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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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늘꽃향기 작성일10-05-28 20:13 조회46,56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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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자전도사의 반 시골생활 적응기)
이사하는 날부터 때 아닌 진눈개비가 날리더니 날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내가 부임하는 교회는 신도시와 농촌이 공존하고 기성세대와 신세대가 공존하고
전통과 첨단문화가 공존하는 이상한 구조의 작은 도시 겸 농촌마을이다.
교회건물은 얼마 전에 신축을 하였기 때문에 그 마을에선 제일 번듯하고 빛난다.
사방이 거침없이 트인 넓은 밭으로 이루어진 지형적 특성상 바람이 사통팔달 불어와 여름에도 서늘한 일명 ‘바람의 땅’(내가 지음)이다.
그런 곳에 덩그러니 집이라곤 교회 하나뿐, 그런 곳에 위풍당당 주변경관과 어우러져 예배당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사택은 본당 위층에 자리해서 넓고 편리하다. 이상한 방법으로 기도에 응답해주신 하나님의 후히 주심에 가끔씩 스스로 놀라고 감사하다.
이곳은 대학이 있는 학교 주변이다.
시내버스가 가끔씩 다니기는 하는데 아직도 노선을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나와 우리 아이는 천안으로 나가고 들어올 때 대학 스쿨버스를 이용한다.
나는 대학생들의 눈치가 보일까봐 가능하면 젊은 복장을 하거나 교수인 체하며 차를 탄다. 그리고 중학생인 우리 딸은 다행히 키가 커서 의심 없이 대체로 무사통과다. 물론 우리는 차비는 내고 탄다. 그러나 내심 떳떳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도리가 없다. 이곳에서 살아내려면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아침이면 집집이 연기가 피어오르는 평화로운 농촌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잠시 후 출퇴근 시간이면 차들이 꼬리를 물고 쉼 없이 왕래하는 교통체증, 막상 이럴 땐 도시와 다를 바 없다.
이곳에선 도로에 인도가 따로 없기 때문에 오히려 승용차 없이는 이동하기가 불편하다. 때문에 운전이 싫고 미숙한 내가 드디어 기능인(?)이 될 수 있는 최적의 시기가 되었다. 요즘은 딸의 통학을 위해 스쿨버스 타는 데 까지 차로 데려다 준다.
사춘기의 예민한 딸을 시골로 데리고 온 미안함 때문에 이것마저 외면하기엔 마음이 아프기 때문이다.
이렇듯 어쩔 수 없는 현실의 필요(?)가 그동안 미루고 소극적인 나를 보통사람(?)으로 하나씩 만들어 가는 중이다.
벌써 여러 차례 춘설이 많이 내려 그야말로 영화와 같은 설국을 경험하는 일이 있었고 이런 날 누가 이 눈길을 헤치고 새벽기도에 나오겠나 싶어서 창밖을 내다보며 기다리고 있는데 저기서 두 개의 눈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바로 연로하신 두 분의 권사님이 마치 눈사람같이 되어 그렇게 새벽에 나오신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이곳에 더욱 마음으로 정을 붙이게 되었다.
요즘은 교회주변의 밭에 한창 한해농사가 시작되고 있다. 겨우내 단단해진 밭을 기경하는 농부의 돌봄을 바라보며 ‘농부 하나님’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게 되었고 우리의 심령을 왜 밭에 비유했는지도 알 것 같았다.
농사는 교회와 신앙생활과도 너무나 흡사해서, 하나님의 특별한 시청각 교육을 받으며 영혼의 창을 통해 깊은 묵상을 하게 되어 참 좋다.
어제는 농부들이 밭에다 연한 새싹을 가져다 줄을 맞추어 심더니만 하얀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줄지어 덮어주었다. 아마도 스스로 찬바람과 햇볕을 이길 힘이 자랄 때 까지 새싹을 보호하려는 것이리라 그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며 저 비닐하우스가 영적인 시각으로 보면 아마도 성령님의 역할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곳은 거름냄새와 질척한 땅 벌레들....... 조금은 성가시고, 오랫동안 도시의 산뜻함에 길들여진 나에겐 다소 불편이 있지만
오히려 이곳이 내 생에 깊은 영적 통찰을 주는 하나님의 보너스의 시간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탈 도시생활을 적극적으로 즐기며 하나님과 깊이 교감하는 귀한 시간으로 보내고 있다.
