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다십(Tabithaship)을 넘어/이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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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im 작성일16-12-30 15:51 조회9,31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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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다십(Tabithaship)을 넘어
이영복 장로(본회 사무국장)
2016년이 저물어 갑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려다 보니 떠난 사람들이 그리워집니다. 문득 40대 초반 젊은 시절에 년 전 직장 후배로부터 받았던 편지가 생각납니다. 자신이 다니는 교회의 청년이 도망가듯이 다른 교회로 떠나가서 속상하고 안타깝다며 그리스도인의 헤어짐에 대한 내 의견을 물어온 편지였습니다. 그 때 쓴 답장을 꺼내 읽어 보며 내가 떠나온 그리스도인들과 나를 떠나간 그리스도인들을 떠올려 봅니다. 계면쩍지만 지금도 주의 사랑으로 사랑한다는 마음을 그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K형제에게
영생을 믿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사별을 포함한 어떤 이별도 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에 부득이 이별을 하게 될 경우에도 피차 아름다운 기억을 가지고 헤어지는 것이 좋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아름답지 못한 이별이 비일비재합니다.
교회가 갈라짐으로 인해 서로 다른 집단에 속한 사람들 간의 갈등이나, 교회가 마음에 들지 않아 떠나게 되는 과정에서 겪는 당사자나 관계된 사람들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닐 겁니다. 사실 이러한 경우에 좋게 헤어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인간의 연약성 때문이지요. 교회 내에서도 떠나든 거하든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라는 의식보다는 멤버십(membership)이라는 의식이 더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요.
헨리나우웬이라는 분이 쓴 <거울너머의 세계>라는 책은 교통사고로 거의 죽음의 문턱에 섰을 때의 자신의 생각들에 대해 적고 있습니다. 그는 책에서 죽음을 향해 가는 자신의 길을 막는 것은 이상하게도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이 싫어하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과의 갈등관계를 해소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진다는 것보다 훨씬 부담스러웠다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빌립보교회를 향해 믿는 자로서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할 것을 부탁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할 이유로 주께서 오실 날이 가깝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만일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신다고 했을 때 혹 우리의 길을 막을 사람들은 없겠는지, 즉 아직 화해하지 못한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들, 우리가 상처를 준 사람들은 없는지에 대해 늘 자신을 살펴야 하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평소에 좋은 이별도 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사랑하는 K 형제님,
교회를 떠난 청년들을 용납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들 나름대로의 사연이 있었으려니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무엇보다도 성령님께서 더 이상 형제님이 그로 인해 마음 아파하지 않기를 바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회는 원래 떠나기 위해 모인 공동체이니까요. 물론 잘 떠나야 하고 잘 떠나보내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예수님은 모친 마리아와 동생들이 바깥에 와 있다는 전갈을 듣고, 말을 전해준 사람에게 제자들을 가리키며 “나의 모친과 동생들을 보라.”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신 주님의 가족에 대한 패러다임이야말로 이 시대의 교회들에게 절실히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헤어지느냐 같이 있느냐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성도 간에 과연 혈통도 초월하는 그런 일체감 속에서 사랑을 하고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닐까요? 그런 일체감을 가지고 사랑을 한다면 어디 죽음도 헤어짐도 대수이겠습니까?
1999.5.7. 이영복 드림”
사랑하는 다비다자매 여러분, 우리도 23년 역사의 다비다자매회가 참으로 아름답지만 라는 조직의 멤버십 즉 다비다십(Tabithaship)에만 머물지 맙시다.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주님의 진정한 형제 자매로서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Worship)의 자리를 놓치지 맙시다.(고후 5:9) 지금 다비다에 계신 분들은 물론 잠깐이라도 다비다에서 함께했다가 떠나가신 분들도 모두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