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구름 한 조각 / 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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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im 작성일24-12-13 13:08 조회1,08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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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구름 한 조각
이나라(해피맘 1조)
다비다를 만나게 된 지 어느덧 1년이 되었네요. 삶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에 난 무얼 나눌까 고민했는데, 삶 속에서 말씀으로 응답하셨던 하나님과 제 두 편의 묵상 기도 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1) 가정
저는 친정어머니께서 교회에 출석하게 되시면서 온 가족이 자연스럽게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주일성수를 기본으로, 어렸을 때 자주 아파 저를 놓고 서원기도를 하셨던 어머니에 의해 반주도 하며 교회 안에서 나름 착실한 학생으로 평범하게 자랐습니다. 29살이 되던 어느 날 청년부 나눔 시간에 서른이 되면 뭔가 이룰 줄 알았는데 “난 돈도 없고, 남자도 없네.”라며 내게 없는 것에 대해 탄식했었습니다. 그러다 다음 해 ‘말씀이 꿀송이처럼 달다’는 찬양 인도자인 남편을 만나게 되었고 부모님께 인사드리는 자리가 상견례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예비해 두신 배우자가 이 사람이 맞는지 처음으로 자진하여 새벽기도에 나갔습니다. 삶의 터전을 떠나 살아야 하는 두려움이 몰려 왔었는데, 그때 주님께서 나와 함께하시며 나를 굳세게 하시고 도와주신다는 말씀을 붙들게 하셨습니다. (사 41:10)
만나게 된지 114일 만에 생각지도 못한 초고속 결혼을 하게 되었고 그해에 첫째 아이를 품게 됩니다. 출산하고 아이의 발달이 느려 의심하던 마음에 10개월이 돼서야 병원을 찾게 되었는데 검사 결과 다운증후군으로 확진을 받습니다. 제 입에서는 그저 “주님의 계획이 있으시겠지.”하며 받아 들였는데, 청년 때 특수학교 실무사를 하며 늦게나마 직업재활을 공부한 졸업식에선 선생님과 엄마의 자리는 다르다며 “졸업생 여러분 꼭 좋은 선생님이 되세요!”라고 울며 소감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3년 후 둘째 아이가 찾아와 출산 후 한 신생아 검사에서 선천성 대사 증후군으로 이상이 나옵니다. 제가 몸조리도 하기 전 아이를 대학병원에 입원 시키며 검사를 하게 되고, 특수 분유와 영양소의 용량을 지키며 이유식을 하였습니다. 큰 아이 치료실과 함께 둘째 아이의 병원을 전전하며 다니는 일상을 보냅니다.
2) 기도의 자리
장애인 큰 아이, 희귀 난치병인 둘째 아이, 2016년에는 셋째 아이를 출산하게 되면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세 아이를 양육하는 것에 지쳐만 갔습니다. 어느덧 내 이름은 없고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인 내 역할과 자리만 남아 일상에서 숨을 내뱉듯 “죽겠네. 죽겠네...”라는 말만 나왔습니다. 정말 죽을 것 같은 마음에 “나는 분명 크리스천인데 왜 자꾸 넘어질까?”하는 의문을 가지고 혼자 수련회에 참석하였습니다. 간절히 주를 찾는 자에게 응답을 하시듯 나의 어려움과 문제의 답을 구하는 내게 하나님께서는 ‘생명과 사람, 예배와 교회, 다음 세대와 학교’를 세우라는 꿈을 주시며 공동체를 위한 기도를 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생겼는데 성경 공부를 위해 등록한 교회 새신자 소감에서 “고난이 내게 축복입니다. 전에는 말씀을 읽어야 하는 의무감에 성경을 읽었었는데, 이제는 주 안에서 살기 위해 말씀을 봅니다.”하고 삶을 나누게 하셨습니다.
3) 사별
다음 해 남편이 감기로 처방 받은 약에 효과가 없어 큰 병원으로 가라는 소견서에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 몇 주가 지나 혈액암이라는 진단을 받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기도를 받았었는데 치료하며 괜찮아지는 듯 싶었던 병이 더 이상 손을 못 쓰게 되면서 아이들이 3, 5, 8살이던 2018년 12월 23일에 남편을 천국으로 이사 보냈습니다. 허망함과 슬픔이 몰려오기도 했지만, 이젠 나를 통해 일하실 거란 주님의 음성에 사명감으로 더욱 열심히 살아갔습니다.
4) 기도 일기
오전에는 남편 병 간호하고 오후엔 아이들 가르치며 저녁엔 세 아이 양육했던 고단한 하루의 일기입니다.
2018년 6월 27일
주님, 오늘도 병원을 4번 찍고 부랴부랴 아이들을 찾다가 둘째의 요청에 부모 참여 수업을 하고, 첫째의 사라짐에 어둑어둑해진 동네를 돌다 순찰하는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고, 막내의 떼 부림 사이에 하루도 마무리됩니다.
솔직히 삶은 쉽지 않습니다. 왜 내게 말씀을 주시는지, 왜 내게 행하라 하시는지, 다르게 편하게 사는 사람도 많은 것 같고, 다르게 멋지게 사는 사람도 많은 것 같은데,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닌 이 모습 그대로 순종하는 모습을 원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를 대신할 자가 누구입니까? 나의 지팡이가 무엇입니까? (출 4:10~17)
당신 안에 거하기에 나의 작은 몸부림, 이 수고조차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셨으니 알게 하소서. 나의 생각과 마음과 입술을 지키셔서 오직 주의 말씀만이 선포되어지고, 살아 있는 동안 그렇게 살기를 원합니다.
