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 (김혜란 회장)
페이지 정보
작성자 sooner 작성일08-10-04 08:39 조회26,628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
김혜란 회장
사랑하는 자매님들.
제게는 한 달에 한 번 자매님들을 만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자매님들과의 만남을 위해 사는 것 같습니다. 제 삶에서 가장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자매님들입니다.
그러나 자매님을 잘 섬기기엔 늘 부족하기 짝이 없다는 안타까움이 있어 주님께 기도할 뿐입니다.
주님 앞에서 오늘도 저의 삶을 반성해 봅니다.
우리 주님의 삶은 철저히 고통으로 얼룩진 생애였는데 저의 삶은 어찌 그리 편안함으로 엮어졌는지 ...
지난 세월의 숫자만 헤아리며 ‘안주’라는 단어에 길들여져 언제인가부터 새로운 도전이란 생각도 못하고 있습니다.
정기모임을 마친 후 집에 돌아오는 날이면, 몸은 피곤하여 지쳤으나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는 날이 많습니다. 어느 날은 벅찬 감사와 기쁨으로, 또 어느 날은 아픔과 괴로움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곤 합니다.
오늘도 자매님 한 분 한 분의 아픔과 고통이 눈에 보입니다.
자신의 문제로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싶지 않아 혼자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입가에 씁쓸한 웃음을 담고 조용히 앉아 있던 자매의 얼굴이 아른거립니다.
우리의 고통의 많은 부분은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보다 고통 중에서 느끼는 우리의 고립감에서 비롯됩니다.
이들의 문제는 외로움입니다. 조금만 들어주고, 조금만 보호해주고, 조금만 손 잡아주면 일어 설 수 있는데....
현실적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이젠 “각자 알아서 살아라”고, 이곳 까지 왔는데 또 그냥 어디로 가라고 저들을 밖으로 내치듯 돌려보내는 것은 아닌지....
주님은 열 두해 동안 병에 시달려 핏기 없는 얼굴, 냄새나는 옷, 꿈도, 자존심도 다 버린 상처뿐인 여인을 만나주셨습니다.
사람들 앞에 나서기 두려워하는 그래서 들킬까봐 예수님의 등 뒤에서 살짝 옷자락만 만진 여인에게 오죽하면 옷자락만 잡았겠나! 거절하지 않고 사랑과 애정의 눈으로 바라보시고 치유하셨던 우리 주님.
이 여인들! 고통과 아픔, 고독하고 지친 여인들, 주의 옷자락만이라도 만지고자 찾아온 이 여인들을 받아주소서.
주님! 당신이 고난을 당하셨기에 진정 우리 삶의 고통을 이해하고 사랑으로 나누십니다.
한 때 주님께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 따지듯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너 자신을 위해서 뿐 아니라, 남을 위한 고난이기도 하다.”고 깨우쳐 주셨습니다.
내가 가난해 보지 않고, 내가 절망해 보지 않고, 배척당하고, 소외당하고, 절망 해 보지 않고, 신앙의 의혹과 갈등을 해 보지 않고 어떻게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헤아리고, 세워줄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언제나 상처와 아픔과 갈등을 통해 치유자로, 위로자로 그리고 믿음을 세워주는 자로 삼으십니다.
참으로 고통 속에서 사랑은 피어나는가 봅니다.
진정으로 남의 고통을 알고 이해하고 나누는 것이 사랑인가 봅니다.
우리의 상처가 곧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고 합니다. 나의 상처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말이지요.
자매님들, 우리의 상처도 누군가에게 값진 선물일 수 있음을 기억해 주세요.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을 다른 이들에게 털어놓고 그들이 진실로 자기의 말을 들어주는 것을 알게 될 때, 비로소 진정한 위안을 느낍니다.
아픔을 아는 자들끼리 아픔을 함께 나누는 것이 소중한 것은 내가 더 이상 홀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와 함께 이해받고 이해하는, “연약함 안에서의 교제”를 새롭게 경험하기 시작할 때, 슬픔의 한가운데서 참 기쁨이 솟아날 수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서로’를 주신 것은 서로 사랑의 공동체를 아름답게 이루어 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자매님들, 이곳 다비다자매회로 인해 우리는 이젠 상처라는 말이 정겹게 느껴지길 기도합니다. 오늘도 우리가 오직 주님을 닮는 사랑으로 살아가길 기도합니다.
