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받은 위로자(사40:1~9) / 김혜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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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im 작성일19-04-17 12:14 조회18,85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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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받은 위로자(사40:1~9)
김혜란 목사(다비다자매회 회장)
1. 들어가는 말
지난 달 다비다 창립25주년 행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확인하고 새롭게 경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짧지 않은 25년이라는 세월을 기점으로 지난 시간을 정리하고 새로운 25년을 향해 나아가는 하나의 굵은 획을 긋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여겨집니다.
그 가운데 제 뇌리에서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는 것은 바로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시와 노래, 그리고 워십댄스였습니다. 큰 감동이 남겨준 여음(餘音)과 잔상(殘像)으로 또렷이 내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다비다에게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주시는 음성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이사야 40장 1~9절 말씀을 본문으로 하여 ‘위로받은 위로자’라는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2. 위로가 필요한 백성
성경은 구약 39권, 신약 27권 등 총 66권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사야서는 모두 66장입니다. 이사야서를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 부분 1장~39장까지는 구약의 39권과 같고, 둘째 부분 40장~66장은 신약의 27권과 같아서 이사야서는 신구약 성경의 구조를 연상케 합니다. 내용 또한 구약과 신약을 연상케 합니다.
첫째 부분 1장~39장은 이스라엘 역사와 메시아의 필요성, 이스라엘 백성이 죄로 인한 여러 가지 심판, 징계 등 고통스런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부분의 첫 장인 40장에 들어서면서 마치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가는 것처럼 반전이 됩니다. 메시아의 출현, 회복의 약속, 이스라엘의 찬란한 미래가 66장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부분인 40장부터 스물일곱 장을 ‘구약 속에 있는 신약’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문체와 내용이 그전 39장까지와는 너무 달라지기 때문에 ‘제2이사야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사야서 첫 부분인 1장부터 39장까지 보면 하나님은 ‘내 하나님’ 같지가 않습니다. 또 하나님 관점에서 보면 ‘내 백성’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음란하고 하나님을 멀리 떠난 죄 때문에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는 심판과 분노와 저주의 관계였습니다. 그렇지만 40장에 들어오면서부터 39장과는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이렇게 이사야 40장이 시작이 됩니다.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면서 절망 가운데 빠져 희망이 없는 백성들에게 찾아가서 “하나님은 너의 하나님이고 이스라엘은 나의 백성이다.”라는 사실을 전하고 위로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나라에 포로로 잡혀가게 하시는 심판으로 이스라엘을 벌하셨으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용서를 예비하셨고 구속의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의 "위로한다."는 동사는 "다시 숨쉬게 한다."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숨이 막히고 기가 막히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다시 숨을 내쉬고 소생할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을 말합니다.
3. 위로자 되시는 하나님
성경에는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라는 말씀이 여러 곳에 있습니다. 이사야 51장 12절에는 “이르시되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 곧 나이니라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 같이 될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하느냐”, “사람들을 겁내어서 불안해하지 말고, 너희를 위로할 자는 나 여호와 밖에 또 누가 있겠느냐? 나를 의지하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66장 13절에 보면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제2이사야서의 메시지는 40장 처음부터 66장 끝까지 위로하라는 테마로 전개되어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하시는 하나님.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우리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지난 1월 창립행사 때 뮤지컬에서 안무로 표현한 이영복 장로님의 노래 가사는 이사야 40장, 42장을 묵상하며 쓴 시라고 합니다.
하얀 서리 한 올 두 올, 작은 꽃잎 덮을 때
소슬 바람 불어 와서 여린 풀이 시든다.
마른 갈대 바람 끝에 떨며 흔들거리는
아, 인생이란 들풀의 짧은 노래
꽃은 시들고 풀은 마르나 주의 말씀 영원하리.
상처 입은 치유자의 숨결, 온 백성을 살리리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풀과 같은 내 백성을.
상한 갈대 손에 손 잡고 순백의 춤 출 그날까지
이사야 42장 3절에서 하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40장 1절에서 고난 중에 있는 연약한 당신의 백성을 위로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친히 상처입은 치유자가 되셨습니다.
여러분, 바벨론의 포로생활 중에 있는 유대백성에게만 위로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예배드리는 우리에게도 위로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 있는 사람 중에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4. 우리에게 진정한 위로란 무엇입니까?
이사야 40장 2절을 봅시다.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첫째는 노역의 때가 끝났고, 둘째는 죄악이 사함이 입었다는 것입니다. 이 메시지를 희망을 잃고 공포와 절망 중에 있는 내 백성에게 전하라는 것입니다. ‘노역의 때가 끝났다’는 것은 심판의 때가 끝났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고달프고 외롭고 힘든 포로 생활이 끝났다는 것입니다. 이제 너는 더 이상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 은혜와 사랑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위로는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내가 네 죄를 사하여 주고, 너를 죄로부터 자유하게 해주고, 해방을 얻게 해 준다.”는 선언을 듣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 사함을 받고 죄로부터 자유를 얻기에 위로를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5. 우리의 소명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는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 9절을 함께 봅시다.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하나님께서는 이 놀라운 소식을 소리 높여 전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남태평양에 있는 괌이라는 섬에는 1945년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으나 그 소식을 듣지 못해 1972년 한 주민에게 발견되기까지 28년간 숨어 살았던 요코이 동굴이 있습니다. 전쟁은 끝났는데 그 사람은 소식을 듣지 못해 그 공포와 죽음을 피해 동굴에서 도피의 생활을 계속했던 것입니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물론 믿는다 하면서도,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죄책감 속에서 어두움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죄책감으로 인하여 육체도 병들고, 가정도 파괴되고, 삶을 포기하는 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죄책감이 지나치면 인격이 망가지고 정신병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또한 자살이라는 최후의 방법을 쓰기도 합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에도 이 기쁜 복음의 소식을 들었으면서도 아직도 죄책감으로 시달리고 계신 분이 계시다면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소식을 믿음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25년 전 다비다자매회를 시작할 때 하나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 3~4절 말씀입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다비다가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슬픔과 외로움, 상처, 삶의 무거운 짐에 지쳐 있는 싱글맘들을 위로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위로를 하겠습니까? 저나 여러분에게는 아무 힘이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은 경청해 주고 공감해 줄 뿐 정작 도울 수 있는 힘이 없음이 너무나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위로를 받아 아름다운 구슬들로 변화된 사랑스런 주님의 보물들입니다. 우리는 위로받은 위로자들입니다. 그러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은 위로 받은 우리가 위로자가 되어 여전히 희망을 잃고 불안해하며 고통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찾아가서 그들에게 참된 위로자 되시는 주님을 소개하고 이젠 죄 사함을 받았으니 자유하라. 기뻐하라고 외치라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스물다섯 살로 성장한 다비다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