자연은 우리 모두의 고향이다. 그러기 때문에 자연에는 평안이 있다.
이제 이곳에 온지 한 달이 되었다. 앞으로 이곳에서의 사계절을 보내고 나면 아마도 할 이야기들이 참 많을 듯싶다.
정희자 전도사님의 새로운 사역에 박수를 ~
그러리라 조금은 짐작 했지만, 떠난 지 몇 년이 지나도록 소식 한번 주지 않고 잠적해 버린 당신이 내 머릿속에서는 왜 그렇게 맴돌고 떨쳐지지 않았는지...
그렇게 쫓기는 교회의 일정 속에서도 내 마음속의 당신의 자리는 그냥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빈 채로 있었어요. 언젠가는 찾아보리라 생각하던 중 간신히 연락이 되어 천안으로 찾아가 당신을 만났을 때, 내가 얼마나 당신을 아끼고 있었는지 확인을 했지요.
내 마음이 왜 그렇게 당신에겐 특별했는지 지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울타리 없이 날아갈 듯 바람부는 광야에 홀로 세워놓으시고 그래도 누군가 벗이 필요하여 나를 보내신 하나님의 의도가 있었기 때문인 것 분명합니다.
당신이 경험했던 지난날들의 아픔, 듣기만 해도 가슴이 그토록 아팠는데, 말로는 다할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혼자 병들어 죽어가던 당신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죽지 않고 살아준 것만으로도 당신은 대단한 사람이야!
이제 교회를 담임하여 부임한 당신의 첫발 내디딤을 생각하며 마태복음 4장을 묵상하며 축하의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물위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임하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3: 16,17),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마4:1)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 하나님의 아들로 인증하시는 확실한 사건 직후 바로 공생애에 들어가게 하시지 않고 성령님은 예수님을 광야로 이끌어 그곳에서 시험받으시도록 내버려 두셨습니다.
예수님의 첫 사역지가 광야였지요.
굶주림, 고통, 늑대, 이리, 사단의 역사가 있는 광야. 그 과정을 견딘 후에야 성령님은 주님을 능력의 사역장으로 옮기셨지요. 척박한 광야에서 훈련받으신 후에야 놀라운 능력의 장으로 인도하시었던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곧 바로 능력과 형통한 길로 가면 타락하고 변질 될 것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현실의 장애물, 고통의 자리에서 실패와 좌절, 무기력, 무능력, 통곡을 하게 하심으로 철저히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뼛속 깊이 각인시키기 위해서 성령님은 때때로 우리를 광야로 이끌어 가시고 마귀의 시험을 받도록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만 나의 도움이라고 두 손 들고 나올 때까지 자기 백성을 불과 같이 연단하신 후에야 놀라운 은혜와 능력을 증거하는 사역자로 삼으십니다.
모세가 그랬고, 다윗이 그랬고, 요셉이 그랬고, 이들과 비교할 수도 없지만 제게도 그러셨습니다.
지금의 다비다가 있기까지 말할 수 없는 훈련의 시간들이 있었지요. 이젠, 더 이상 못하겠다는 생각을 포기할 수 있을 만큼.
그 훈련이 나에게 준 큰 가르침은 주의 일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나는 다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자리에 있을 뿐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셨지요.
특히 그 때 나에게 주신 생각은 “이처럼 최저 밑바닥을 잘 견디어 내지 않고서는 앞으로 이 어려운 사역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 이 고통의 시간을 끝까지 잘 견디며 포기하지 말아야한다.”라는 것이었어요.
제가 다비다자매회 일을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때 그 광야를 견디어 냈기 때문입니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정전도사님!
아직도 다 끝나지는 않았지만 그간의 험한 광야의 여정을 정말 잘 견뎌내시었습니다. 그 광야 여정 가운데에서도 신대원 공부를 잘 마치고 마침내 새롭게 능력의 사역장으로 성령님께서 인도하셨음을 축하드립니다.
당신이 광야의 깊은 골짜기에서 만난 예수님, 그 깊은 우물에서 퍼 올린 생수로 또 다른 광야를 헤매며 목말라하는 양떼들을 먹일 때 생명을 살리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기에 당신의 사역에 기대가 큽니다.
당신이 광야에서 훈련받은 대로,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고 작은 것의 소중함을 알아 한 생명을 주께 대하듯 소중하게 여기는 참 목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다비다자매들은 언제나 당신을 뜨겁게 지지합니다. 힘내세요!!
