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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기쁨을 회복했어요. / 이 명 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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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혜란 작성일12-09-13 13:31 조회41,7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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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기쁨을 회복했어요.

이 명 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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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제 삶의 많은 시간을 어두운 감정과 정서로 큰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왔습니다. 우울하고 불안하고 두렵고 삶에 대한 아무런 소망도 목적도 없었습니다. 그 어떤 것도 기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제가 다섯 살쯤 되었을 때 저의 어머니께서 자살 하시려는 것을 목격한 후부터 시작 된 것 같습니다. 지금도 그 때 그 광경이 사진처럼 떠오릅니다. 다행히 아버지께서 어머니를 발견하셔서 목숨을 건지셨지만, 얼마 후 어머니께서는 저에게 단 한마디의 어떤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집을 떠나셨습니다. 어머니께서 떠나시는 뒷모습을 어린 저는 멀리서 한 없이 쓸쓸한 마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아버지께서도 어디론가 가시고 저는 두 살 아래 여동생과 할머니 집에 남겨졌습니다. 저는 엄마가 보고 싶어서 매일 매일 울면서 지냈습니다. 충격적인 사건이후 아무런 기약도 없이 어디론가 떠나신 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할머니 집의 그 암울한 분위기는 어린 저에게 많이 힘이 들었습니다. 이제 아무런 기약도 없이 부모님과 헤어져서, 저의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엄마 아버지가 살고 계신 곳에 가서 다시 함께 살게 되었지만, 삶의 어려움의 무게는 더 커졌습니다. 제가 가자마자 부모님은 새벽이면 저를 흔들어 깨우시면서 “밥 해먹고 학교 가라”고 하시고 집을 나서셨습니다. 부모님께서 함께 장사를 하셔서, 제가 어머니를 대신해서 모든 집안일을 했습니다. 초등학생인 제가 집안일과 동생들을 돌보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정말 힘든 것은 아버지를 대면하는 일이었습니다. 언제나 어둡고 그늘진 아버지의 얼굴표정만 보아도 마음이 무겁고 어려웠습니다. 늘 집에 들어오시면 모든 것이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저희를 막말로 꾸짖고 나무라시고 엄격하게 대하셨습니다. 아버지의 그런 태도는 저를 한없이 위축되게 했습니다. 저의 마음은 우울과 불안, 두려움과 공허로 마음 둘 곳이 없고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께서도 생활의 고단함을, 저에게 많이 화풀이 하셨습니다.

결혼 후, 남편의 불성실과 무책임하고 무절제한 생활태도로 인한 결혼생활의 어려움 속에서, 저의 병은 더욱 깊어 졌습니다. 그 가운데 두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저는 아들들이 정말 귀했습니다. 저의 아들이라서 귀하다는 느낌과 다르게, 영혼을 가진 생명이 저를 통해 왔다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저와 같은 병을 앓았습니다. 큰 아들은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새며 컴퓨터 게임을 하고 혼자만 시간을 보냈습니다. 작은 아들은 비슷한 환경의 아이들만 사귀며 저를 놀라게 하는 일을 했습니다. 어느 날 무능하고 무기력한 제가 아이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교회에 출석해서도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기 어려워서 예배만 드렸습니다. 이런 사정과 형편을 나누고 함께 기도 할 동역자가 간절했습니다. 어느 날 극동방송을 듣다가 다비다자매회를 만났습니다.

처음 정기모임에 참석하고, 다음 달에 ‘다비다 사랑의 순례’에 참석했습니다. 그 곳에서 성령께서 저를 만지셔서 은혜가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싱글맘 치유수양회’에 봉사자로 참석했습니다. 치유수양회가 끝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 교회 전도사님께서 ‘전도 폭발 훈련’을 받으라고 전화를 해 주셨습니다. 치유수양회에서 돌아온 저는 영성이 충만하여 너무나 적극적이고 밝은 태도로 전화에 응답했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부터 제 마음이 한 없이 어렵고 무거웠습니다. 저의 사정과 형편으로는 도저히 그런 훈련에 임할 수 없다는 생각이 저를 다시 힘들게 해서 비명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전도사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전도사님께서 저를 생각하시고 기도하셨다면 저는 결국 순종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훈련에 임했습니다.

전도폭발 훈련 1단계 수료 종강예배에 저를 간증자로 세우셨습니다. 지금 저와 함께 전도폭발 훈련에 임했던 모든 대원들이 달라진 저의 변화를 이구동성으로 말씀하시며, 놀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의 어두운 감정과 정서는 모두 사라지고 참 소망과 목적이 생겼습니다.

저의 모든 생각은 하나님의 복음을 어떻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할 것인가 하는 생각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7월의 날씨에 축호전도를 나가서 5층 아파트를 오르내리며 전도지를 돌리는데, 등에서는 땀이 줄줄 흐르고. 문도 잘 열어주지 않고. 어쩌다가 문을 열어도, 전도지를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낙심되지 않고 오히려 기대와 기쁨으로 몸이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축호전도가 끝나고 전 대원들이 모여 마무리 기도를 하는데, 강사 전도사님께서 저에게 전도현황을 물어보시는데, 저도 모르게 입에서 나온 말은 “정말 좋았어요.”라고 말해서 모든 대원들이 폭소를 터트렸습니다. 저의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당신들이 자라면서 받은 상처를 저에게 그대로 주셨지만, 저는 이제 저의 상처를 아이들에게 더 이상 물려주지 않게 되었습니다. 요즘 저의 부모님들께서는 어린 저에게 고생을 많이 시켰다고 말씀하시며, 지금도 저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저는 부모님의 아픔과 상처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부모님이 계시다는 것이 가장 감사합니다.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며, 부모님께 좋은 딸이 되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많은 시간을 죄에 빠져 살았던 죄인이었던, 저를 다비다에서 만나주신 “살아계신 하나님, 나의 아버지”는 저를 고치시고 치유하시고 바꾸시고 변화시키셨습니다. 또 저에게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천국의 영생을 선물로 주시고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와 ‘과거라는 이름의 감옥’으로 부터 자유를 주셨습니다. 살아있는 기쁨을 회복 시키셨습니다. 자녀들에 대한 저의 생각을 보시고,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부르셨어도, 믿음이 없어서 기도 하지 못했지만, 이제 소망과 비전을 가지고,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자녀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나의 아버지” 이 좋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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