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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씨와 함께 한 여름 캠프 / 유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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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im 작성일17-08-16 14:48 조회27,0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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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다 여름캠프를 다녀와서>

순자씨와 함께 한 여름 캠프

유숙자

설렘과 기대감으로 참석한 다비다 여름 캠프였다. 이번 캠프에서 나의 준비물 1호는 대추차와 잣죽이었다. 일주일 전 큐티 모임에서 김혜란 목사님이 “암을 앓고 있는 김순자씨가 이번 캠프에 참석하기로 했는데 돌봐 줄 사람이 필요하고 식당 밥을 못 먹을 터이니 죽이라도 좀 쑤어 가야겠다.”고 말씀하셨다.

목사님이 나를 지목하여 하신 말씀도 아니었는데 난 그날부터 무슨 죽을 끓여갈까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우리 엄마도 위암으로 일 년을 투병하시다 가셨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내려가서 콩나물죽을 끓여주면 내가 끓여드린 콩나물죽이 제일 맛나고 속에 받는다며 아예 며칠 잡수실 죽을 끓여놓고 가라고 하셨다. 준비해놓은 재료를 내밀던 올케에게 “잘 봐뒀다 이렇게 끓이면 돼.”라고 했지만 올케는 “똑 같이 끓여도 어머님은 용케 알아내세요.”라고 했던 생각이 난다.

그래, 맞아, 콩나물죽? 깨죽? 잣죽? 전복죽?.... 매일 죽 메뉴를 머리에 짜고 있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수요일 새벽에 대상포진으로 순천향병원 응급실로 실려가 밤새도록 딸아이의 돌봄을 받았다. 꼼짝없이 여름캠프는 물 건너 간 줄 알았다. 통증이 멎어 멀쩡한 몸뚱이인데도 아이들의 감시로 하루를 꼼짝없이 집에서 쉴 수밖에 없었다.

시험 삼아 목요일엔 새벽에 일어나 직장에 나가보았다. 오늘도 바쁜가 하여 나가봤는데 사무실은 고요하기까지 했다. 내가 하는 일이 이렇듯 예측불가능하다. 오후 3시쯤에야 배차를 해주니 마음은 이미 대여섯 가지 죽에서 두 가지로 줄었다. 서울에 도착하여 집에 오니 거의 밤 10시가 다 되었다. 순자씨 먹일 음식준비를 하고 나니 새벽 1시가 다 되어 잠이 들었다.

대상포진 약기운 때문인지 정신 놓고 자다가 일어난 난 깜짝 놀랐다. 8시 30분! 대책 없다. 잣죽, 대추차 끓이는 데에만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려 양을 줄여야만 했다. 잣죽이 약간 묽은 듯 했는데도 어쩔 수 없었다. 싸기만 하는데도 시간이 마구 간다. 세수는 하는 둥 마는 둥, 화장품을 손쉽게 꺼낼 수 있게 싸들고 뛰어 아슬아슬하게 겨우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버스에 자리 잡고 안도하며 숨을 고르고 화장을 하고 있는데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병원 같이 가려고 집에 왔는데, 엄마 안 계시네? 혹시 엄마 놀러 가신거야? 기어코 가셨어요? 집에서 쉬시라니깐 엄마 알아서 하세요. 난 몰라~~~” 포효하는 호랑이 목소리가 이럴까?

우리의 목적지인 진새골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식당으로 갔다. 난 집에서 준비해 온 대추차와 잣죽을 들고 일부러 순자씨의 뒤를 따라 같은 테이블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힘이 들어서인지 우린 벌써 두어 숟가락 째 배달을 마치고 혀끝의 평가를 기대하며 오물거리고 있는데도 순자씨는 멍하니 앞에 놓인 음식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어서 한 술 떠봐요” 옆에 영미 조장님의 권유로 마지못해 주위에 자신 말고 딴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막 인식한 사람마냥 멋쩍은 듯 수저를 들었지만 국물 쪽으로 숟가락을 넣고 머뭇거린다.

식탁에 대추차가 든 보온병을 살며시 올려놓으며 말했다. “이거 대추차인데 입맛에 맞았으면 좋겠네요. 다른 사람들 커피 마실 때 수시로 이걸로 대처해요.” 라며 건네주었다. 순자씨는 말없이 피식 웃는데 마음이 아플 정도로 예쁘다. 난 순자씨의 예사롭지 않게 큰 배낭을 짊어지고 숙소로 올라갔다.

숙소에 자리 잡은 뒤, 순자씨의 방을 찾아가서 잣죽과 배낭을 주었다. 잣죽이 입에 맞았는지 한 모금 맛을 보더니 훌쩍 마신다. “더 줄까요?”했더니 쑥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난 신이 나서 룰랄라 미끄러지듯 주방으로 가서 혜영씨가 준비해 온 반찬과 함께 갖다 주었다. 순자씨가 고맙다는 말을 하며 왈칵 눈물을 쏟는다. 난 순간 기쁨이 슬픔으로 역주행하며 목구멍을 뜨겁게 달구는 바람에 순자씨 방을 뛰쳐나와 버렸다.

이튿날, 순자씨 방을 얼핏 살피니 밤새 잠을 못 잤는지 자리에 없었다. 아침을 먹고 올라와 보니 순자씨는 여럿이 보는 앞에서 웃는 얼굴로 누룽지 끓인 것을 먹고 있었다. 난 그것만 봐도 마음이 든든하고 좋았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밤새 배가 고프고 온 몸이 쑤셔 대서 잠을 못 잤다는 말을 듣고 밤새 들여다보지도 않고 꿀잠 잤던 나의 얄팍한 돌봄에 내심 찔려서 몸 둘 바를 몰랐다.

이영복 장로님의 인도로 모두 빙 둘러서서 김순자씨와 함께 연결고리를 하여 순자씨를 위한 치유기도를 할 땐 정말 감동이었다. 나는 이런 광경도 기도도 처음이었다. 내가 이런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고 행복한지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큰 지를 새삼 절절히 가슴에 새기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귀경 버스를 타고 함께 모란역에서 내려 마지막 헤어지는 시간, “고마웠어요.” 인사하는 순자씨에게 “잘 지내세요.”라고 대답했다. “몸 조리 잘 하세요.”라고 말하기엔 그 순간 모습이 너무 밝고 고와 예쁘다는 생각밖에 환우라는 생각이 전혀 안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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