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들의 이야기> “너 왜 그렇게 사니?" / 김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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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그의목적 작성일12-11-08 21:15 조회45,18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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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의 이야기>
“너 왜 그렇게 사니?"
김 효 성
“너 왜 그렇게 사니?"
"그만 좀 돌아다니고 공부 좀 해라!!"
"넌 누굴 닮아서 그러니? 네 아빠는 안 그랬는데 넌 왜 그러니?"
"술 담배 좀 하지 마라"
"넌 정말 못 말리는 애다"
"엄마가 너 때문에 못살겠다……."
아버지가 13살 때 돌아가시고 그 때부터 지겹도록 들은 소리다. 정말 듣고 싶지 않았던 소리다.
처음엔 얌전한 아들로 지냈다. 어머니가 힘들어 하시고, 또 힘들게 일하시는 모습, 그리고 아버지가 없다는 그 사실이 부끄러워 나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조용히 지냈다. 활발하게 지내면 친구들이 아버지 얘기 물어볼까봐 없는 듯이 지냈다.
어렸을 때부터 우유부단한 나는 외로운 게 너무 싫었다. 아버지가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친구들한텐 아버지가 외국에 출장 가셨다고 거짓말까지 했었다. 현실은 이미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담임선생님이 반 친구들에게 내 아버지가 돌아가셨단 소식을 이미 알려줬다는 걸 모른 채 항상 친구들에게 거짓말을 하며 지냈다.
중학교를 다니면서 점점 공부가 재미가 없어졌고, 성적이 떨어지면서 자주 듣게 되는 말이 생겼다.
너 왜 그렇게 사니?"
"너 그만 좀 돌아다니고 공부 좀 해라!!"
"넌 누굴 닮아서 그러니? 네 아빠는 똑똑했는데 넌 왜 그러니?"
"술 담배 좀 하지 마라"
"넌 정말 못 말리는 애다"
"엄마가 너 때문에 못 살겠다……."
처음엔 어머니에게 너무 죄송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난 아직 어린데 왜 나를 아버지와 비교할까? 왜 나를 이해해 주지 못하실까? 난 아직 사랑받고 싶은 나이인데……. 그러면서 그 반항심은 점점 더 커져가기만 했다.
결국은 그 반항심이 고등학생이 될 때 까지 이어져 갔고 그 동네에선 나를 모르면 간첩이라 할 정도로 반항아가 됐다.
엄마 몰래 밤늦게 나가서 술을 마시고 내 딴에는 엄마 몰래 집에 들어왔다 생각하면서 내 방문을 열려고 할 때면 맞은편 어머니 방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울음 섞인 기도 소리가 너무나 듣기 싫었다.
왜 내가 어머니의 울음 섞인 기도 제목이 되어야 하는지……. 왜 어머니가 나 때문에 우시면서 아버지에게 왜 자기를 두고 먼저 갔냐고 하시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나도 아직은 아버지가 없는 자식이기에 너무나 힘든 사람 중에 하나인데……. 라는 너무나 이기적인 생각을 하면서 사춘기를 보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아버지의 유언과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성적 때문에 난 신학대학을 갔다. 그 당시엔 "난 예수님처럼 병자들, 죄인들을 위해서 신학을 공부할래. 난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는 음지에서 전도할래~" 라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면서 신학대학교를 입학했다. 하지만 결국은 2학년을 마치지도 못한 채로 자퇴를 하고 군대를 가게 됐다.
군 제대 후, 난 아무것도 없었고, 어렸을 때 부리던 투정도 받아줄 친구들도 없었다. 세상은 너무 냉정했다. 그 때 부터 어떻게든 성공하리라 다짐하고 교회를 뒤로하고 일만 하려했다. 약한 모습을 보이던 내 자신을 지우기 위해서 더 일만 하려했다.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사업이란 걸 하게 됐고, 어린나이에 사장이란 직책에 목에 힘을 주며, 일을 더 열심히 하기보단, 그동안 과시 못했던 내 자신을 표현하는데 바빴다.
그리고 나이 30살 되던 해에 지금의 아내와 만나서 결혼을 하고 아기를 갖게 되었다. 잘 될 것 만 같던 사업은 점점 더 힘들어져만 가기만 했다.
그러던 중 하루는 아내가 뉴질랜드에 가볼 생각 없냐면서, 거기에 있는 중의대학교(중국의학의과대학)에 들어가 의사가 되어 의료 선교사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그 당시 난 내가 하고 있던 사업이나 모든 게 너무 힘들었고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던 중 "내려놓음" 이란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나만의 광야를 찾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어 뉴질랜드로 떠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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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제가 누군지 다비다 여러분들은 잘 아실 거예요. 그 유명한 방탕아 김혜란 회장님의 아들인 36살 김효성 입니다. 지금은 뉴질랜드에서 한의사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위의 글처럼, 전 어렸을 때 왜 나만 이래야 하나? 라는 변명과 저 만의 쥐구멍을 항상 찾았습니다. 그리고 위의 글을 보셨듯이 지금은 뉴질랜드에 와 있습니다. 뉴질랜드에 와서야 전 한 가지를 깨닫게 됐습니다. 그건 바로 어머니의 기도의 힘입니다.
어머니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그 누구도 의지할 곳이 없는 이곳에 와서야 어머니의 기도의 힘을 알게 되고, 또한 이제야 어머니가 얼마나 힘드셨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전 이제야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지금까지 혼자서 저를 키우셨는데 왜 몰랐을까? 라는 후회와 함께 너무나도 죄송한 마음밖에 없었습니다.
저에겐 어렸을 적, 아버지가 계셨을 때의 잊지 못할 기억들이 있습니다. 저희 집에는 언제나 대학생 형들이 가득했습니다. 주말이 되면 같이 저녁 먹고 대화하고 웃고, 그런 기억들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 당시 섬기던 교회의 청년부 학생들이 항상 집에 와서 같이 성경공부하고 식사하고 교제하던 모습이었습니다.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제겐 불행밖에 없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정말 큰 유산을 남겨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함께 나누고 섬기고 즐거워할 수 있는……. 그리고 기도의 힘이라는 유산을 말이에요.
물론 제 어머니는 아직 살아계시고 지금도 계속 기도해주십니다. 하지만 전 감히 유산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왜냐면 그 마음이 제게 그대로 전해졌으니까요. 이곳에 살면서 정말 힘들 때 물질 돈이 아닌 하나님께 기도하는 법을 배웠고, 또 그 기도가 이뤄지면서 감사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나누는 법을 배웠어요.
현재 뉴질랜드에 유학 온 학생과 워킹홀리데이로 온 학생들을 데리고 토요일마다 저녁을 대접하며 교제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학생들이 하나님을 영접하고 신앙을 고백하는 모습을 보며 너무도 감사하게 살고 있습니다. 저의 부모님이 하셨던 그 일을 저희 부부가 그대로 이어받아 하고 있는 것에 놀라울 뿐입니다.
처음엔 어떻게 처음 본 사람들에게 자기 집을 제공하고 자기 돈을 써가면서 그럴 수 있냐고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하더군요. 하지만 이게 제가 부모님에게 받은 유산이고, 이것 또한 부모님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라 생각합니다.
<?xml:namespace prefix = v /><?xml:namespace prefix = o />유산=은혜……. 전 이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너무 죄송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주신 그 은혜 이젠 저도 함께 하겠습니다. 저도 기도하겠습니다. “다른 이에게 기도의 힘을 알려주겠습니다.” 라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