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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나로 강하게, 가난한 날 부하게 / 문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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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im 작성일22-01-06 13:27 조회10,6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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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나로 강하게, 가난한 날 부하게

 

문연임

 

안혜지, 안혜승의 엄마 문연임입니다. 처음 다비다 정기모임에서 간증해달라는 부탁받았을 땐, “내가 무슨 간증을 하나? 남에게 보여줄 것도 보여지는 것도 없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생활의 변화보다 제게 있었던 마음의 큰 변화에 대해 말씀드리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용기를 내기로 했습니다.

 

아이의 아빠를 만나 결혼을 약속하였던 해, IMF 위기가 닥쳐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채 큰아이를 출산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때부터 불행이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 아빠가 생활비도 주지 않고, 잦은 외박을 하고, 가정은 안중에도 없는 듯 많은 잘못을 했지만 그럼에도 전 모든 걸 감내해보려 하였습니다. 저와 아이게 욕을 하고, 물건을 집어던져 이사 올 때는 장롱 빼고는 큰 물건이 하나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어느 날은 돈을 요구하며 2층 창문에서 아이를 들고 내던지려 했습니다. 그 사람 앞에 주저앉아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날로부터 저의 존재는 없었습니다. 7~8년간 그 사람에게 그렇게 이끌려 살았습니다.

 

저는 둘째 아이 계획이 전혀 없었으나 어리석게도 혹여 둘째라도 낳고 제가 잘하면 바뀌지 않을까 싶어 둘째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모든 것들이 더 악화되었습니다. 아이 아빠가 집에 들어오는 횟수는 더 줄고 요구하는 돈의 액수가 더 커졌습니다.

 

저는 두 아이를 키우는 데 심한 생활고를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냉장고 밑에 비상금으로 던져 넣었던 100, 500원짜리 동전들을 꺼내려고 30cm 자로 안간힘을 써서 팔을 밀어 넣어 이리저리 긁어보았습니다. 냉장고 밑에 남아 있을 몇 개의 동전들이 나오지 않았을 때, “, 내 팔이 조금만 더 말랐더라면.” 한탄하며 아이에게 200ml짜리 우유 하나 사주지 못하는 제 자신을 원망했습니다. “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구나.” 그때 저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 삶을 멈추기로 결심했습니다.

 

며칠을 굶겼는지도 얼마나 울었는지도 모를 18개월 된 둘째 아이가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그런 저를 보고 있었습니다. "엄마 죽지 마."하는 듯한 애절한 모습으로. 순간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나왔습니다. “나만 죽으면 되는 게 아니구나. 나에게는 아이들이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아이들의 엄마라는 책임감 하나로 버티기로 했습니다.

 

그러려면 저는 두 가지부터 제게서 떼어내야 했습니다. 첫째는 아이 아빠였고, 둘째는 그 사람이 내게 넘긴 3억원쯤 되는 채무였습니다. 그 사람은 아이가 초등학생이 된 이후로 집을 나가버리고, 전 이혼을 하려 했으나 그 사람은 쉽게 이혼을 해주지 않으려 했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고 긴 시간동안 싸움을 하는 것이 제게는 굉장히 지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1년 여 만에 판사 앞에 마주앉아 이혼 판정을 받고,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느냐는 판사의 말에 눈물만 흘렸습니다. 허망함. 그뿐이었습니다.

 

그 후 점점 몸에 힘이 없어지고, 어지럼증이 심해지고, 길에서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갈 정도로 악화되어 이석증이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큰아이가 수능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지만 저는 일을 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머리통증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해져 큰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니 뇌혈관에 문제가 있어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수술을 마치고 회복 중에 집나간 아이 아빠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부고를 받고 시신을 인계받아 장례를 치렀습니다. 이혼 접수를 한지 2달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혼자서 엄청난 채무를 갚아나가며, 두 아이를 키워내는 것은 너무나도 험난했습니다. 하루에 두세 개씩 아르바이트를 하며 3-4시간도 자지 못하는 일상을 반복했습니다.

 

신이 과연 있을까? 있다면 왜 나에겐 이런 시련만 주시는 것일까? 나에게는 왜 도움의 손길을 뻗지 않는 것일까?”하며 하늘에 대고 욕을 하며 원망해본 적도 있습니다.

 

저는 몇 달 전 큰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아이들이 사망동의서를 쓰고 중환자실에 입원할 정도로 큰 사고였습니다. 그 사고를 당하기 3일 전쯤에 꿈을 꿨습니다. 지진 해일이 크게 일어나 여기저기서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는 난리 통에 어쩔 줄 모르는 자신의 모습. 일순간 제 앞에 물막이 딱 쳐지며, "내가 너를 도우리라."는 나지막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말을 듣고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승용차 조수석에 앉아 있던 저는 심한 추돌 사고를 겪었고, 장기가 파손되었는지 복부에서 심한 통증이 느껴졌고 의식이 점점 흐려졌었습니다. 꿈 때문이었을까요? 그때 의식을 놓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제목도 모르는 찬송가를 저도 모르게 반복해서 불렀습니다. “약한 나로 강하게, 가난한 날 부하게, 눈 먼 날 볼 수 있게. 주 내게 행하셨네. 호산나 호산나 죽임당한 어린 양, 호산나 호산나 예수 다시 사셨네.”

 

장기가 파열되면 정해진 몇 분 내에 원인을 파악하고 즉시 수술을 해야 합니다. 아마 제가 정신을 놓았더라면 제가 장파열이 됐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119 구급차가 왔을 때 저는 배를 가리키며 "터진 것 같아요."라며 희미한 목소리로 상태를 알렸는데 그 후엔 기억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살리신 겁니다. 눈이 떠졌을 땐 3일이 지난 후였고, 저는 온 몸에 10개 이상의 호스를 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셨어! 내가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지만, 나의 뒤에서 나를 보호하셨어!” 그분께서 내 안에 거하심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얼마 전 누군가가 저에게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냐고 물어봤습니다. 저는 망설임 없이 제 마음속에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항상 제 마음속에 계셨습니다. 제가 살아가는 동안 의지할, 버틸 수 있는 그런 힘이 되셨습니다.

 

저는 여태껏 하나님이 저에게만 주신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항상 당당할 수 있는 마음을 주셨고,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주셨고, 예쁜 두 딸아이를 주셨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주의 손을 굳게 잡고 찬송하며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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