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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양의 문이며 선한 목자라(요10:7~18) / 이주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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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im 작성일25-07-15 10:25 조회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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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양의 문이며 선한 목자라(10:7~18)

 

이주은 목사(본회 회장)

 

202563일은 21대 대통령 선거일입니다. 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은 저마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하겠습니다.”라는 공약을 많이 내세우지만 그 공약들이 과연 국민들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대통령이 되기 위한 입에 발린 소리인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무튼 대통령이 잘 뽑혀서 이 나라에 샬롬이 임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으로 설교 준비를 하면서 리더의 자격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함부로 리더의 자리에 앉으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 크든 작든 공동체를 이끌고 가는 리더는 자기 욕심이나 자기를 위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공동체를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예수님처럼 자기 목숨보다는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공동체를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는 것이 진정한 리더라는 것이지요. 한 나라의 수장인 대통령은 더욱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임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저 또한 다비다자매회의 리더로서 회원들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마음이 있는가 하는 자문을 해보니 좀 착잡한 마음이 드네요. 주님이 내 마음 안에 그 마음을 심어주지 않으면 그 마음도 가질 수 없기에 다시 한 번 연약한 저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합니다.

오늘 말씀은 요한복음에 나오는 주님의 세 번째 선언인 나는 양의 문이라’, 네 번째 선언인 나는 선한 목자라는 말씀을 가지고 주님과 나와의 관계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주님처럼 나는 ~이다.’라고 자신을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양의 특징

 

성경 여러 곳에서 주님은 많은 동물 중에서 유독 양이라는 동물을 택해서 우리에게 비유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목자시며 우리는 그의 양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먼저 양의 특징에 대하여 알아볼까요?

양은 시력이 나빠서(마이너스 10디옵터) 1~2미터밖에 볼 수 없을 정도로 길눈이 어둡습니다. 길눈이 어두우니 방향 감각이 거의 제로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눈앞에 보이는 것을 목자로 착각하고 좇아갑니다. 또한 머리도 나쁠 뿐만 아니라 방어본능마저 떨어지며 잘 속는 속성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리가 튼튼하지 않아 잘 넘어지며 달리는 속도가 느려 맹수에게 잡아먹히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넘어지면 못 일어나기 때문에 목자가 일으켜주어야 하며, 방어력이 제로여서 지켜주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양은 온순한 것 같지만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여서 자식이 젖 달라고 해도 자기 먹이를 찾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멋대로 가버린다고 합니다. 귀소본능이 있고 죽음 앞에서는 온순하여진다고 합니다.

즉 양은 연약할 뿐 아니라 자기를 보호할 그 어떤 수단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양에게 있어서 제일 필요한 존재는 다름 아닌 목자입니다. 그런데 이런 양에게 장점이 있습니다. 양은 발달된 청력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의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자신의 목자를 따라 움직인다고 하네요. 저는 가끔 생각해보는데 시력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얼마나 답답할까?”라는 생각이 들면 참 마음이 힘듭니다. 오늘 말씀에서 양이 청력이 발달한 것처럼 시력이 없는 사람들은 우리들이 듣지 못하는 마음의 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니 조금 안심이 되네요.

이사야 536절을 볼까요?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인간을 양에 비유했는데 그럼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요? 우리는 하나님의 길을 떠나 죄 속에서 헤매며 영혼의 위험을 알지 못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존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강한 척하고 살지만 사실 자신이 얼마나 무력하고 약하다는 것을 혼자 있을 때 잘 압니다. 주님은 그러한 모든 연약함을 가지고 있는 양과 같은 존재들을 위해서 우리 인생의 생명의 길이 되고 가이드가 되어 주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오늘 말씀에 주님은 양의 문이며 너희를 인도하는 선한 목자라며 자신을 믿고 따라 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런 주님의 사랑의 마음을 헤아렸으면 좋겠고 그런 주님의 음성을 잘 듣고 잘 따라가는 양들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나는 양의 문이다.