다비다자매들을 대표하여 김혜란 드림
이사하는 날부터 때 아닌 진눈개비가 날리더니 날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내가 부임하는 교회는 신도시와 농촌이 공존하고 기성세대와 신세대가 공존하고
전통과 첨단문화가 공존하는 이상한 구조의 작은 도시 겸 농촌마을이다.
교회건물은 얼마 전에 신축을 하였기 때문에 그 마을에선 제일 번듯하고 빛난다.
사방이 거침없이 트인 넓은 밭으로 이루어진 지형적 특성상 바람이 사통팔달 불어와 여름에도 서늘한 일명 ‘바람의 땅’(내가 지음)이다.
그런 곳에 덩그러니 집이라곤 교회 하나뿐, 그런 곳에 위풍당당 주변경관과 어우러져 예배당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사택은 본당 위층에 자리해서 넓고 편리하다. 이상한 방법으로 기도에 응답해주신 하나님의 후히 주심에 가끔씩 스스로 놀라고 감사하다.
이곳은 대학이 있는 학교 주변이다.
시내버스가 가끔씩 다니기는 하는데 아직도 노선을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나와 우리 아이는 천안으로 나가고 들어올 때 대학 스쿨버스를 이용한다.
나는 대학생들의 눈치가 보일까봐 가능하면 젊은 복장을 하거나 교수인 체하며 차를 탄다. 그리고 중학생인 우리 딸은 다행히 키가 커서 의심 없이 대체로 무사통과다. 물론 우리는 차비는 내고 탄다. 그러나 내심 떳떳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도리가 없다. 이곳에서 살아내려면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아침이면 집집이 연기가 피어오르는 평화로운 농촌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잠시 후 출퇴근 시간이면 차들이 꼬리를 물고 쉼 없이 왕래하는 교통체증, 막상 이럴 땐 도시와 다를 바 없다.
이곳에선 도로에 인도가 따로 없기 때문에 오히려 승용차 없이는 이동하기가 불편하다. 때문에 운전이 싫고 미숙한 내가 드디어 기능인(?)이 될 수 있는 최적의 시기가 되었다. 요즘은 딸의 통학을 위해 스쿨버스 타는 데 까지 차로 데려다 준다.
사춘기의 예민한 딸을 시골로 데리고 온 미안함 때문에 이것마저 외면하기엔 마음이 아프기 때문이다.
이렇듯 어쩔 수 없는 현실의 필요(?)가 그동안 미루고 소극적인 나를 보통사람(?)으로 하나씩 만들어 가는 중이다.
벌써 여러 차례 춘설이 많이 내려 그야말로 영화와 같은 설국을 경험하는 일이 있었고 이런 날 누가 이 눈길을 헤치고 새벽기도에 나오겠나 싶어서 창밖을 내다보며 기다리고 있는데 저기서 두 개의 눈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바로 연로하신 두 분의 권사님이 마치 눈사람같이 되어 그렇게 새벽에 나오신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이곳에 더욱 마음으로 정을 붙이게 되었다.
요즘은 교회주변의 밭에 한창 한해농사가 시작되고 있다. 겨우내 단단해진 밭을 기경하는 농부의 돌봄을 바라보며 ‘농부 하나님’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게 되었고 우리의 심령을 왜 밭에 비유했는지도 알 것 같았다.
농사는 교회와 신앙생활과도 너무나 흡사해서, 하나님의 특별한 시청각 교육을 받으며 영혼의 창을 통해 깊은 묵상을 하게 되어 참 좋다.
어제는 농부들이 밭에다 연한 새싹을 가져다 줄을 맞추어 심더니만 하얀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줄지어 덮어주었다. 아마도 스스로 찬바람과 햇볕을 이길 힘이 자랄 때 까지 새싹을 보호하려는 것이리라 그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며 저 비닐하우스가 영적인 시각으로 보면 아마도 성령님의 역할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곳은 거름냄새와 질척한 땅 벌레들....... 조금은 성가시고, 오랫동안 도시의 산뜻함에 길들여진 나에겐 다소 불편이 있지만
오히려 이곳이 내 생에 깊은 영적 통찰을 주는 하나님의 보너스의 시간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탈 도시생활을 적극적으로 즐기며 하나님과 깊이 교감하는 귀한 시간으로 보내고 있다.
자연은 우리 모두의 고향이다. 그러기 때문에 자연에는 평안이 있다.
