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버킷리스트 No. 1 / 이영복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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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im 작성일20-04-09 13:39 조회7,75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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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버킷리스트 No. 1
이영복 장로(본회 사무국장)
2020년 고난주간에
얼마 전에 김혜란 목사님이 제게 물었습니다. “이 장로님의 버킷리스트가 뭡니까?”라고요. 마침 요한복음 19장 16절에서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십자가 형을 언도 받는 장면을 묵상하고 있었기에 예사롭지 않은 질문이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에 앞서 “예수님의 버킷리스트는 무엇이었지?”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분명했지요. 세상 죄를 감당하고 구원을 위해 오셨지요. 그러기에 세상 사시는 동안 하시고 싶은 일 또한 분명했습니다. 요한복음은 특별히 예수님께서 당신이 아버지께로 갈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아시고 하고 싶어하셨고, 또 하신 일 두 가지를 분명히 알려줍니다.
그 하나는 자기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요13:1절을 보면 예수님은 아버지께로 갈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했습니다. 그 맥락에서 세족식도 하고 그랬습니다. 다른 하나는 아버지께 영광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요17:1절을 보면 아버지께로 갈 때가 되었으니 아버지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요17:4절에는 이 땅에서 아들이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곧 아버지께서 맡겨주신 일을 다 완성하는 것인데 예수님은 그것을 다 완성했다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세상을 떠날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자기 사람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완성하여 영광을 돌리는 두 가지 일, 이를 테면 당신께서 하시려 했던 십자가리스트, 우리들의 말로 버킷리스트를 다 이루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결국 그분이 생각하신 최고의 버킷리스트는 곧 죽음 그 자체였다는 점에서 마음이 숙연해질 따름입니다. 버킷리스트는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인데 그것이 죽음이라니요.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는 요 10장 11절 말씀이 제 영혼의 귓전을 울립니다.
나의 버킷리스트
저의 버킷리스트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질문을 했던 김 목사님께도 간단히 답을 한 내용입니다. 바로 사도행전 28장 마지막 절입니다. 제가 다니는 교회는 Acts29 곧 사도행전 29장을 강조합니다. 사도행전의 뒤를 이어 새로운 행전을 쓰듯이 선교의 삶을 살자는 것이지요. 그런데 저는 누가가 사도행전 28장 끝에 기록한 바울의 모습이 그 어떤 Acts29보다 감동스러울 것 같아, 행28장 31절과 비슷한 삶을 버킷리스트 1번으로 삼았습니다.
사도행전 28장은 바울이 2년 동안 자기 셋집에 머물며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여기서 셋집은 가택연금 상태로 보지요. 31절 말씀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그런데 바울처럼 로마의 가택연금 같은 감옥은 말고 한적한 시골이든 바닷가든 소박한 곳이면 좋겠습니다. 마치 ‘물레방아 도는 내력’이란 노래의 가사처럼 말입니다. 1950년, 60년대에 유행한 트로트인데 가사는 이렇지요.
벼슬도 싫다마는 명예도 싫어
정든 땅 언덕 위에 초가집 짓고
낮이면 밭에 나가 길삼을 매고
밤이면 사랑방에 새끼 꼬면서
새들이 우는 속을 알아보련다.
