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자 칼럼>
응원하며 지켜본 다비다자매회 28년
이상은 사모(박광철 목사)
1993년 12월 초에 저희 아파트 거실에서 정근두 목사님을 모시고 10여 명의 자매들과 함께 다비다 창립예배를 드린 것을 기억합니다. 싱글 사역에 관심을 갖고 마침 복음주의 목회자 모임에 참석하는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 목사님들에게 이 사역에 대해 말씀드렸을 때 기꺼이 도와주시고 협력해주시겠다는 약속을 받고 다비다 모임이 시작된 것입니다. 저의 교회 부흥회 때 정근두 목사님의 ‘다비다’에 대한 사도행전 말씀을 듣고 ‘다비다선교회’로 이름을 지었는데 후에 ‘다비다자매회’로 바뀌었습니다.
그해(1993년)는 아웅산 사건으로, 서해 앞바다의 페리호 침몰 사건으로 많은 분들이 생명을 잃고 싱글맘들이 많아진 상황이었습니다. 저도 남편이 유학 중이라 혼자 어린 아들 둘을 돌보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때 성경 야고보서 2장 27절을 읽으면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라는 말씀을 읽고 마음에 울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교회에 다니던 김혜란 집사님의 남편이 갑자가 사랑하는 아내와 두 자녀를 두고 훌쩍 떠나셨는데 그때가 30대 후반이었어요. 지금 우리 자녀들 나이에 싱글맘이 된 것이지요.
그런데 마침 저희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어 김혜란 회장님이 홀로 짐을 지게 되었어요. 남편 추도예배 때 홀로된 싱글맘들을 초대하여 찬양과 말씀으로 위로하며 함께하였습니다. 저희가 미국에서 생각해 낸 것이 다비다자매들을 미국에 초청하여 조금이나마 위로와 기쁨이 되게 하고 싶었어요. 그때는 미국에 오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어요. 비자가 나오기 어렵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지만 실망하지 않고 끈기 있게 기도하여 기적적으로 17명 전원이 다 비자를 받아 미국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미국에서 싱글동산과 관광으로 싱글맘들에게 조금이나마 용기와 위로가 되었던 것 같아요. 2001년에 처음 싱글동산을 가진 후 두 차례가 더해져 모두 90여 명의 자매들과 자녀들이 미국을 방문하여 귀한 시간들을 가졌지요.
28년 동안 다비다자매회를 이끌어 오신 김혜란 회장의 수고를 옆에서 지켜보며 보낸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김혜란 회장님이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힘겨운 사역이지만 실망하지 않고 묵묵히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함께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뿐입니다. 김혜란 회장님께 다비다는 인생 그 자체였습니다. 다비다 밖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오로지 다비다를 위한 삶이었다고 제가 증언합니다. 제가 매년 한국에 방문할 때마다 회장님을 만나고 그 집에서 머물기도 했어요. 함께 있으면 둘이 대화를 할 수가 없을 정도로 계속 카톡과 전화가 울리는 거예요. 다비다 회원들의 대모! 얼마나 궂은일들이 많아요. 그 많은 하소연들을 다 받아주는 긍휼과 사랑이 넘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존경스러웠어요.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많은 다비다 회원들의 짐을 함께 나누며 섬기는 모습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조용하고 온유한 리더십으로 강단 있게 오로지 하나님 중심의 신앙과 말씀으로 양육하면서 훌륭하게 이끌어오셨어요. 하나님께서“착하고 충성된 내 딸아 수고했다. 정말 애썼다. 내가 너의 모든 수고를 안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28년이라는 짧지 않은 긴 세월이 흘러 이렇게 자랑스럽게 후임자에게 바통을 넘겨줄 수 있어 너무나 감사합니다. 이제 하나님이 준비시켜 주신 후임자는 이 어려운 시대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면서 새 일을 이루시기를 응원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다비다 사역에 도움이 되어달라고 많은 목사님들에게 부탁드렸고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지만 그 중에 끝까지 이렇게 도와주시는 새로운교회 한홍 목사님께 특히 감사합니다. 선한 일에 헌신적인 새로운교회는 하나님의 특별한 복을 받을 것이며 다비다 회원들은 기도로 보답할 것입니다.
다비다자매님들, 힘내십시오! 인생은 그다지 만만치 않아 힘들지만 여러분을 가장 잘 아시며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고 위대합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을 끝까지 지켜주시고 함께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