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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유산 / 김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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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im 작성일18-06-18 11:48 조회26,8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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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큰 유산

김효성(뉴질랜드 하늘그림교회)

 

안녕하세요. 멀리 뉴질랜드에서 온 김효성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김혜란 목사님의 아들입니다. 다비다자매회 어머니들 중에는 부족한 저를 위해 기도를 해 주신 분들이 계십니다. 오늘 저는 특별히 그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한 여인의 아들, 한 여인의 남편, 그리고 세 아이들의 아빠이기 전에 다비다 자녀입니다. 아마도 제가 다비다 자녀 1호? 1세대가 아닐까 싶네요. 다비다 자녀 1호였던 게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제 나이가 마흔둘이 되었고 세 아이의 부모가 되었네요. 이 자리에서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가장 큰 유산’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다비다자매회 자녀들 중에 아직도 저를 능가할 만한 문제아가 없다고 하실 정도로 저는 청소년 시절 아주 방탕(?) 아니 방황하는 아이였습니다. 현재 저는 뉴질랜드에서 한의사이자 평신도 의료선교사로 그리고 선교방송국을 맡아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남들이 보면 한의사다 선교사다 방송국을 운영한다 하면 대단하다고 생각하실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전 어머니의 기도가 더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뉴질랜드에 가기 전까지 만해도 크리스천이라 말하기 죄스러울 정도의 삶을 살았습니다. 모든 문제란 문제는 다 일으켰고, 미래도 없이 살았습니다. 이건 비밀인데요, 저희 어머니가 목사님이 되신 건 아마도 제 덕이지 않을까 싶네요. 어머니는 저 때문에 항상 눈물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제가 방황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정체성 때문이었죠.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 지 몰랐었죠. 그리고 아시다시피 그 당시 한국의 사회는 편부, 편모의 자녀들이 설 수 있는 공간이 별로 없었죠. 저는 주변 친구들과 자신을 늘 비교했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보지 못하고, 할 수 없는 것들만 바라보며 좌절하고 방황했습니다. 군대 제대 후 저는 돈만 좇았어요.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돈밖에 없다 생각했죠. 사업을 하면서 돈도 벌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제 안에 채워지는 건 보상심리와 같은 자존심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사업에 실패하게 되었죠. 그 실패는 제가 감당하기엔 너무도 컸습니다.

 

그때 어머니와 아내가 뉴질랜드로 공부를 하러 가는 것에 대해 제의했는데 저는 두 말할 것 없이 받아 들였습니다. 저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 가서 무언가 새로 출발을 하고 싶은 갈망이 있었거든요. 그렇게 저는 뉴질랜드에 가게 됐습니다. 타국에서의 생활이 힘들 땐 정말 힘들었어요. 한국은 가족이 있고 친구도 있어서 의지할 곳이 많았지만 외국은 정말 의지할 곳이 없었죠. 제가 의지할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어요. 사람 좋아하는 제가 그런 외로운 생활을 하다 보니 부모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던 하나님을 저절로 먼저 찾게 되더군요. 어머니가 그토록 말씀하시던 하나님,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듣기만 했던 예수님이 마침내 오직 한 분뿐이신 제 주님이 되셨습니다.

 

한국에서 부흥회나 간증집회에 가서 듣는 얘기들은 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얘기다 생각했는데 의지할 곳 없는 외국에서 주님만 의지하다 보니 남들에게만 일어났던 일이 제게도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 되면서 차츰 저의 정체성을 찾게 되었고,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 보이더군요. 그리고 가장 큰 건 하나님이 날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날 위한 계획이 얼마나 놀라운지 알게 되었습니다.

 

제게 가장 큰 유산은 부모님의 신앙생활입니다. 만약 제가 어머니의 기도가 없었고, 어머님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는지 보지 못했다면 아마도 전 외국에서도 힘들면 한국에서처럼 친구와 술에 의지했을 겁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와 아버지께서는 교회 대학부 선생님이셨습니다. 저희 집엔 항상 대학생 형, 누나들이 가득했어요. 집안이 여유롭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다 같이 밥 먹고, 자고, 웃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습니다. 심지어 미국에서 지낼 때도 부모님은 한국 유학생들을 집에 초대하여 함께 먹고,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슬퍼하고 위로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셨지요.

 

지금 제가 뉴질랜드에서, 한국에서 오는 청년들에게 하고 있는 모습은 바로 그때의 부모님 모습을 보고 그대로 하는 것 같아요. 부모님과 똑 같이 살고 있는 것에 내심 놀라곤 합니다. 넉넉지 않아도 나눔의 기쁨을 갖게 되었고 행복의 가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기도와 도전적인 결단이 저에게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했듯이 다비다 어머니들께서도 자녀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도전과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실 수 있도록 기도하시며 꿈을 꾸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다비다자녀 1호로서, 후배들에게 좋은 배경 없이도 자신들의 힘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워주고 싶습니다. 그들에게 남에게 보이기 위한 삶이 아닌, 자신을 위한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삶을 위해 열심히 노력 하고, 어떤 어려움도 잘 참고 견뎌내는 성숙한 인생의 소유자가 되는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자녀들을 염려하지 마시고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고난을 통과한 그들이기에 자기의 길을 찾기만 하면 그 누구보다도 당당하게 잘 살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고난은 있어도 절망은 없다는 걸 알려주고 싶고, 또한 하나님의 우리를 위한 계획이 얼마나 큰지 함께 누려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힘들 때마다 제게 힘이 된 성경의 두 구절을 읽고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 10:13)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야고보서 1:2~3)

 

하나님은 저희에게 닥친 시련까지도 저희를 온전하게 만드시기 위해 사용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특징은 감사입니다. 여러 가지 시련을 당할 때, 주님을 붙잡음으로 하나님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경험하고, 감사하며 살 수 있는 다비다자매회와 자녀들이 될 수 있길 뉴질랜드에서도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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