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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다와 함께 / 김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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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im 작성일21-07-12 14:28 조회16,9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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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다와 함께

김삼임

 

할렐루야! 저는 봉사팀에서 14년 동안 다비다를 섬겨 오다가 올해부터 봉사직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60대 후반이 되니 때가 된 것이죠. 시원섭섭한 반면에 감사했습니다. 왜냐하면 여유가 생기니 저 자신에게 사랑과 정성을 쏟을 수 있게 되었고, 삼임조 조장으로서 좀 더 성실히 섬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조는 그동안 정모 때마다 제가 앞서서 전체적인 봉사를 하다 보니 깊은 대화의 교제 없이 헤어질 때가 많았지요.

출석 체크, 기도 제목 등등 조원들이 다 알아서 쓰곤 했어요. 사실 조별 모임이 시간이 짧아 아쉬웠는데 요즈음 정기모임 후에 조별로 따로 모임을 갖게 되니 조원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어서 빨리 코로나가 종식되어 이수교회의 뷰가 좋은 식당 밥도 먹고 캠프도 가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입니다.

 

지금부터는 저의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1987년, 우리나라 정세가 암울하고 독재정권에 맞서는 학생들의 시위로 사회가 어수선할 때 남편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금도 저는 '1987년'이란 영화를 보지 못합니다. 갑작스런 사별로 인해 제 나이 33살에 7살, 5살 남매를 안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캄캄했을 때, 상암동에서 길음동으로 이사하며 한복 바느질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던 날,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운동장을 걸어가며 중얼중얼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발 아이들과 제가 안 아프고 살아가게 도와주세요." 아니 기도라기보다는 절규였습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은 '가장'이란 무게감으로 얼마나 힘들고 어렵게 슬픔과 절망 앞에서 살아왔나요? 저는 의지할 이가 오직 하나님뿐이었습니다. 날마다 철야기도로 밤을 새워 울며불며 허리가 끊어질 듯한 애통함으로 기도하며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라는 찬양을 부르며 눈물이 제 양식이 되었습니다. 세상 바라보지 않고 주님만 바라보겠다는 제 신앙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도 저도 감당하기 힘든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좁은 12평 아파트에서 살다보니, 아이들한테 때론 무서운 엄마, 사랑이 없는 엄마가 되었습니다. 조용히 타이르고 사랑으로 가르치고 품어줄 마음의 여유, 시간적 여유가 없어 특히 장녀인 딸한테 더 자주 회초리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딸에게 마음의 상처를 준 미안함에 지금도 딸과의 포옹이 어색합니다. 그런 딸이 잘 성장해주고 결혼하여 아이 낳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고 있어 감사합니다. 가끔 옛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미안해. 엄마가 부족하여 잘못했구나. 용서해다오."라고 딸에게 말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지난날의 기억의 저의 가슴을 저밉니다.

여러분, 지금도 자녀와의 갈등과 고난의 터널에서 울고 계시지는 않으십니까? 그러나 언젠가는 그 터널에서 벗어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진정한 보호자이신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관심 안에 있으니까요.

 

저는 한복 짓는 기술을 배워 밤을 지새워가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어느 날 건강검진을 통해 대장암이란 선고를 받고 참으로 암담하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당장 애들 걱정이 앞섰습니다. 아, 어떡하지? 또 다시 크나큰 시련 앞에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아이들 결혼할 때까지만 앞으로 5년만 더 살게 해 주세요.” 몇 년 동안 방황하며 하나님과 멀어졌던 자신을 돌아보고 눈물로 기도하였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나의 방패가 되시며 반석이시며 피난처가 되신 하나님을 부르며 히스기야가 15년의 생명을 연장한 것을 묵상하면서 하나님 손에 생사를 맡겼습니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시간이 생겨 다비다 사무실이 정릉으로 이사한다기에 도울 일이 없을까 하고 찾아갔는데 김 목사님께서 살림집사로 일하라고 하셔서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정말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그때입니다. 북한산에 오르며 맑은 공기와 나무와 시냇물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천지창조에 감탄하며, 큐티하는 가운데 말씀과 기도로 은혜를 받았고, 큐티반 자매들의 중보기도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회복케 해주셨으니 그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기에 다비다를 섬기는 것이 저에게 주신 소명으로 알고 봉사를 해왔습니다. 하나님께서 하게 하셨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는 야고보서 1:2~4 말씀을 제 삶에 이루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지금부터는 다비다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며 비교적 오래 전 이야기를 중심으로 몇 가지만 적어보려고 합니다.

 

1) 가장 감동적인 일은 박광철 목사님의 초대로 다비다 30여 명의 아이들과 엄마들이 함께 다녀온 미 서부여행입니다. 제 생애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습니다. 라스베가스, 그랜드캐년, 영화 촬영지 유니버설 스튜디오 등등의 여행지와 박광철 목사님의 교회 성도들이 정성스럽게 준비해주신 음식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2) 숭의교회에서 ‘사랑의 관계회복을 위하여’ 집단 상담으로 저 자신과 내면을 들여다보며 깨달았던 시간은 매우 유익했습니다. 3) 무의도에서의 여름 수련회, 아이들과 바다에서 파도타기하며 놀았던 즐거운 일과 삼겹살 파티가 생각납니다. 4) 불광동 팀 수양관에서의 영성훈련. 억수로 비가 쏟아지는 밤 김향숙 강사님의 인도로 엄마들이 심중의 슬픔과 아픔을 토해내며 응어리진 가슴 아픈 고통들을 달래며 울부짖었던 일도 떠오릅니다. 5) 부천 버들캠프장과 부산 호산나교회에서 다비다가 개최한 천국잔치, 싱글동산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은 저를 섬기는 자의 길을 가게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우리 막내 해피맘들의 가슴 아프고 가슴 저리게 하는 사연들을 들을 때마다 품에 꼭 안아주며 “힘내라 우리 언니들이 기도하며 함께 할게.”라고 응원을 보내고 싶습니다. 오직 예수님에게 길이 있고 답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세상의 어떤 유혹이 올 때 기도하며 참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처럼 말씀에서 답을 찾으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부디, 사랑을 많이 받고 회복하고 치유된 우리 언니들이 좀 더 나누고 베풀고 돕는 자가 되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안에서의 한 가족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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