주님! 그리스도인이라 고백하면서도 나의 주인이 여전히 내가 되었던 죄를 고백합니다. 주님! 여전히 죄악이 나를 끌어내리고 삶이 나를 덮칠지라도 풍랑도 잠잠하게 하셨던 주님은 내 마음을 잠잠케 하시고 나를 담대히 세워주실 줄 믿습니다. “죽겠다, 죽겠다.” 한 이 시간들이 “살겠다, 살겠다.”하는 소망의 삶이 되어, 어렵고 힘들고 절망 속에 있는 자들에게 먼저 손 내미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기도하고 싶지만 기도할 수 없고, 말씀을 보고 싶지만 말씀이 날 읽지 않는 그 시간도 주님은 나와 함께 동행하셨음을 압니다. 내가, 우리가, 주의 사랑을 경험하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변함없는 주 사랑을 고백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주가 주시는 참된 평안이 가득한 밤이 되길 소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5) 묵상 일기
어느 날 설교 시간에 많이 알고 암송하며 성가곡으로도 찬양하는 시편 23편 말씀을 듣게 됩니다. “여호와는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 시키시고,,,”에서의 ‘소생’이라는 단어가 내 마음에 박히며 걸리기 시작했습니다. 내 모습이 살아 있는 모습인지 말씀에 비춰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2023년 2월 3일
누가 나에게 교만하다고 말했다. 태어나서 나를 설명하는 그런 단어는 처음 듣는지라 마음속에서 당신이 나에 대해 뭘 그리 많이 아냐고 따져 물었다. 욱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니면 아닌 거지 왜 욱하는 마음이 든 걸까?
사람에게서 나의 수고를 좀 알아주길 바라고, 좋은 사람으로만 평가 받으며 좋은 이야기만 듣고 싶었던 마음이었을까? 지금 다시 그런 말을 듣는다면 그렇게 보였느냐고, 어떠한 모습 때문에 그렇게 비춰졌느냐고 물어볼 것 같다. 조금이라도 그러한 면이 있었다면 내가 덜 죽어서 그렇다고 부족한 나를 위해 기도를 부탁한다고 할 것 같다.
정금... 그렇다. 하나님은 정결한 자를 쓰신다. 때가 되지 않으면 기다리시며 예비된 축복을 가리신다. 센터가 나에게 진단했던 우울과 강박은 울화병이라고 하나님께서 말하셨다. 아닌 것처럼, 괜찮은 것처럼 보이지만 너가 참 억울해 했었다고... 순종의 결과가 이런 거냐고 따져 묻고, 믿었던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냐고, 그래도 기도하겠다는 말로 지나갔지만, 용서하고 또 용서해도 나는 용서도 사랑도 할 수 없는 존재였다. 과거에 후회로 얽매이고 미래의 불안이 엄습하여서 운전대를 잡을 수도 없었고, 아이의 채혈하는 모습을 보면서 숨도 쉬어지지 않았다.
나에게 붙여 주신 이에게 사랑의 말과 물질의 채우심을 전달 받으면서도 이런 받기만 하는 자리는 원하지 않았다며, 다른 이에게 축복의 말도 쉽사리 나오지 않는 나의 나약함도 싫었다. 무기력증은 원망의 화살이 되어 내게 돌아와 나를 죽일 수 없으니 나의 시간을 죽였다. 세상 사람이 나를 향해 “크시고 위대하신 능력의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고 물으면 초라한 나는 보여줄 것도 주님께 드릴 것도 없었다. 은혜의 자리에서도 난 풍요로운 이삭을 원했지 험악한 인생의 나그네 야곱을 원하지 않았다. 사용 안하셔도 되니 이젠 조금은 더 편한 길이 없냐고 물어 보았다. 그러니 네가 원하는 것이 내게 없어도 나 하나로 만족이 안 되는지, 나와 함께할 수는 없는지 다시 물어 보신다. 다른 이를 정죄하는 기도를 할 때, 그러지 말라고 나의 사랑하는 자녀라고 말씀하신다. 왜 그들이 바뀌지 않느냐고 물어 보면, 너가 바뀌고 변화해 더욱 섬기라고 하신다.
내게 이야기 책의 지나가는 등장인물이 아닌 주인공으로 자꾸 부르신다. 너의 그 허물조차 다 사용하실 거라며 베드로처럼 의심했던 나의 손을 잡으신다. 1초, 1분, 1시간 겨우 살아 내려고 울지도 못했던 마음을 이제는 풀어내고 죄에서 자유케 하신다. 때가 되어 흩어져 있던 조각의 퍼즐이 완성되었다고 내가 보여지게 되면, 시작조차 하지 못했던 그 시간이 더 낫다고 이야기하신다. 그 성을 다시 무너뜨릴지, 더 높고도 튼튼하게 쌓을 것인지는 내게 달렸다. 변화의 새 옷을 입고도 불순물이 조금이라도 섞이게 된다면 버려지게 된다. 주를 위해 살겠다고 결단하면서도 얼마나 더 하나님을 이용하여 내가 그 머리 위에 서려고 하는가. 아직도 먼 땅 끝을 사랑한다 하면서도 내 이웃의 아픔은 보지 못하고 기도하며 품지 못하는가.
분별하자! 깨어 있자! 공동체가 마음을 합하여 눈물로 기도의 잔을 붓자! 다시 복음 앞에 서자! 벧엘로 돌아가자!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창 28:15)
"이하 회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