 

요한복음 9장에는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예수님이 안식일에 고쳐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는지 궁금해 묻습니다. 그 사람은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911)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전에 맹인이었던 그 사람을 바리새인들 앞에 데리고 갔는데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눈을 떴다고 하여 눈 뜬 사람을 공동체로부터 출교시키기 위해 갖은 애를 씁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예수님은 화가 나셨습니다. 예수님은 맹인이었던 자에게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939)라고 말씀하시고, 바리새인들에게는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94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지 못하는맹인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반응했지만, ‘본다고 하는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101~2)고 하시며 절도와 강도, 그리고 양의 목자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본다고 하는 자들이지만 영적으로 눈이 어두운 자들아 깨달으라.”고 바리새인들과 영적 지도자들을 향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영혼을 훔쳐가는 도둑들이 너무 많다는 것에 화가 나셨습니다. 하나님나라에 못 가게 막는 도둑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문을 통과하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들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7절에서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고 하시며 오직 양들이 드나들 수 있는 문은 예수님 한 분뿐이라고 선포하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에 예수님은 양의 문이라고도 하고 양의 목자라고도 하는데 조금 이해가 안 가시죠? 먼저 양의 문이라고 하는 배경을 살펴볼까요? 예수님이 살고 있었던 그 당시에는 팔레스타인에는 풀이 적고 물도 적었습니다. 목자들이 풀을 찾으러 계속 여기저기 다니기 때문에 양의 우리는 자주 바뀝니다. 돌을 주어다가 쌓아서 벽을 쌓고 문 부분에는 목자가 눕고 양들을 지켜줍니다. 밤새도록 앉거나 누워서 들여보내거나 막는 문의 역할을 담당합니다. 양은 들여보내고 도둑은 막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국 가는 문은 오직 예수님 외에는 없다는 의미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천국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의 천국으로 인도하는 가짜 목자들을 도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하나님 말씀을 잘 알고 하나님 말씀을 잘 지키며 살고 있다고 착각하는 가짜 목자들에게 힘주어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내 양이 되어라.”

요즘은 이단은 이단이라고 쉽게 판단되지만 더 위험한 것은 정통교회 속에 세상이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 돈이 우상이 된 맘몬신이 교회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지요. 따지지도 않고 열심히 믿기만 하면 복을 받을 것이라는 우리의 맹목적인 신앙 또한 더 문제입니다. 이 세상에서 잘 사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지면 안 되고, 우리 영혼의 생명이신 예수님이 살아 숨쉬는 나 자신이 되어야 하고 우리의 신앙생활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열심히 하니까 하나님이 좋은 삶을 주시겠지?” 하는 생각으로 예배에 참석하고 기도회에 참석하고 봉사하시지는 않으신지요? 신앙생활은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양의 문이시며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삶 가운데서 관계 속에서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신 예수님과 깊은 사랑의 관계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나는 선한 목자다.

 

구약 에스겔 34장은 요한복음 10장의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34장은 거짓 목자를 고발하는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에스겔서 3423~24절을 읽어 볼까요?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바벨론에 의해 나라를 잃은 암울함과 짙은 패배 의식에 절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은 보고 계셨습니다. 목자라고 세워놓은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삯꾼들입니다. 자기들의 배만 채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외면치 않고 내가 직접 너희의 목자가 되어주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2의 다윗의 모습으로 오시는 메시아를 보내신다고 약속을 하고 계십니다. 드디어 우리의 구원자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죄 많은 세상에서 너를 구원하고 더 풍성히 누리게 하려고 내가 왔다. 나는 삯꾼이 아니라 선한 목자이니 나를 믿고 따라오너라.” 이 얼마나 위안이 되고 안심이 되는 말씀입니까?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양들은 시력이 좋지 않아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갑니다.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갈 정도면 목자와 양의 관계가 긴밀한 관계였을 것입니다. 11절에 보면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아주 충격적인 자신의 소개입니다.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목자’, 이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이 있을까요?

 

 

"이하 붙임 파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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