야했습니다. 의료진들은 아버지 몸 상태의 여러 가지 수치를 보고 진단을 내리시기에, 최선을 다해 말씀 그대로 진행해야 했습니다. 제가 실수를 하면 그만큼 덜 정확한 수치가 나와서, 제대로 된 진료가 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를 케어해 드리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들은 말씀을 그대로 따르는 훈련을 많이 시켜주신 것 같습니다. 지금껏 저는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기는커녕, 혼자 애들 키우며 걱정을 시켜드렸는데 작게나마 도움이 되어드릴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분명 얼마 전까지 부모님도 남동생도 서먹하게만 느껴졌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고난을 허락하셔서 저희들의 맺힌 것을 풀어주시고,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고난의 시간이 아니었다면 여전히 순종을 배우지 못하고, 어리석게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올해는 막내조의 조장으로서 조원들에게 순종할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되었습니다. 저희 조에 언니들도 계시고 동생들도 있습니다. 언니들은 겸손히 저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순종해 주시고, 동생들은 언니들을 신뢰하고 잘 따라와 주고 있습니다. 다비다에서 귀한 만남을 통해 서로 순종을 배우며 함께 세워져가게 되어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몸도 맘도 연약한 제게 순종이 제사보다 나은 것을 알려주시고 사랑으로 빚어가 주시는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드리며 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