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나무 아래서 / 유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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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im 작성일23-11-15 16:23 조회6,02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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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나무 아래서
유숙자
11월 3일이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다비다 자매들의 캠프 행사 때 항상 날씨 하나는 좋았다는 전 회장 김혜란 목사님의 말씀을 전해 듣고 생각해보니 날씨로 힘들었던 캠프를 한 번도 겪은 일이 없었던 것 같다.
난 제일 작은 캐리어를 들고 여행 기분을 한껏 풍기며 경쾌하게 집을 나섰다. 물론 우산을 챙기지 않고 말이다. 약속 장소인 길음역에는 우리 필그림 조원들이 상기된 얼굴로 모여 있었다. 대형버스에 다비다 동생들과 함께 올라탔다.
코로나 이후 처음 1박2일로 지낼 ‘진새골 사랑의 집’에 도착했다. 이곳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 다비다 자매들은 변함없이 자리한 ‘사랑의 집’의 정원 등을 보며 친정집에 온 듯 평온한 미소를 지었다. 미끄러지듯 정해진 각자의 방에 짐을 풀고 식당으로 내려가 점심을 먹고 캠프 시작을 알리는 예배 장소에 모였다. 허윤숙 자매의 간단하면서도 울림이 있는 기도로 시작된 예배는 ‘짐과 쉼’이라는 제목의 이주은 목사님 설교로 이어졌다. 목사님의 뒤쪽 벽면에 자리하고 있는 플래카드에 “쉼, 다시 시작”이라는 큰 글자가 눈에 들어 왔다.
마태복음 11장 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부모님과 자식들이 어떤 무게 있는 물건을 들었을 때 누가 드는 게 더 무거울까? 당연히 부모님의 것이 더 무겁다. 그렇듯, 우리의 짐보다 하나님께서 우리 대신 지어주신 짐이 더 무겁다. 그러니 우리는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모든 짐을 맡기고 푹 쉴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쉬면서 에너지를 얻고 곧 끝이 아닌 새 힘으로 뭔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다시 시작하는 결심을 하자는 말씀이셨다.
예배를 마친 우리는 야외 음악회 장소인 모과나무 아래 기타를 둘러메고 음향 조절을 하고 계신 박형근 찬양사역자님을 발견하고 기대에 찬 탄성을 감추지 못했다. 각자 자유스러운 모습으로 의자에 혹은 매트 깔린 바닥에 삼삼오오 그룹을 이루며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조금 전 예배 때 곧 시작될 야외음악회 시간에 서로 서먹해 하지 말라고 인사한 새 가족 김정은 자매님, 이나라 자매님, 몽골의 할리웅 목사님, 부산의 장순덕 전도사님, 문정엽 자매님, 이미순 자매님 등도 자연스럽게 우리들과 함께 섞여 같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로써 우리 다비다는 글로벌한 면모를 갖춘 가을 캠프 축제의 장에서 각자의 가슴에 자축 폭죽을 터트리며 앉아 있었다.
드디어 시작을 알리는 전자 기타의 음률이 스피커를 통해 흘fj 나오자 우리는 장착된 흥분을 표출하며 노래를 따라 부르고 소리 죽여 경청하기를 30여 분 동안 반복하였다. 연주 도중에 비가 한 두 방울 우리의 뺨에 신호를 보냈지만 우린 비를 흠뻑 맞아도 모처럼 맞은 이 분위기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기세로 꿈쩍하지 않았다. 단지 음향기기에 빗물이 들어가 망가질세라 걱정이 된 자매 한 분이 비닐과 우산 등으로 기기를 감쌌지만 곧 우산이 무색할 만큼 먹구름은 저만치 멀어져 갔고 흰 회색 구름이 음악회 광장을 지붕처럼 덮고 있었다.
모두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다 모과나무에 삐죽 고개를 내민 모과를 보았다. 곱게 물든 옷으로 차려 입은 나무들은 하나님 같은 넓은 마음으로 몸을 흔들며 우리를 반겨 주었다. 하나님께서 우릴 얼마나 끔찍이 사랑하시는지를 깨닫게 해주시는 순간이었다. 잠깐 흩뿌린 빗방울 덕분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다가 모과나무의 열매를 보고 예쁜 단풍의 손뼉소리를 듣게 해주신 하나님께서 함께 동행하고 계심을 체험하게 하는 현장이었다. 나는 ‘아멘’을 속으로 외치며 유아스럽지만 하나님을 향해 박수를 쳤다.
박형근 찬양사역자님의 연주가 끝나고 우리들의 장기자랑이 펼쳐졌는데, 김혜란 목사님의 우크렐레의 솜씨는 겨우 일 년 배웠다는데 엄청 노련한 솜씨이셨다. 우린 우크렐레의 연주에 맞춰 박수치며 노래를 불렀고 어린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 흥분하였다.
박정옥 자매님은 나이에 비해 아주 꼿꼿한 자세로 하모니카를 부시는데 산천이 화합하듯 했다. 조용한 나뭇잎새의 바람소리와 어울리게 ‘숨어 우는 바람소리’ 등 2곡의 연주를 마치고 우레같은 박수를 받게 되면서 나는 우리 필그림조의 당당함에 한껏 자존감이 뿜뿜하여 손이 아프도록 박수를 쳤다.
이어 내 차례가 되었는데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이라는 패티김의 노래를 불렀다. 나는 한껏 패티김에 가까운 우아함과 선글래스, 모자 그리고 패티김의 독특한 입술을 상징하고자 두툼하게 바른 빨간 입술을 흉내내려고 노력하였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얼마나 반주기와 내가 겉돌고 있었는지. 그 현장 그 장면을 싹 모두의 기억에서 지우게 해달라고 기도할 판이다. 정말 최악이었다.
