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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다문학상 우수상> 김청자 어머님께 / 박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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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im 작성일22-08-11 10:58 조회7,0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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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청자 어머님께

박선미

 

어머니, 요즘 창밖으로 푸르른 신록이 어찌나 청량한지 어머니가 사시는 아파트도 시원하고 좋지요? 작년에는 심장수술을 하고 얼마 전에는 무릎연골수술까지 받으시고 이겨내시느라 어머니 고생 많으셨습니다. 제가 어머님을 처음 뵌 지도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네요. 우리 수함이가 벌써 21살이나 되었으니까요. 내년에 군대를 간다고 하는 녀석을 보면 세월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지나갑니다.

 

어머니, 옛날 생각이 나요. 고향이 전라도 목포이고 워낙 깔끔하고 끝맺음이 확실한 분이라 처음에 어머니를 대할 때 제가 좀 힘들었던 거 아세요? 게으른 제가 일찍 일어나는 일도 곤욕이었지만 그보다도 살림이라곤 1도 모르는 철없는 새색시가 끼니때마다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맸었는데...

어머님처럼 똑 소리 나게 살림을 잘하지도 못하고 배에는 처음 보는 인슐린펌프라는 기계를 차고 있고 맨날 피곤하다고 누워있는 며느리가 당연히 마음에 들지 않으셨을 거예요. 그렇게 함께 살던 반년의 기간은 흔히들 말하는 고부갈등이 우리에게도 은근히 있었던 것 같아요. 아이들 아빠의 사업이 잘못되어 도피하듯 중국으로 떠났을 때, 한편으론 이제는 시어머니의 잔소리와 눈총에서 해방된다는 자유함까지 느끼기도 했으니까요. ㅎㅎ

 

요즘은 먼저 간 애들 아빠가 문득문득 생각이 나고 꿈에 나오기도 해요. 중국으로 가서 애들 아빠는 중국어를 무섭게 공부하더니 곧바로 무역 일을 시작했는데 어머님을 닮아서 그런가 정말 추진력 하나는 뛰어났죠. 무역 초짜가 오더를 꽤나 많이 받았으니까요. 그렇게 밤낮 일만 하던 그 사람은 또 얼마나 담배를 많이 피우던지 저랑 참 많이도 싸웠습니다. 매일같이 머리가 아프다며 진통제로 달래곤 했는데, 그것이 몸 좀 챙기라는 신호인줄 몰랐던 거죠. 아무 예고도 없이 남편은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고 세 살, 다섯 살 꼬맹이들은 그렇게 아빠 없는 아이들이 됐고요.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수 년 동안 시댁과 일절 연락을 끊고 지냈을 때 어머니 많이 속상하고 제가 야속했지요? 손주들 소식도 궁금하고 어떻게 지내는지 애가 탔을 어머니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고 저는 나의 아픔, 나의 고통만이 전부인 것 마냥 내 속에 콱 틀어박혀 있었어요. 하나님도 안보이고 세상도 안보이고 그냥 두 아이가 딸린 아프고 불쌍한 젊은 과부만 있었으니까요.

 

어머니도 아시다시피 남편이 자동차매매상사를 운영하면서 얽힌 사람으로 인해 벌어진 대포차량의 일은 저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사건이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날아오는 차량범칙금, 과태료 고지서를 받을 때마다 제 속은 무어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암담했습니다. 거기에 제 명의로 사업을 하다 대출받은 빚 독촉까지 저를 압박하니 저의 멘탈은 바닥을 칠 수밖에 없었지요. 과도한 스트레스로 혈당관리가 안되어 응급실과 입원을 수시로 했을 정도니까요. 그런 아들이 벌인 일로 인해 며느리인 나는 이렇게 고통 받고 있는데 아무것도 해결 못하는 시댁의 무관심과 무능에 저는 그만 화가 났던 거죠.

 

죽은 남편이 원망스러웠어요. 시댁이, 세상이 원망스러워지더니 급기야 이 모든 것을 허락하신 하나님께도 분노의 삿대질을 해댔습니다. 모든 것이 허망하고 우울하여 시댁과 지인들과도 연락을 끊고 교회마저 나가지 않게 됐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 존재는 지지리 복도 없는 팔자가 되었고 외롭고 아팠습니다. 그렇게 나 혼자 덩그러니 외롭게 있는 줄 알았는데 지나고 나서 알았어요. 그 뒤에는 애타는 심정으로 기도하는 어머니가 있었음을. 그리고 하나님은 한 번도 떠나신 적 없으시고 여전히 나와 함께 계셨음을.

 

그런데 어머니! 막내로 자라 뼛속까지 이기적인 저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다시 출석하게 된 교회에서 기도하는데 어느 날부터 제 가슴이 열리며 따뜻해지는 거예요. 어머님이 떠오르면서 당신은 시어머니이고 나는 며느리라는 사회적 관계를 넘어선 더 깊은 관계 말입니다. 김청자라는 한 여인의 일생이 파노라마 지나듯 펼쳐졌고 다시금 그 여인조차 넘어선 한 영혼이 다가왔습니다. 그 영혼은 주님의 아름다운 신부이며 아무도 그 사랑에서 끊을 자가 없는 고귀한 존재임이 제 가슴으로 와 닿은 거예요. 그래요 어머니, 지금은 시어머니와 며느리라는 육신의 관계로 만났지만 어머님과 저는 예수님이라는 나무에 접붙이어 생명을 누리는 한 가지였던 겁니다.

 

존경하는 어머니,

 

이제는 백발이 된 짧은 머리가 왠지 휑하고 쓸쓸해 보입니다. 퉁퉁 부은 왼쪽 무릎을 가만히 쓰다듬고 있으면 마음이 저려옵니다. 앞니, 송곳니가 빠져 발음이 새고 좋아하는 고기도 이제는 마음껏 못 먹는다는 하소연은 또 어떻고요. 최근에 자주 보는 드라마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나중은 없어. 지금이지. 나중이 어디 있어.” 제 눈가에 주름의 속도보다 어머님의 노쇠함이 하루가 달라짐을 느끼는 요즘, 그래 나중은 없고 지금이라고 말하는 그 주인공처럼 어머니! 지금 전화 드리고, 지금 찾아뵙고, 지금 사랑할게요.

 

큰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아버님도 없이 혼자 지내시는 네 어머니를 생각해라. 그에게 행한 일이 바로 내게 행하는 일이다.”라는 그분의 다정한 음성에 마음의 귀를 기울입니다. 이제 어머니의 손주인 수함이와 예님이 그리고 제가 함께할게요. 어머니는 돌아가신 제 친정엄마나 다름없어요. 친정 부모님께 못해드린 효도에 아쉬워하며 후회만 할 게 아니라 또 다른 나의 엄마, 존경하는 우리 어머니께 마음을 다하겠습니다.

 

이번에 넓고 좋은 집으로 이사했다며 저희보다 더 좋아하시는 어머님! 저희 집에 오시면 손주들과 맛있는 거 먹으며 여기까지 인도해주신 우리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드려요. 하나님만 아니라 아이들 아빠도 흐뭇해하겠죠?

 

아직까지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데 건강에 유의하시길 바라며 어머니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20225, 며느리 박선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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