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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어려움은 많지만, 보람 있는 세월/김 영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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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그의목적 작성일13-06-20 13:58 조회41,5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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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어려움은 많지만, 보람 있는 세월

 

안녕하세요. 김영경 입니다. 제가 다비다를 만난 지도 1년이 지나가는군요. 처음 극동방송을 들었을 땐 전 무척 우울한 상태로 호기심을 가지고 찾아 온 다비다였는데 이젠 깊은 인연으로 살아가는데 큰 힘을 받고 있습니다. 봄 야유회, 내적치유회, 여름캠프, 그리고 건강검진, 집단상담 등 주요행사와 정기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전 많은 감동과 도전과 깨달음을 얻었고 그리고 경제적 지원까지 감사를 드립니다. 싱글맘으로 외로운 상황에서 만난 다비다자매회! 존경하는 김혜란 목사님, 다정한 자매님들! 제겐 새로운 가족입니다.

먼저 작은 삶을 나누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1969년 지적장애를 가지신 아버지와 청각장애를 가지고 두 번째 시집을 오신 어머니 사이에 5남매의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무척 겁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나머지 공부를 하며 글자를 깨우쳤고 학교 화장실이 너무 무서워 교실에서 오줌을 싸고 대변을 본 기억이 있을 정도로 두려움이 많았고 소심했습니다.

집안 사정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전기가 들어왔고 아버지는 술을 드시면 주사가 있으셔 동네가 떠나가도록 소리를 지르시고 길에서 잠을 주무시곤 해서 동네 분들이 모셔 왔고 어머니는 청각 장애로 인해 주위 사정을 빨리 깨우치지 못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괘종시계를 사오셨는데 밥을 주라고 했다며 진짜 밥을 해서 갈아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저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의 유년 시절 교회 주일학교는 저를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제가 뒤늦게 초등학교 5학년 때 부터 공부에 눈을 떠 조금 했는데 마을 어른들께서는 그렇게 만나기만 하면 "너 공부 잘한다며~" 격려를 해 주셨습니다. 부끄러움과 겁 밖에 없는 저에게 마을 분들의 이 한마디는 큰 자긍심을 심어 주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와 봉제공장에 다니면서 용산고 부설 방통고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공부가 하고 싶다고 했더니 같은 학교에 다니던 언니가 가정집을 소개 해 주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하나님을 믿는 모범적인 한 가정을 보았습니다. 반년 정도 지내다 그 집주인의 작은 어머니가 되시는 할머니 집으로 제가 가게 되었습니다. 할머니 집에 와서야 시간이 남고 또 무엇을 배우게 도와주고 싶어하시며 피아노를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명지대 사회교육원 피아노과 1회 졸업생이 되었습니다.

열심히 사는 중에 제가 노이로제에 걸려 할머니와 헤어지고 피아노 학원 강사로 지내다 결혼을 하게 됐습니다. 제가 이룬 가정은 생각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 이었습니다. 그래서 큰아이가 백일 때 부터 돈을 빌려서 살림집이 달린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게 되었고 4살 터울로 작은 아이가 태어났는데 어린 시절 아무런 보살핌을 받지 못했던 저는 아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이 도시에 살면서 흙을 만질 수 없다며 어린이 대공원에 매일 아침 데리고 갔고 동물에게 풀을 먹여주고 마음껏 자연을 체험하게 해 주었습니다.

5살이 되면서 큰아이는 명성교회 아기 성가대에 다녔고 피아노를 배우고 어린이집에 다니고 어디든 문화행사가 있으면 빠짐없이 찾아 다녔고 교육 비디오를 보여주고 책도 많이 샀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신앙 안에서 키우기를 원했고 많은 교육의 기회를 접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 큰아이가 7살 작은아이가 3살 되던 해 제게 큰 불행이 찾아 왔습니다. 그것은 분열정동장애란 정신병을 앓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아이들은 무척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동안 아이들 양육을 제가 도맡아 했는데 남편은 일을 핑계 삼아 밖에 있는 시간이 많아 아이들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친 할머니가 오셔서 전혀 다른 분위기로 아이들은 보호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제 정신병이 이유가 되어 남편은 다른 여자를 만나 빚을 많이 진 상태로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온전치 않은 정신 상태에서 아이들을 제가 친권자가 되어 키워야 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전 섬세함이 필요한 피아노 학원을 그만두고 가사도우미로 일을 했습니다. 약함을 가진 우리 가정은 아이들 교육을 우선으로 꾸려졌습니다. 일을 하는 동안 돌봄의 이유도 있고 교육을 시키고 싶은 마음 때문에 아이들은 여러 학원을 다니게 되었고 저는 학교와 학원 선생님들 모두에게 나의 병을 설명하고 아이들에게 관심을 부탁드렸는데 모든 선생님들께서는 고맙게 도와주셨습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큰아이가 특목고에 가게 되고 작은 아이도 자기 존중감이 큰 아이로 성장했습니다.

우울증이 심한 나날이었지만 보람을 느끼는 세월이었습니다. 그리고 영구임대아파트에도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위기가 찾아 왔습니다. 제가 비대해진 몸과 일이 힘든 게 원인인지 두 무릎이 아파오고 오른 쪽 무릎은 수술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특목고에 들어간 큰아이가 학교생활이 어려워 휴학을 하게 되고 작은아이도 이사와 사춘기로 매일 울고 반항하고 약해진 언니를 이해 못해 몹시 어려워해서 집안은 조용할 날이 없었습니다. 저도 분열증상 까지 재발해 다시 약을 바꿔 먹고 ... 그렇게 우리 가정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xml:namespace prefix = v /><?xml:namespace prefix = o /><?xml:namespace prefix = w />그 후 큰아이는 전학을 하고 안정을 찾아 가면서 고3이 되었고 이제는 열심히 노력해 자신의 재능을 나누는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작은 아이도 자기 꿈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결과로 보이겠다고 항상 말합니다. 아이들 양육에 사랑은 있었지만 세심한 관심과 대화가 부족 했던 것 같아 지금은 이야기를 많이 하고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도 장애로 인해 지금보다 더 나은 생활은 무리겠지만 미래에 제 마음을 글로 표현하는 작가가 되고픈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아이와 같이 저도 성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모든 회복 속에 다바다 자매회의 도움이 컸습니다. 치료해 주시고 회복시켜 주시고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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