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엔 눈멀고, 기이한 법엔 눈 열고 / 이영복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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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im 작성일25-12-22 12:33 조회114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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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엔 눈멀고, 기이한 법엔 눈 열고
이영복 장로(본회 사무국장)
“나의 사랑 너는 순전히 어여뻐서 아무 흠이 없구나.”(아4:7)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시119:18)
1. 딸에게 보낸 편지
가을이 깊어가는 늦가을, 감사의 계절이고 그리움의 계절입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편지를 쓰고 싶은 계절이지요. 편지 한 장을 읽어드리고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작년 11월 이맘 때 한국에 와서 한 달 반 동안 머물다가 미국으로 돌아가는 딸에게 제가 써서 인천공항에서 손에 쥐어준 편지입니다. 일부를 발췌하여 읽겠습니다.
딸과 보낸 가을
달포.
올가을 딸과 함께 보낸 시간이다.
하루 남짓처럼 짧아서 아쉽고
1년은 족히 지난 듯 길어서 고마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별.
딸과의 이별은 손 흔들며 하는 것 같아도
실은 가슴으로 하는 것임을 나는 일찍부터 알았다.
잘 가라 흔들던 두 손을 이내 모아 잡는 것이라는 것도
오래전부터 알았다.
여섯 살 딸이
내가 홍콩으로 부임하기 전 중국어를 배우러
먼저 북경으로 떠나던 날,
공항에서 이별하던 모습을 떠올려본다.
손을 흔들고 눈물을 주룩 흘리며 환한 웃음으로
아빠를 끝까지 바라보던 딸아이의 심성이 부럽다.
딸이 살아온 36년 동안 아빠에게 있어 가장 많이 늙은 것이
가슴이라는 생각에 부끄럽다.
홍콩으로 이사하기 전
추수감사주일에 교회당에서
옥수수를 잔뜩 담은 바구니를 하나님께 드리며
"옥수수를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속삭이듯 말하던 여섯 살 어린 너도,
BTS 진의 슈퍼참치를 신나게 따라 부르는
어릴 적 아빠의 나이가 된 너도,
아빠는 너의 존재 자체에 대해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단풍보다 고운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낸
멋진 가을이었다.
낙엽보다 여린 딸과 함께 떠나보낸
아름다운 가을이었다.
2024. 11. 19. 소온
다비다 자매 여러분, 딸 바보 아빠, 다른 말로 표현하면 딸 사랑에 눈먼 아빠의 편지인데 공감이 가나요?
오늘 말씀을 나눌 제목은 ‘사랑엔 눈멀고, 기이한 법엔 눈 열고’인데 다비다 영성이 되고 감사의 이유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정했습니다.
2. 사랑엔 눈멀고
먼저 ‘사랑엔 눈멀고’입니다. 지난 가을 캠프파이어를 하면서 우리가 피워야 할 영혼의 불꽃, 첫 번째가 사랑의 불꽃이라고 하면서 나눴던 성경 말씀을 기억하시나요? 오늘 본문 중 하나인 아가서 4장 7절, “나의 사랑 너는 순전히 어여뻐서 아무 흠이 없구나.”입니다. 여기서 나는 솔로몬이고 너는 술람미 여인이죠. 그런데 팩트는 어떻습니까? 신분적으로는 결코 사랑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는 왕과 아마도 소작농의 딸 사이였잖아요. 더욱이 술람미 여인은 포도원에서 일하느라 햇볕에 타서 검게 그을린 얼굴이었지요. 그러기에 아가서 4장 7절은 사랑에 눈멀었을 때 나올 법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에 눈이 먼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상대의 조건이나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는, 단점은 보이지 않고 장점만 보이는, 그래서 사람을 보는 눈이 멀었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아가서 4장 7절을 포함하여 아가서는 신랑이 되시는 하나님이 신부된 교회를 사랑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지요. 그렇게 사랑에 눈먼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무분별하게 눈이 먼 게 아니라 시시비비를 알면서도 눈감아주는 분이니까요.
로마서 3장 25~26절을 보십시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간과라는 단어에 주목해봅시다. 눈감아 주시고 그냥 모른 체 하신다는 의미지요.
진정으로 사랑에 눈먼 자는 무엇보다도 생명을 살리는 선택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기꺼이 내어주시고 우리의 생명을 살리는 선택을 하셨습니다. 하나님 사랑의 절정이 당신의 목숨 같은 아들의 생명을 내어주시기까지 한 십자가 사랑입니다.
성경은 언약(베리트, covenant)의 책입니다. 언약의 히브리어 베리트는 “자르다.”"끊어버리다.”는 의미입니다. 창세기 15장을 보면 이 베리트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짝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아와서 고기를 갈라 쪼개어 길을 만들어 양편에 두라하고 그 사이로 혼자 지나가시면서 언약을 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횃불언약입니다. 당시 계약을 어길 시 서로의 목숨을 담보로 한 통상적인 언약처럼 아브라함과 함께 그 사이를 걸으신 것이 아니라 그 사이를 홀로 지나가신 언약이었죠. 창세기 15:7~8의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이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증거 제시로 쪼갠 고기(베리트) 그 사이를 홀로 지나가신 하나님에게서 우리는 눈먼 사랑의 면모를 엿볼 수 있습니다.
즉, 언약을 깨면 깬 사람이 죽어야 하는데 하나님은 언약을 어기지 않고 인간이 어기니 인간이 죽는 것이 마땅한데, 하나님이 대신 죽으신 것이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의 목숨을 내어주시기까지, 즉 당신의 전부를 걸어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 정도로 우리를 향한 사랑에 눈이 머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사랑에 항복하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부어지기로 구해야 합니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로마서 5장 5절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4장 19~20절을 보십시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3. 기이한 법엔 눈 열고
앞서 나누었던 아가서 4장 7절은 신부 사랑에 눈먼 신랑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그렇게 보아주는 게 아니라, 실제로 흠이 없이 아름다운 존재가 되는 영적 비밀이 그 앞 6절에 담겨 있습니다.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질 때까지 나는 몰약의 산을, 유향의 언덕을 오르겠습니다.” 즉 몰약의 산이나 유향의 언덕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상징하지요. 영의 눈이 열리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흠이 없는 신부, 곧 나를 보고 너를 볼 수 있게 됩니다.
시편 119편 18절을 다시 읽어보십시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성경을 읽으며 단순히 세상을 살아가는 규범이나 지침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신비, 구속의 비밀을 드러내는 ‘기이한 일’을 찾아내는 영적 눈이 열리게 해달라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제가 1986년에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4년에 걸쳐 성경 전체를 묵상하는 기도로 삼았답니다. 누가복음 24장 27절을 보십시다. 엠마오 길에서 만난 제자에게 예수님이 하신 일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즉 율법과 예언서, 그리고 시편에 이르기까지 모든 말씀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될 구원의 비밀을 드러낸 것이라는 것을 명확히 기록한 구절입니다.
"이하는 붙임 파일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