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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죽에 담긴 사랑 (정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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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ooner 작성일09-08-11 18:31 조회44,1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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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죽에 담긴 사랑

그녀는 나와 한 달에 한 번씩 다비다 모임에서 만나는 자매이다.
그런데 그녀가 뭔가를 심히 걱정하거나 화를 내는 것을 나는 아직까지 한 번도 본적이 없다. 그녀는 나를 만날 때마다 평안히 웃는 얼굴로 늘 반갑게 인사를 건네곤 하였다.
나는 그녀와 평상시 그다지 많은 말을 주고받은 적은 없었지만, 그러나 그녀의 눈빛에서, 그녀가 나를 따뜻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자주 느낄 수가 있었다.
간혹 나의 건강을 염려해주며 작은 일이라도 항상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는 그녀는 만날수록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산소 같은 여인’이다.
그런 그녀가 이번모임에 나타나자마자 내게 인사를 건네며 내 얼굴을 조심스레 살폈다. 그리고는 마침내 나를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는 자신의 가방 한구석에서 뭔가를 꺼내어 내손에 건네주었다.
투명 유리병 속에 노랗게 비치는 고운 빛깔이 한눈에 봐도 호박죽 이었다.
그녀는 내게 어서 한쪽에 들어가서 이것으로 우선 손쉽게 시장기를 면하고 에너지를 충전하라고 재촉했다.
입이 짧은 나는 입맛이 없다싶으면 끼니를 자주 생략하는 편인데다, 게다가 멀리서 차를 타고 오다보면 막상 모임장소에 도착하면 그만 체력이 소진 될 때가 많아서 시들시들 하곤 했는데 그녀가 그걸 알아차린 것 같았다.
나는 호박죽을 참 좋아한다.
게을러서 그런지, 입맛이 없어서인지 언제부터인가 씹기를 싫어하고 밥보다는 죽이 좋을 때가 많아졌다. 그래서 나는 빛깔도 곱고 달콤한 호박죽을 뷔페식당에 가서도 허다히 맛있는 음식을 제치고 그것을 빼놓지 않고 챙겨먹는 편이다.
하지만 마침 그때는 방금 요기를 한 상태여서 이따 먹겠다며 나는 가방에 받아두었다. 그리고는 모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시장기를 느껴서 남의 눈치도 의식하지 않고 그녀의 호박죽을 꺼내어 정말 맛있게 먹었다.
그렇다. 어쩌면 진정한 사랑은 이토록 지극히 촌스러운듯하면서도 감동적이다.
나는 집에서 그녀가 나를 생각하며, 귀찮을 법도 하련만 주섬주섬 친정어미처럼 호박죽을 싸가지고 왔을 그 애틋한 마음에 더욱 가슴이 찡하다.
모두들 내 가족 내 식구만 챙기기 급급한 이 건조한 세상에서 간혹 한 번씩 만나는 존재인, 그런 내가, 어느덧 그녀의 마음속에 가족처럼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내내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대체로 우리에겐 누군가에게 뭔가를 선물을 하려할 때, 늘 그것을 가로막는 한 가지 생각들이 있다.(-이까짓 별것도 아닌 것을 굳이 선물이라고, 또는 그가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 어찌 할까 - ) 
하지만 그녀가 그러한 생각을 떨쳐버리고, 그저 나에게 먹이고 싶은 오직 한 가지 순수한마음, 그것을 행했을 때 나도, 그녀도, 우리 모두가 훈훈하고 행복해졌다.
생각에서 그치지 않고  마침내 내게 건네준 소박한사랑은 우리 다비다의 온도(?)를 적어도 몇 도는 높여 주었다. 나는 집에 돌아와 그녀에게 문자를 띄웠다.
노란 호박죽에 담긴 당신의 사랑을 감사드린다고..........
그리고 뒤이어 그녀에게서 답이 왔다. 맛있게 먹었다니 나는 당신보다 더 행복하고 감사하노라고.
호박죽 한 그릇은 어찌 보면 비록 작고 흔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호박죽을 통해 주고 받은 따뜻한 마음은 주는 이도 받는 이도 모두 행복하게 했으며 그리고 서로의 소중함을 확인하는 다리가 되었다.

나는 말하고 싶다.
우리가 서로 만날 때마다 서로를 감동시킬 준비를 하자고. 그리고 작은 일에도 감동받을 준비를 하자고. 감동은 물건이 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주는 것이다.
우리의 인연이 무엇이기에 우리는 이렇게 늘 만나고 있으며 서로를 떠올리는가?

이번 모임에서 받은 그녀의 호박죽 사랑이 나에게 오래 동안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그녀를 칭찬하며 존경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우리공동체를 부서지지 않도록 뭉쳐준 본드(?)는 바로 이런 마음들일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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