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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의 영성, 소라껍질 속의 나(빌2:5~8) / 이영복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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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im 작성일23-04-10 16:32 조회5,7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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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의 영성, 소라껍질 속의 나(2:5~8)

이영복 장로(본회 사무국장)

1. 들어가는 말

 

얼마 전 다비다 해피맘반 단톡방에 박미자 자매가 성경인물 MBTI 검사 질문지를 올렸어요. 12개의 질문만으로 된 간단한 검사였습니다. 윤미혜 자매는 노아, 이명희 자매는 여호수아, 김신경 자매는 예레미야, 이주은 목사와 박선미 자매는 세례요한이라고 나왔답니다. 박선미 자매는그분께 미안하게시리.”라는 댓글로 달았지만 그럴 듯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그런데 여러분, 성경인물 중에서 서로 정 반대의 MBTI 성격유형의 예시를 보여주는 듯한 두 자매가 생각나는지요? 같은 자매인데도 뭐가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 것 같은 사람이 있죠? 베다니의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외곽의 베다니에 살던 두 자매의 집을 자주 들리셨지요. 누가복음 1038~42절을 보면 언니 마르다는 예수님께 드릴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고, 이와 대조적으로 마리아는 주변의 시선에 신경을 끊고 예수님 말씀만 들었지요.

두 자매에게 굳이 MBTI를 적용해보자면 마르다는 ESTJ(외향, 감각, 사고, 판단)이고 마리아는 그 정반대인 INFP(내향, 직관, 감정, 인식)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MBTI 16개 유형으로 사람들의 다양한 성격을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겠어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얼마든지 변할 수도 있고요.

오늘 저는 1) 먼저, 두 자매의 성격 유형이 아니라 예수님을 대하는 데서 보이는 영성의 관점에서 비교해 보고, 2) 성격 유형이 어떠하든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품으라고 한 마음, 곧 비움의 영성과 그 영적 의미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2. 마르다와 마리아의 영성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에서 엿보이는 영성의 관점에서 비교해보면 마르다는 이성의 추론에 근거한 합리적인 활동가의 영성이고, 마리아는 이성보다는 감정에 근거한 직관적인 묵상주의 영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먼저, 마르다는 예수님께 음식을 대접코자 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었습니다. 그러기에 자신의 부엌일을 돕지 않고 말씀을 듣는 마리아에게 부엌일을 돕게 하라고 예수님께 요청했지요. 예수님은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충고까지 했습니다. “너무 많은 일로 염려하여 정신이 없구나!”라고요.

그런데 저는 오빠 나사로가 죽었다가 살아나 예수님의 하나님 아들 되심을 확신하게 된 마르다의 달라진 행동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벌인 잔치에서 마르다가 일에 집중하고 더 이상 예수님 말씀만 듣는 마리아를 지적하지 않은 채 즐겁게 일하는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12:1~2) 누가복음 10장과는 달리 아름다운 일의 영성, 섬김의 영성이 나타난 현장이었습니다.

 

2) 그에 반해, 마리아는 언니가 하는 부엌일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 말씀을 듣는 영성을 가졌습니다. 언니가 볼 때 얄미웠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주님과의 깊은 말씀 교제가 마침내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발을 씻는 자리까지 갔다고 봅니다. 예수님의 장례를 미리 예비하였던 것이지요.(12:3) 한 마디로 탁월한 말씀의 영성, 예배의 영성이 발휘되었던 것입니다.

 

3. 케노시스, 비움의 영성

 

저는 정기모임 설교 때마다 다비다자매회가 그 이름을 따온 다비다의 영성에 대해 자주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비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길을 따른 여제자요, 스스로가 죽었다가 살아난 것을 간증하며 홀로된 자를 항상 선행과 구제로 섬기는 봉사자였습니다. 저는 마르다의 섬김의 영성과 마리아의 예배의 영성이 함께 어우러진 영성이야말로 다비다의 영성이었고 그런 다비다처럼 살기를 원하는 우리 다비다자매회의 영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영성을 발휘하는 데 전제가 되는 영성이 있습니다. 오늘 제가 강조하여 나누고자 하는 헬라어로는 케노시스(knosis), 곧 비움의 영성입니다. 예수님이 친히 보여주신 비움의 영성이야말로 다비다자매회에서 두드러지는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또 하나의 영성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다비다자매회만이 아니고 모든 신자가 가져야 할 영성입니다만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부활절을 앞두고 사순절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저는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하며 케노시스의 마음으로 사셨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깊이 묵상하였습니다.

앞서 나눈 마르다와 마리아 이야기로 잠깐 돌아가 봅시다. 마르다는 일이 많아서 분주했고, 마리아는 아무것도 안하고 주의 발 앞에서 그의 말씀만 들었습니다. 이 마르다와 마리아 둘 중에 누가 비움을 영성을 가진 자일까요?

마르다의 마음이 나뉘는 분심(分心), 그것은 비움이 아니라 오히려 채움이었지요. 예수님이 마르다를 책망하신 것은 음식 준비 그 자체가 아니라 이를 테면 음식 준비를 하면서 동생처럼 말씀도 듣고 싶어 하며 마음이 나누어지는 분심을 지적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부활의 비밀을 가르쳐주셨지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11:25~26)라고요. 따져보면 몇 가지만 하든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다.”(10:42)는 그 책망의 연장선에서 비움의 영성을 가지라는 역설의 비밀을 가르쳐주신 것이라고 저는 묵상해보았습니다. 한편 예수님은 주의 발 앞에서 그의 말씀만 듣는 마리아를 칭찬했지요. 그렇게 예수님 앞에서 자신을 온전히 비우고 주의 말씀을 채우는 마리아가 비움의 영성을 가진 자입니다.

마리아가 보여준 비움의 영성은 관계의 영성, 하나 됨의 영성,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영성, 부활과 함께 다시 살아나는 영성이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나서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는 것을 본 가룟유다의 반응이 어땠습니까? 낭비라고 했습니다. “차라리 300 데나리온에 향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줄 것이지.”라고 지적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 대해 당신의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다고 하셨지요. 그리고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전해져서 사람들이 이 여인을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4:9)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빠 나사로는 어떠했습니까?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하신 말씀대로 죽어서 무덤에서 4일이 지난 나사로를 무덤에서 나오게 했습니다. 아예 빈 무덤을 만드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죽음을 부활로 이끄는 무덤의 예수님의 비움입니다. 나사로를 통해 빈 무덤의 의미를 미리 보여주셨던 예수님은 마침내 당신 자신의 빈 무덤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바로 오늘 읽은 본문의 의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본래 하나님의 본체셨지만, 하나님과 동등 됨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신을 비우시어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2:6-7)라며 예수님의 자기 비움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비움이란 그저 속이 텅 빈 공허만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비움그 너머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빈 무덤을 통해 부활의 증거를 보여주셨습니다. 부활은 곧 비움의 역설입니다.

우리가 비운만큼 우리는 하나님으로 채워집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으로 가득 차 나의 것이 없을 때 우리 자신도 빈 무덤이 됩니다. 유한한 생명에서 영원한 하나님 생명으로 들어가는 것이 부활입니다. 부활은 빈 무덤을 전제로 합니다. 빈 무덤은 영적으로 보면 나를 비우는 것, 내가 죽는 것, 나의 의지와 가치를 비우고 하나님의 영을 모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사셨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라고 당신의빈 무덤을 보여주셨습니다. 세상의 욕심을 내려놓고 자꾸 마음속을 가득 채우려는 욕망을 반복해서 걷어내라는 뜻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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