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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입을까?(마6:28~33) / 이영복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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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im 작성일22-10-27 16:15 조회6,1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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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입을까?(6:28~33)

 

이영복 장로(다비다자매회 사무국장)

백합 같은 내 동무야

 

제가 고등학교 시절, 좋아했던 가곡이 있습니다. 100년 전인 1922년에 나온 가곡입니다. 박태준 선생이 곡을 쓰고 이은상 시인이 가사를 쓴 동무생각이란 노래입니다. 곡의 배경은 박태준 선생이 대구 계성학교에 다닐 때 가까운 신명학교 여학생을 짝사랑한 이야기입니다. 곧 자신의 마음을 푸른 담쟁이넝쿨이 휘감고 있는 청라언덕에, 여학생을 한 송이 흰 백합에 비유한 노래지요. 특히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라는 가사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또 박태준 선생(1900~1986)이 작곡한 동요가 있는데 여러분들이 잘 아는 노래입니다.‘오빠생각입니다.

저는동무생각도 좋아하고오빠생각도 좋아하지만, 정말 좋아하는 노래가 있습니다.‘다비다생각입니다. 그런 노래도 있느냐고요?

20191월에 다비다에서 창립25주년 기념 뮤지컬 공연을 했잖아요. 여러 노래 중에 제가 곡을 만들고 가사를 붙여서 불렀던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노래 기억나지요? 그 노래가 저의다비다생각입니다.“내 백성을 위로하라. 풀과 같은 다비다를. 상한 갈대 손에 손잡고 순백의 춤 출 그날까지.”

 

그런데 제가 우리 다비다자매들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꽃이 있는데 무엇인 줄 아십니까? 백합화입니다.“백합 같은 내 동무야, 백합 같은 다비다야!”입니다. 여기서 헷갈려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 박태준 선생의 노래 속 동무를 부를 때의 백합과 제가 동무 다비다를 부를 때의 백합은 다른 백합이라는 것입니다. 전자는 우리가 잘 아는 하얀 릴리(lily)이지만 후자는 마태복음 6장에 나오는 백합화입니다.

 

2. 겸손과 약함의 다비다 영성

 

마태복음 628절을 봅시다.“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그런데 여기서 백합화는 잘 가꾼 화원이나 꽃 가게에서 볼 수 있는 값이 나가는 백합, 그 릴리(lily)가 아니라 들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들꽃입니다.

이것은 아가서에서도 확인됩니다. 아가서 21절을 봅시다. “나는 샤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다.”술람미 여자가 하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샤론은 광야이고, 수선화나 골짜기의 백합화는 광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들꽃입니다. 화려한 꽃이 아니라 평범한 들꽃이라는 겸손한 표현이죠. 아가서 216절을 봅시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구나. 그가 백합화 가운데서 양떼를 먹이는구나.”그런데 주님은 화려한 화원이 아닌 그런 들꽃 가운데서 양떼를 먹인다고 합니다. 그런 들꽃 같은 존재인 내가 창조주 하나님과 주님과 서로 서로에게 속하였다는 엄청난 표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백합 같은 내 동무들인 다비다자매들에게서 두 가지 영성을 확인합니다. 곧 술람미 여인의 고백처럼나는 평범한 들꽃이라는겸손의 영성이고 하나님의 돌봄이 필요하다는약함의 영성입니다. 다비다자매들은 자기를 낮추는 겸손의 자리에서 하나님과 연합하는 자리로, 또한 약하기에 더욱 귀히 여김을 받는 비밀의 골짜기로 초대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눈물겹도록 아름답습니다. 그런 다비다자매들을 보면 어느 신부님이 쓴 것으로 기억되는 석 줄의 짧은 시가 떠오릅니다.

 

꽃을 본다.

꽃이 아름답다.

꽃이 아름답습니다.

 

내 눈으로 볼 때 꽃이 아름답다는 표현은 꽃이 하나님의 작품이고 그분이 보시기에는 더욱 아름답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 이내 경어로 바뀐다는 것이라는 점에서 깊이 공감했던 시입니다. 저는 꽃을 다비다로 바꿔 다시 써보았습니다.

 

다비다를 본다.

다비다가 아름답다.

다비다가 아름답습니다.

 

제 눈엔 겸손과 약함의 영성을 가진 다비다 여러분들이 진정 꽃보다도 아름답습니다.

 

3. 생명과 주인을 좇는 다비다 영성

 

1994년 다비다자매회가 창립되기 얼마 전의 일입니다. 12시가 다 되어 한 자매가 질문이 있다며 전화를 해왔습니다. 오늘 본문과 관련된 질문이었습니다. “들에 핀 백합화는 수고도 길쌈도 아니 하지만 그 차려 입은 것이 솔로몬의 옷보다도 더 아름답다고 성경은 말씀하지만 솔직히 보석이 박힌 솔로몬의 옷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데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아니 크리스천이면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예수님의 말씀인데도 이해가 안 간다니.”라는 생각이 언뜻 들었지만 한밤중의 전화가 심상치 않아 잠시 질문을 새김질해 보았습니다.

그래 솔로몬의 옷은 분명 아름다웠을 것이다. 솔로몬의 옷 대신 샤넬이나 프라다 등 명품 옷을 생각하면 결코 엉뚱한 질문일 수 없지 않은가? 어떤 면에서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 된 자신의 삶이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자에 비해 오히려 초라해 보이는 무기력감을 토로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치자 저는 하나님께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라고 여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두 단어를 떠올려 주셨습니다. 생명주인이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요지로 대답해주었습니다.

첫째로 백합화에는 생명이 있으며, 솔로몬의 옷에는 생명이 없다. 둘째로 들의 백합화는 그 주인이 하나님인데 솔로몬이 입은 옷의 주인은 솔로몬이다. 자매님에겐 영원한 생명이 있고 자매님의 삶의 주인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닌가? 그런데 이 세상의 그 무엇이 부럽고 무엇이 걱정인가?”전화선 저편에서 이제야 해답을 얻었다며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로부터 생명과 주인이란 두 단어는 제 신앙생활에 큰 가치로 자리를 잡았음은 물론입니다. 그 후 얼마가 지나지 않아 다비다자매회가 창립되었고 긴 세월 다비다 가족들에게서, 상실감으로 기력을 잃은 생명이 소생하고 새로운 신랑인 주인을 존중히 여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다비다의 또 다른 두 가지 영성을 확인하였습니다. 생명을 존중하고 주인을 좇는 영성입니다.

그러기에 저는 여러분들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솔로몬 옷이 들꽃보다도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있더라도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마음을 다잡는다는 것을 잘 압니다. 자신이 어려우면서도 오히려 주변의 어려운 자를 살리기 위해 손을 내밀고,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루하루 꿋꿋하게 살아간다는 것을 잘 압니다.

 

4, 무엇을 입을까?

 

그러면 겸손, 약함, 생명, 주인을 추구하는 다비다 영성을 가진 우리가 입고 있는 옷, 또는 더 잘 입어야 할 옷은 무엇일까요? 오늘 찬양팀이 옷을 참 멋있게 입었지요? 시장에서 산 옷일지 모르지만 명품처럼 보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눈에 보이는 옷을 잘 입자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라는 것 잘 아시죠? 마태복음 631절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앞서 마태복음 630,“오늘 피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솔로몬의 옷 부럽지 않게 멋있게 입히시는데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라는 질문 속에 답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입을까?”라는 걱정을 무엇으로 바꾸라고 합니까? 633절입니다.“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합니다. 성경은 성도들이 입을 여러 가지 옷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네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우리에게 그리스도로 옷 입게 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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