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음과 찾음 / 이영복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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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09-04 16:24 조회28,87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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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음과 찾음(눅15:1-7)
이영복(다비다자매회이사장)
□ 효율성을 중시하는 경제학을 공부한 저로서는 정말 이해가 안 되는 성경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누가복음 15장 1∼7절 말씀, 곧 아흔아홉 마리 양을 들에 두고 한 마리 잃은 양을 찾는 이야기였습니다. 99/100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위험에 노출된 상황에서 1/100에 올인을 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생각에서였지요. 잃은 양을 찾는 이야기에 이어진 10개 은전 중 잃어버린 하나를 구석구석 찾는 이야기나 집 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이야기는 올인 대상의 가중치가 1/10, 1/2로 낮아진 것이라는 점에서 효율성을 따지는 저 같은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배려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지만 그것으로도 양에 차지 않았습니다. 본문 말씀 가운데 담겨 있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깨닫기까지는 많은 시간들이 걸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 깨우쳐줄 때까지 그랬습니다.
1990년 5월 17일, 한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저는 회사원을 대상으로 무역협회가 개설한 ‘무역실무과정’에서 강의를 하면서 고장이 난 마이크와 “그것도 강의라고 하느냐!”라는 수강생의 항의로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저는 강의날짜가 아직 일주일이나 남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허황된 꿈을 꾼 것이라 생각하며 출근했습니다.
그런데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무역협회 연수담당자로부터 전화가 온 것입니다. 그 날 강의키로 한 교수가 사정이 생겼다며 날짜를 앞당겨 강의해 줄 수 없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머리털이 쭈뼛 서는 것 같았습니다. 간밤의 꿈이 좀 마음에 걸렸지만 꿈자리가 좋지 않아 못하겠다고 할 수도 없어 그렇게 하기로 하고 저녁에 무역협회 강의실로 갔습니다. 그런데 제게 전화를 했던 연수담당자가 마이크를 만지며 “이상하다. 조금 전까지도 괜찮았는데...” 하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습니다. 마이크가 고장 난 것이었습니다. 신경이 쓰이는 것은 꿈에서 본 수강생의 항의 장면이었습니다. 세 시간의 강의 도중 잠시 휴식시간을 갖고 다시 강단에 선 저는 교탁 위에 놓인 쪽지 한 장을 발견했습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라는 생각으로 쪽지를 펼쳐 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항의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수강생들이 따로 공부할 시간이 별로 없을 직장인들이기에 모든 강의가 끝난 후 있을 평가 대비 예상문제를 미리 알려주겠다고 한 것에 대한 항의였습니다. “저는 평가에 대비한 예상문제를 아는 것보다 알차게 강의를 듣는 것이 더 소중하다고 봅니다. 그러니 미리 예상문제를 알려주는 것은 재고해 주십시오. 성경에는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지요?” 바로 누가복음 15장의 잃은 양 이야기였습니다.
수강생들에 꿈 이야기 등 제게 일어난 전후 사정을 얘기하고 99명이 아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겠다며 양해를 구했더니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해 강의를 했습니다.
그 쪽지는 잃어버린 자, 소외된 자를 향한 하나님의 지독한 편애가 어떤지를 피부로 실감케 하며, 그들을 찾아 치유하고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라는, 하나님이 제게 주신 소명의 쪽지였습니다. 아울러 그로 인한 기쁨이 얼마나 큰 지 제대로 알려주고 싶어 하신 주님께서 저를 위해 준비하신 각본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 다음으로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이 회복의 기쁨입니다. 잃은 것을 찾았던 경험이 있지요? 잃은 것을 찾은 것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닌 원상복구인데 어쩌면 그렇게도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창세기 1∼2장에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창조의 마지막에 사람을 지으시고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지요. 3장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후 하나님께서 좀처럼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15장은 하나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시는 모습을 연상케 해줍니다. 바로 잃은 자를 찾는 기쁨이지요. 눅15:7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1990년대 중반 산동대학에서 한 중국 대학생에게 전도를 하며 경험한 일입니다. 한 학생에게 다가가 복음을 전했더니 자신은 무신론자라며 예수님을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당신이 말하는 예수와 내가 아는 예수는 전혀 다르다.”고 했습니다. 자리를 뜨려는데 하나님께서 제가 꾸었던 꿈 이야기를 해보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꿈 이야기와 함께 누가복음 15장의 잃은 양을 찾는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갑작스런 변화를 보인 것이었지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죄인이요 바로 그 잃은 양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볼펜을 꺼내 노트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불과 2분여 만에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라며 다음과 같은 시를 완성하였습니다. 중국어로 쓴 것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주님 내 맘에 오셔서/ 화평과 안녕을 주셨네/ 내 맘 문 활짝 열고서/ 새 생명을 영접했네/ 저 푸른 산봉우리는/ 간증의 시작이요/ 마음 깊은 곳에선/ 주님 음성 감동으로 솟아오르네/ 나의 삶, 생명이제로 영원하리”
그가 시를 써서 건네준 쪽지는 그 몇 해 전 잃은 양의 비유를 담은 항의 쪽지와 오버랩 되며 제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누가복음 15장의 잃은 양의 이야기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심정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하신다. 선교는 하나님이 하신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에 너도 동참하라.”
□ 누가복음 15장에는 3개의 비유가 들어 있는데 실은 같은 내용을 다르게 표현한 하나의 비유라는 데 주목해야 합니다. 어느 비유든 주인공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것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며 찾고야만 주인이라는 것이지요.
즉 엄격히 말하자면 한 마리 잃은 양의 비유가 아니고, 잃어버린 은전 비유가 아니고, 탕자의 비유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필코 안 마리 잃은 양을 찾아낸 주인이야기요, 기어코 잃어버린 은전을 찾아낸 주인이야기요, 긴 시간 아들을 기다리고 맞이한 아버지의 이야기라는 것이지요. 바로 “생명을 구원해주시는 예수님”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잃은 것과 찾는 자에 대한 이야기를 묵상하는 제게 하나님께서 결코 놓치지 말라며 가르쳐주신 두 단어가 ‘생명’과 ‘주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다비다자매 여러분, 다비다자매회에는 생명이 있습니까? 다비다자매회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다비다자매회에 효율성 때문에 생명을 놓치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주인이 되는 다비다자매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생명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이 날마다 있으시길 기도합니다. 나아가 잃은 것을 찾는 하나님의 기쁨에 참여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