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백성을 위로하라!(이사야 40:1~11) / 이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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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im 작성일25-03-13 11:19 조회72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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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백성을 위로하라!(이사야 40:1~11)
이영복 장로(본회 사무국장)
상한 갈대의 노래
제 나이 스무 살이었던 1977년 가을, 대학 3학년 때 처음으로 작곡을 해서 자주 불렀던 노래를 조금 부르고 오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상한 갈대 찬바람에 몸부림치는 아 삶이란 괴로운 고향” 제목이 ‘상한 갈대의 노래’입니다. 자신을 상한 갈대에 비유한 것이지요. 노래를 만든 배경이 있습니다. 당시는 1972년 유신헌법에 따라 1974년부터 아홉 번 발령된 긴급조치 중에서 가장 강력한 긴급조치 9호가 발령된 상황이었습니다. 대학의 집회와 언론, 출판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이 제한되었습니다. 유신체제를 반대하거나 비판만 해도 잡혀갔습니다. 계엄령이 포괄적이라면 긴급조치는 특정사안에 대해 적용한 준계엄령 성격이지요. 저도 당시 경찰서에 연행되어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철야조사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아침에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제가 만든 노래가사처럼 상한 갈대가 찬바람 앞에 몸부림치는 것 같은 참 힘든 시기였습니다. 그렇지만 인생이란 마치 고향처럼 버릴 수는 없기에 힘들고 괴롭더라도 견뎌야겠다는 다짐으로 “아 삶이란 괴로운 고향.”이라고 노래했던 것이지요. 스스로 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노래입니다. 유신독재로 얼룩진 어두운 시대, 그 절망의 시대에서 부른 탄식의 노래였지요.
그때로부터 47년이 지난 작년 12월 3일 우리는 한밤중에 상상치도 못했던 비상계엄이 선포되는 것을 TV로 보았습니다. 정말 다행히도 몇 시간 만에 해제되었지만 대통령이 구속되고 탄핵소추된 가운데 국가적 혼란과 위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저로서는 긴급조치 9호 상황에서 경험했던 젊은 시절의 끔찍했던 트라우마가 다시 되살아나는 듯해 지난 두 달 반 동안 참 힘들었습니다.
저만 아니라 온 국민이 참 힘들어 하고 있는 안타까운 지경에 와 있습니다. 생각이 다른 서로를 적대시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 갈등과 대립을 일부 교회들이 주도하고 있는 것을 보며 마음이 참 아픕니다. 우리나라 국민의 속상한 마음에 위로가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한국 교회에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통한 바른 길로의 인도와 위로가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심한 제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오늘 본문 1절,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말씀입니다. 자연스레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노래가 떠올랐지요. 오늘 본문과 이사야 42장 3절의 내용을 가사로 해서 제가 2019년 1월 다비다 창립 25주년 기념 뮤지컬 ‘사랑의 보물단지’에서 작곡해서 불렀던 노래지요. 젊은 시절의 ‘상한 갈대의 노래’는 더 이상 저에게 위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 노래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만이 저를 위로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노래한 것이지요.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노래에도 ‘상한 갈대’가 등장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스무 살 때 만든 노래가 찬바람에 몸부림치는 갈대라면, 예순이 넘어 만든 노래는 이사야 42장 3절 말씀의 연약한 상한 갈대 같은 상황일지언정 바람에 꺾일 새라 두 손으로 감싸주는 분,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에 감동하며 만든 노래입니다. 그래서 저는 먼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나아가 우리 국민과 한국 교회, 그리고 다비다 식구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부어지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자주 부르고 있습니다. 설교 마지막에 제가 불러보겠습니다.
2. 하나님의 위로
이사야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1~39장까지가 유다와 이스라엘 그리고 열방에 대한 심판에 대해, 40~66장까지는 하나님이 메시아 예언과 함께 백성을 구원하고 회복시키는 계획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40장은 후반부의 시작에 해당됩니다. 어떻게 시작합니까?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위로해 주시는지 그 놀라운 복음에 대해 나눠보고자 합니다.
한 마디로 “예수가 오신다. 그분으로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로하기 위한 두 가지의 선포와 세 가지 약속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1) 두 가지 선포
ⅰ) 1절의 “너는 내 백성이다.” 즉 존재의 정체성에 대한 것입니다. “너는 내 백성이다. 내 아들이다. 내 딸이다.”라는 선포가 담겨 있지요. 이사야 43장 1절에 가면 “너는 내 것이다.”라며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임을 분명히 하고 있지요. 진정한 위로는 그 정체성에 대한 확인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49장 16절에 가면 하나님은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이름이 새겨져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시작이 반이라고 위로의 첫걸음은 정체성을 확인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잘못을 저지른 아이에게 엄마가 “내 아들 지성아!”“내 딸 가람아!”“내 아들 주언아!”라고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ⅱ) 2절의 “네 노역의 때가 끝났고 죄악이 사함을 받았다.” 즉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이 되고 죄 사함을 받았다는 선포입니다. 하나님이 포로에서 돌이키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누군가가 죄 값을 넉넉히 지불해서 사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대속의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2) 세 가지 소리를 통한 약속
이어서 메시아의 오심에 대하여 분명히 말씀하시고, 그분이 하실 일에 대하여 세 가지를 약속하고 계십니다.
ⅰ) 3절에서 한 소리가 마치 뮤지컬의 배경음악처럼 외칩니다.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고 평탄케 하라.”고 합니다. 골짜기는 높이고 산과 언덕은 낮추고 가파른 것은 고르게 하고 울퉁불퉁한 곳은 평지로 만들라고 합니다. 실제로 신약에서 세례요한이 외쳤던 소리였지요.(마3:3)
그런데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는 이 말씀은 실은 하나님이 친히 길을 내신다는 약속이 담겨 있는 말씀입니다. 이사야 43장 19절은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여기에 더하여 하나님을 깊이 만나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을 평탄케 해야 한다는 말씀으로도 묵상해 보았습니다. 교만이나 열등감보다는 겸손하고 가난한 마음, 자족하는 마음을 가질 때 우리는 위로의 하나님을 깊이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ⅱ) 6절에서 말하는 자의 소리가 외치라고 명령합니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하라고. 여기서 이 백성을 문맥상 바벨론 백성으로 해석하기도 하나 저는 모든 육체, 모든 인생으로 확대 해석하는 것이 보다 포괄적인 해석이라고 봅니다.
6절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핵심이 일시적이고 연약한 인간의 한계성과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대조하는 데 굳이 바벨론으로 축소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다윗은 시편 103편 15~17절에서 “인생은 그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가면 없어지나니 그 있던 자리도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리니”라며 하나님의 인자와 의를 인간의 한계성과 대비한 바 있습니다. 다윗이 말한 인생은 당연히 모든 인생이지요.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 말씀이 곧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태초에 계신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며 예수 그리스도가 곧 영원한 말씀이심을 강조하셨죠. 그런 점에서 6절은 복음을 통한 위로를 강조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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