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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하는 은혜 / 손인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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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im 작성일16-02-16 14:02 조회28,8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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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하는 은혜(로마서 8장 28절)

손인식 목사(그날까지 선교연합회 국제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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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생각하는 존재이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재산 중 하나가 생각하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생각의 기능 중 가장 중요한 기능이 해석하는 것이다. 이 해석이야말로 한 사람의 인생을 아주 풍성하고 행복하게 만들 수도 있고, 한 사람의 인생을 병들게도 할 수 있다. 결국 “우리가 어떤 사람이냐, 무얼 가지고 사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나는 나의 삶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느냐?”이다.

성경은 성경을 해석하게 만드신 하나님의 은총으로 가득한 책이다. 기독교 최대의 은혜는 해석하는 데 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해석을 전혀 다르게 만들어 주는 위대한 책이다. 성경은 “저 사람은 틀림없이 불행해야 할 사람인데 어떻게 저렇게 행복한가?”에 대해 해석하게 한다.

예를 들어 창세기 50장의 요셉을 보자. 요셉은 자신을 노예로 팔아먹은 형님들에게 “당신들이 나를 팔아먹었다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 일로 인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우리 동족들을 구하게 하셨습니다.”라고 말했다. 인생을 해석하는 은혜에 따라서 이렇게 달라진다.

시편 23편에서 다윗은 “원수의 목전에서 내 앞에 상을 베푸시고,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주시고...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하였다. 어려운 중에도 해석하는 영적 기능이 생각을 지배하니까 “내 잔이 넘치고 있다.”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1장에서 “죄인 중에 괴수인데 그 괴수인 나를 하나님께서 거룩한 직분 맡겨주셨다.”고 해석하고 로마서 8장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해석하였다.

하나님의 뜻을 믿음으로 해석할 때 사탄이 근접하지 못한다. 해석하는 은혜 때문에 사탄은 일곱 길로 달아난다. 자신의 인생을 이 세상에 맡겨서 해석하지 마라. 연속극 한 편을 보고 자신의 인생을 “불행할 수밖에 없어.”하고 잠든다면 그것처럼 손해 보는 일은 없다.

신본주의 해석을 해야 한다. 창조주께서 주신 삶을 믿음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피조물의 해석에 맡기지 마라. 인간은 거기서 거기다. 인격이란 바닥이 다 보인다. 지성이라는 것에 우리 위대한 인생을 맡길 수 없다. 우리 인생의 해석은 성령님께 맡겨야 한다. 해석하는 은혜 때문에 반짝반짝 빛나는 다비다가 되길 바란다. 그것이 행복한 길이다.

우리가 우리 힘으로, 본성으로 해석을 제대로 할 수 있는가? 조금만 일이 생기면 억지로 세웠던 해석의 수준이 순간적으로 허물어 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해석하는 존재인 동시에 우리 안에는 의식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는 늘 의식하며 산다. 사람은 늘 의식한다. 의식하는 만큼의 수준에 산다.

달라스 신학교의 한 교수는 ”한 인생에 있어서 그 사람의 의식지수가 그 사람의 행복지수가 된다.”고 말했다. 우리가 좋은 해석을 하려면 의식이 맑고 깨끗한 하나님의 영으로 의식해야 한다. 그런데 그 의식이 우리 뜻대로 안 된다. 이 세상에 선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정말 강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우리 의식이 환경과 각자의 독특한 여건 속에서 상처를 입었다. 스스로 건강하기 힘들다. 피해의식, 절망의식, 비교의식, 열등의식, 우월의식, 자존심 등등. 뒤죽박죽 복잡하다. 그 의식이 크리스천들을 괴롭힌다. 의식지수가 건강하지 못하니까 결국 우리의 인생을 해석하는 데 있어 불행한 해석을 하게 된다.

우리 스스로 상처의식, 피해의식, 절망의식, 비교의식, 불행의식을 고칠 수 없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의식을 고치시는 의사 한 분이 계신다. 그분 말고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우리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우리 인생을 고쳐주셨을 뿐 아니라 지금도 우리 의식을 고치시는 의사이시다. 물 세례 뿐 아니라 우리 인생에서 기독교인으로 만들어주시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까지도 세례 주신다. 겉모습이 변한 것이 아니라 의식이 세례 받고 중생하지 않으면 의식의 피해자가 된다.

늘 이런 때 기억 나는 것이 창세기 32장의 얍복강 사건이다. 그 밤에, 제멋대로 살아오던 야곱이 자기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어보겠다고 별짓을 다하며 살았던 야곱이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얍복강의 절벽에서 밤새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을 했다. 얍복강의 사건은 씨름한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체험한 사건이다. 하나님을 체험 하는 것, 이 과정이 우리 의식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오랜 신앙생활을 하고 직분 있는 분들도 의식이 새로워지지 않으니 교회, 역사. 인생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잘못된 해석을 하고 있다. 의식이 병들었으니까 모든 것을 비뚤게 해석한다. 그것을 가지고 교회를 사회를 어지럽게 한다. 건강한 해석, 밝은 해석을 해야 한다. 의식이 바뀌면 해석이 바뀐다. 얍복강의 체험이 있어야 한다. 브니엘에 해가 뜨니 이스라엘로 이름이 바뀌고 해가 돋았다. 해가 돋은 그 아침에 이스라엘로 새롭게 출발하였다.

교만과 잘못된 의식으로 많은 사람을 괴롭혔으나, 어두움이 걷히고 아침 해가 솟아 오르니 밤이 물러가고 아침이 왔다. 하나님을 체험하고 나면, 의식이 세례를 받으면 어둠이 물러가고 아침이 온다.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의식을 가지고 새롭게 해석하게 되면 우리의 불행한 것들을 다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님을 사랑 하는 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는 말씀에 바른 해석을 하게 하는 위대한 축복이 담겨있다. 깊이 감추고 감췄던 어둡고 병들었던 의식의 동굴에서 우리를 업고 밝은 아침으로 이끌어내는 것이 복음이다. 그것이 십자가이다. 의식이 바로 설 때 새로운 능력이 나타난다. 행복한 여건을 만들어내는 해석의 복을 만들어낼 수 있다.

야곱은 끔찍한 형에 대한 비뚤어진 해석의 어둠이 물러간 밝은 아침에 형을 만났을 때 “형님의 얼굴을 뵈오니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것 같습니다.” 라고 말했다. 성경은 멋있다. 자기의식의 어둠이 물러가고 아침이 오니까, 자신의 속이 새로워지니까 이런 고백이 나온다. 의식지수가 언어지수를 결정하고 행복지수를 결정한다. 우리 인생의 은혜로운 해석이 가능하게 된다.

가장 위대하게 누릴 축복이 이것이다. 싱글로 살아온 다비다자매들의 ‘왜?’에 대한 모든 해석이 새로워지길 기도한다. 주님 앞에서 의식이 변화되고 세례 받고 중생하는 만큼, 위대한 축복의 해석으로 바뀌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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