가사가 참 감동적이지요? 낮이면 밭에 나가 김을 매고 밤이면 사랑방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새끼 꼬면서 자연 속으로 들어가 새들과도 대화를 하며 그 우는 속을 알아보려는 시인의 삶.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것만으로도 낭만적인 버킷리스트가 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런데 제 버킷리스트인 사도행전 28장 마지막 절은 이런 낭만과는 거리가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 노래 가사에, 비슷한 듯 대조가 되는 시편 42편 8절을 덮기로 했습니다.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시42:8)
낮이면 밭에 나가 땀 흘려 김을 매는 수고를 하고 밤이면 사랑방에 새끼를 꼬는 낭만을 넘어, 낮의 일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밤에는 찬송합니다. 새들이 우는 속을 알아보는 것을 넘어 그 우는 새를 먹이시는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물론 제 버킷리스트를 이룰 장소는 햇볕이 잘 들고 새소리 정겨운 언덕이면 좋겠습니다. 물레방아 도는 개울가도 좋고요. 가능하면 바울처럼 가택연금 상태는 아니길 바랍니다. 그런데 그 어디든 당연히 시편 42편 8절이 있어야 합니다. 제 버킷리스트를 정리하면 조금 길지 모르나 “전원생활을 누릴 수 있는 조용한 곳에서 주님의 은혜를 찬송하고 기도하며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야 하는 건 아니고 한 두 사람이라도 꼭 필요한 사람들이 찾아오면 성경 말씀 속에 담긴 아버지의 마음을 잘 전해주고 싶습니다. 그럼 저는 만족합니다.
파르레시아스 아콜루토스
그런데 제가 사도행전 28장 마지막절을 버킷리스트로 삼는 데 중요한 동기를 제공한 것은 사도행전의 마지막 두 헬라어 단어 때문입니다. 헬라어 원어로 보면 사도행전의 가장 마지막 두 단어는 ‘파르레시아스 아콜루토스’입니다. 우리말로는 ‘담대하게 거침없이’로 번역되었지요. 특별히 바울이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는 자세와 환경을 표현한 것입니다. 파르레시아스 곧 ‘담대하게’는 ‘어떤 권력이나 위력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복음을 증언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콜루토스 즉 ‘거침없이’는 ‘아무런 방해도 없이 자유롭게’란 뜻입니다. 어떠한 위협도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 예수님에 대해 ‘담대하게 거침없이’ 말씀을 전하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인간의 욕심이나 의욕으로 되는 일이 아니지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는 바울의 고백이 ‘담대하게 거침없이’의 의미를 잘 설명해줍니다. 당하면 당하고 죽으면 죽고 오직 그분이 이끄는 대로 산 삶이었습니다. 그분의 은혜로 그분을 전하며 담대하게 거침없이 살다가 인생을 마무리할 수 있는 그 바울의 삶이 부럽습니다. 그런 점에서 제 버킷리스트도 그분의 은혜 아니면 이룰 수 없는 것을 잘 압니다.
기왕에 시편 42편에 대해 나눴으니 좀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시편 42편은 성전 일을 섬기던 고라자손이 쓴 시입니다. 특별히 4절이 인상적입니다.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한국 교회에 공적 예배가 중단된 지금의 상황과 흡사합니다. 코로나 19는 모든 국민들에게 큰 불안 요소지요. 그에 대한 답은 무엇입니까? 무엇보다도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도움을 구하며 찬송하는 것입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
다시 요한복음 19장으로 돌아와, 사랑하는 다비다 가족들과 꼭 나누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15절입니다. 빌라도가 재판석에서 모여 있는 유대사람들에게 묻습니다. “너희들의 왕을 십자가에 못박으란 말이냐?”라고. 그때 대제사장들이 대답했지요. “우리에게는 가이사 말고 다른 왕이 없습니다.” 곧 예수님이 정치적인 지도자가 아닌 것을 안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죽게 몰아가는 장면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며 울었습니다.
저 자신에게서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다고 하면서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의 자랑을 추구하는 모습이 자주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가이사 말고 다른 왕이 없습니다.”가 아니라 “우리에게는 예수님 외에는 다른 왕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오직 진정한 왕이신 예수님을 높이는 삶을 살게 해 달라고 간곡히 기도합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사랑하는 다비다 가족 여러분, 여러분의 버킷리스트에는 어떤 것이 들어 있습니까? 요즘처럼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을 겪다보니 평범한 일상이 그 어떤 거창한 버킷리스트보다도 소중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네요. 속히 일상이 회복되고 얼굴 볼 날을 기대합니다.
찬란한 부활의 아침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