김혜란 회장
사랑하는 자매님들.
제게는 한 달에 한 번 자매님들을 만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자매님들과의 만남을 위해 사는 것 같습니다. 제 삶에서 가장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자매님들입니다.
그러나 자매님을 잘 섬기기엔 늘 부족하기 짝이 없다는 안타까움이 있어 주님께 기도할 뿐입니다.
주님 앞에서 오늘도 저의 삶을 반성해 봅니다.
우리 주님의 삶은 철저히 고통으로 얼룩진 생애였는데 저의 삶은 어찌 그리 편안함으로 엮어졌는지 ...
지난 세월의 숫자만 헤아리며 ‘안주’라는 단어에 길들여져 언제인가부터 새로운 도전이란 생각도 못하고 있습니다.
정기모임을 마친 후 집에 돌아오는 날이면, 몸은 피곤하여 지쳤으나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는 날이 많습니다. 어느 날은 벅찬 감사와 기쁨으로, 또 어느 날은 아픔과 괴로움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곤 합니다.
오늘도 자매님 한 분 한 분의 아픔과 고통이 눈에 보입니다.
자신의 문제로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싶지 않아 혼자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입가에 씁쓸한 웃음을 담고 조용히 앉아 있던 자매의 얼굴이 아른거립니다.
우리의 고통의 많은 부분은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보다 고통 중에서 느끼는 우리의 고립감에서 비롯됩니다.
이들의 문제는 외로움입니다. 조금만 들어주고, 조금만 보호해주고, 조금만 손 잡아주면 일어 설 수 있는데....
현실적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이젠 “각자 알아서 살아라”고, 이곳 까지 왔는데 또 그냥 어디로 가라고 저들을 밖으로 내치듯 돌려보내는 것은 아닌지....
주님은 열 두해 동안 병에 시달려 핏기 없는 얼굴, 냄새나는 옷, 꿈도, 자존심도 다 버린 상처뿐인 여인을 만나주셨습니다.
사람들 앞에 나서기 두려워하는 그래서 들킬까봐 예수님의 등 뒤에서 살짝 옷자락만 만진 여인에게 오죽하면 옷자락만 잡았겠나! 거절하지 않고 사랑과 애정의 눈으로 바라보시고 치유하셨던 우리 주님.
이 여인들! 고통과 아픔, 고독하고 지친 여인들, 주의 옷자락만이라도 만지고자 찾아온 이 여인들을 받아주소서.
주님! 당신이 고난을 당하셨기에 진정 우리 삶의 고통을 이해하고 사랑으로 나누십니다.
한 때 주님께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 따지듯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너 자신을 위해서 뿐 아니라, 남을 위한 고난이기도 하다.”고 깨우쳐 주셨습니다.
내가 가난해 보지 않고, 내가 절망해 보지 않고, 배척당하고, 소외당하고, 절망 해 보지 않고, 신앙의 의혹과 갈등을 해 보지 않고 어떻게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헤아리고, 세워줄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언제나 상처와 아픔과 갈등을 통해 치유자로, 위로자로 그리고 믿음을 세워주는 자로 삼으십니다.
참으로 고통 속에서 사랑은 피어나는가 봅니다.
진정으로 남의 고통을 알고 이해하고 나누는 것이 사랑인가 봅니다.
우리의 상처가 곧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고 합니다. 나의 상처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말이지요.
자매님들, 우리의 상처도 누군가에게 값진 선물일 수 있음을 기억해 주세요.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을 다른 이들에게 털어놓고 그들이 진실로 자기의 말을 들어주는 것을 알게 될 때, 비로소 진정한 위안을 느낍니다.
아픔을 아는 자들끼리 아픔을 함께 나누는 것이 소중한 것은 내가 더 이상 홀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와 함께 이해받고 이해하는, “연약함 안에서의 교제”를 새롭게 경험하기 시작할 때, 슬픔의 한가운데서 참 기쁨이 솟아날 수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서로’를 주신 것은 서로 사랑의 공동체를 아름답게 이루어 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자매님들, 이곳 다비다자매회로 인해 우리는 이젠 상처라는 말이 정겹게 느껴지길 기도합니다. 오늘도 우리가 오직 주님을 닮는 사랑으로 살아가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