그러나 그런 나의 실수와 망가짐이 더욱 흥을 돋웠다는 말에 도대체 우리 다비다자매회의 넓은 마음씨의 착함은 어디까지인 건지 지금도 생각하면 등에 땀이 나게 아찔하지만 자매들이 고맙고 감사하다. 두 곡을 선정했지만 의상 준비 관계로 일단 난 퇴장하였다. 이추원 자매님의 찬양, 은방울 자매들처럼 생긴 부산 자매들의 찬양, 옛날 가수였다는 윤미혜 자매님의 노래, ‘초혼’은 우리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리고 이영복 장로님의 가슴을 파고드는 동굴 보이스 같은 목소리는 사랑의 집 둘레를 수십 년 지켜왔을 초목들이 하늘로 뛰어 올랐다 내려앉을만한 성량으로 우리의 가슴을 시원하게 뻥 뚫리게 해주셨다.
그 다음 내가 “동네오빠”를 “동네언니”로 개사해 부르려고 동네 아줌마처럼 꾸며 입고 모과보다 더 못생긴 얼굴로 등장하여 일단 주의를 끌어 모았다. 이주은 목사님! 이 분은 어떤 분이신가? 나를 응원해 주시겠다며 함께 등장한 목사님! 모두를 깜놀시키신 분이시다. 본격적인 동네언니 노래가 시작되자 흔들기 시작하며 놀라움 속에 웃음보를 터뜨렸는데 아마도 이 때 모과나무의 모과가 너무 깜놀하여 지상으로 떨어졌던 모양! 이튿날 새벽, 조원들이 주워서 내 방에 던져 놓은 모과를 보고 한바탕 웃었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아무튼 김혜영 자매, 채희정 자매들까지 무대로 나와 춤 솜씨가 가세되자 공연장은 순식간에 품바 타령의 무대가 무색할 정도였다. 우아한 음악회는 망가져 버렸으나 엄청난 재미가 있어 웃어 재꼈다며 모두가 흡족해 하여 한시름 놓게 되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우리들은 유인복 강사님의 유쾌한 웃음이 있는 저녁 강의를 들으러 강의실에 모여 또 한 번 웃게 되었는데 한 번 터진 웃음인지라 모두들 건들기만 하면 터지는 웃음보들이었다. 이번 캠프의 주제가 ‘쉼’인 만큼 여기서 첫날 행사를 끝내자는 목사님과 장로님의 결정에 “와 정말 쉬는 캠프구나!”하는 은혜를 받았다. 숙소로 돌아온 우리 필그림조는 밤 12시가 다 되도록 웃고 웃고 또 웃었다. 우리 조는 만 70세가 넘은 고령자들이다.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지 잠자리에 들기를 거부하신다. 나는 내일을 위하여 조금이라도 자야 된다며 각자 방으로 해산을 시켰지만, 나 역시 흥분한 탓인가, 아니면 음악회 때 유난히 실수를 많이 한 내 모습 때문인가 쉽게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새벽녘에야 깜박한 것 같다. 그래도 동생 자매들이 즐겁게 웃었으니 되었다는 자기합리화로 억지로 잠이 든 거였다.
웅성거림에 깨어보니 6시도 안되었는데 조원들이 다들 깨어 있었다. 웃고 자서 그런지 공기도 좋고 해서인지 늦게 잤는데도 일찍 일어났지만 피곤한 줄 모르겠다며 밝게 웃고들 있었다. 못 말리는 필그림 가족들이다. 난 곧장 우리들을 체력으로 단련시켜 주시는 김미려 쌤을 약속대로 모시러 김혜란 목사님과 함께 초월역으로 갔다. 우린 만나자마자 엄마에게 이르듯 어제 있었던 일을 얘기 했는데 김미려 쌤 역시 얘기만 듣고도 몹시 재미있어 하시면서 웃으셨다. ‘진새골 사랑의 집’에 도착하니 김미려 쌤은 초행인 이곳이 너무 마음에 든다며 감탄하셨다. 아침식사를 마친 우리는 보물찾기를 포기하고 장기자랑에 발표할 천태만상과 국민체조 율동을 연습하기로 했다. 보물찾기를 참 좋아하는 나로서는 몹시 아쉬운 결정이었다.
장기자랑 시간에 우리 필그림조가 첫 무대로 서게 되었다. 열심히 준비한 탓에 별로 틀린 것 없이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이은복조의 율동에 우린 진짜 축제 기분을 맛보며 열광하였다. 막내 허윤숙조가 자녀들과 함께 출연한 연극, ‘하늘나라의 오징어게임’은 주님만 꼭 붙들고 있으면 영생을 얻는다는 메시지로 진한 감동과 감탄을 자아냈다. 이어 새 가족 이나라 자매 가족의 ‘은혜’라는 찬양은 우릴 감동을 넘어 모두를 울게 만든 시간이었다. 특별히 하은이의 눈물로 나의 묵직한 돌맹이 가슴에서 감동과 함께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폐회예배는 구구절절 은혜스러운 김이제 자매님의 기도로 시작되었다. 히브리서 12장 1~2절 말씀을 본문으로 ‘끝이라고 생각할 때가 바로 시작할 때’라는 제목으로 담담하고 진심인 체험담과 함께 설교를 시작한 김혜란 목사님의 설교는 우리를 불끈 뭔가 시작해 보고 싶다는 불꽃을 가슴에 새기게 하는 말씀이셨다. 잔잔한 감동의 말투와 설교 말씀은 지금 며칠이 지났는데도 여운으로 남아 있다.
하나님께 이 모든 영광을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