이제 이곳에 온지 한 달이 되었다. 앞으로 이곳에서의 사계절을 보내고 나면 아마도 할 이야기들이 참 많을 듯싶다.
정희자 전도사님의 새로운 사역에 박수를 ~
그러리라 조금은 짐작 했지만, 떠난 지 몇 년이 지나도록 소식 한번 주지 않고 잠적해 버린 당신이 내 머릿속에서는 왜 그렇게 맴돌고 떨쳐지지 않았는지...
그렇게 쫓기는 교회의 일정 속에서도 내 마음속의 당신의 자리는 그냥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빈 채로 있었어요. 언젠가는 찾아보리라 생각하던 중 간신히 연락이 되어 천안으로 찾아가 당신을 만났을 때, 내가 얼마나 당신을 아끼고 있었는지 확인을 했지요.
내 마음이 왜 그렇게 당신에겐 특별했는지 지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울타리 없이 날아갈 듯 바람부는 광야에 홀로 세워놓으시고 그래도 누군가 벗이 필요하여 나를 보내신 하나님의 의도가 있었기 때문인 것 분명합니다.
당신이 경험했던 지난날들의 아픔, 듣기만 해도 가슴이 그토록 아팠는데, 말로는 다할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혼자 병들어 죽어가던 당신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죽지 않고 살아준 것만으로도 당신은 대단한 사람이야!
이제 교회를 담임하여 부임한 당신의 첫발 내디딤을 생각하며 마태복음 4장을 묵상하며 축하의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물위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임하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3: 16,17),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마4:1)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 하나님의 아들로 인증하시는 확실한 사건 직후 바로 공생애에 들어가게 하시지 않고 성령님은 예수님을 광야로 이끌어 그곳에서 시험받으시도록 내버려 두셨습니다.
예수님의 첫 사역지가 광야였지요.
굶주림, 고통, 늑대, 이리, 사단의 역사가 있는 광야. 그 과정을 견딘 후에야 성령님은 주님을 능력의 사역장으로 옮기셨지요. 척박한 광야에서 훈련받으신 후에야 놀라운 능력의 장으로 인도하시었던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곧 바로 능력과 형통한 길로 가면 타락하고 변질 될 것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현실의 장애물, 고통의 자리에서 실패와 좌절, 무기력, 무능력, 통곡을 하게 하심으로 철저히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뼛속 깊이 각인시키기 위해서 성령님은 때때로 우리를 광야로 이끌어 가시고 마귀의 시험을 받도록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만 나의 도움이라고 두 손 들고 나올 때까지 자기 백성을 불과 같이 연단하신 후에야 놀라운 은혜와 능력을 증거하는 사역자로 삼으십니다.
모세가 그랬고, 다윗이 그랬고, 요셉이 그랬고, 이들과 비교할 수도 없지만 제게도 그러셨습니다.
지금의 다비다가 있기까지 말할 수 없는 훈련의 시간들이 있었지요. 이젠, 더 이상 못하겠다는 생각을 포기할 수 있을 만큼.
그 훈련이 나에게 준 큰 가르침은 주의 일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나는 다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자리에 있을 뿐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셨지요.
특히 그 때 나에게 주신 생각은 “이처럼 최저 밑바닥을 잘 견디어 내지 않고서는 앞으로 이 어려운 사역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 이 고통의 시간을 끝까지 잘 견디며 포기하지 말아야한다.”라는 것이었어요.
제가 다비다자매회 일을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때 그 광야를 견디어 냈기 때문입니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정전도사님!
아직도 다 끝나지는 않았지만 그간의 험한 광야의 여정을 정말 잘 견뎌내시었습니다. 그 광야 여정 가운데에서도 신대원 공부를 잘 마치고 마침내 새롭게 능력의 사역장으로 성령님께서 인도하셨음을 축하드립니다.
당신이 광야의 깊은 골짜기에서 만난 예수님, 그 깊은 우물에서 퍼 올린 생수로 또 다른 광야를 헤매며 목말라하는 양떼들을 먹일 때 생명을 살리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기에 당신의 사역에 기대가 큽니다.
당신이 광야에서 훈련받은 대로,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고 작은 것의 소중함을 알아 한 생명을 주께 대하듯 소중하게 여기는 참 목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다비다자매들은 언제나 당신을 뜨겁게 지지합니다. 힘내세요!!
다비다자매들을 대표하여 김혜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