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수의 강으로 / 이영복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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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im 작성일18-08-17 12:08 조회19,41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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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수의 강으로(요7:37~38)
이영복 장로(본회 사무국장)
1. 세상의 강가에서 생명의 강가로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저는 초등학교 때 소월의 시에 곡을 붙인 ‘엄마야 누나야’란 동요를 나름 분위기 잡고 부르곤 했습니다. 애달픈 곡조에다 “왜 아빠는 없지?”라는 생각에 마음이 울적해졌었지요. 33세로 인생을 마감한 소월의 시어(詩語)들이 눈물겹게 아름다운 만큼 그의 삶은 역설적으로 곤고했다는 것을 이 시도 잘 보여주는데, 어쨌든 이 노래 덕분에 싱글맘들을 향한 애틋한 마음이 어릴 적부터 생긴 것 같습니다.
창 밖에 비바람 불 때면 내 마음 나래달고
정든 님 손잡고 거닐던 강가를 헤맨다.
그리운 내 님이여 내 너와 떠나던 날
말없이 강변에 앉아서 강물만 보았지.
은희라는 가수가 부른 ‘회상’이란 노래가사입니다. 외국 번안곡이지요. 1987년에 개봉된 영화 ‘기쁜 우리 젊은 날’에서 남자 주인공(안성기)과 여자 주인공(황신혜)이 함께 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떠난 님을 그리워하는 강가의 회상이 30대의 제 마음속에 그 영화의 끝 장면처럼 찡한 정서로 자리 잡았었지요.
저 생명 강가에서 나 영광에 싸여
나 주의 귀한 얼굴 뵈오리.
주는 저 산 밑의 백합 빛나는 새벽별
이 땅위에 비길 것이 없어라.
그런데 그런 세상의 강은 제가 하나님을 깊이 만나게 되면서 주님이 주시는 생수의 강 속에 다 잠기게 되었습니다. 생명의 강가로 나가면 세상의 강가는 비길 곳이 없습니다. 생명의 강가가 어떠한지를 잘 묘사해주는 성경구절을 소개합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본 생명의 강에 대한 환상입니다.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겔 47:12) 성전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회복과 은혜의 상징입니다. 온 세상을 회복시키는 구원과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은혜의 강물을 흘려보내 주셔야 이 땅이 구원과 회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생수의 강이 내게서 흐르네, 저는 자 걷고 눈먼 자 보겠네.
옥문 열고 갇힌 자 푸시는 생수의 강이 내게 흘러 넘치네.
우물물아 솟아나라 솟아나라 넘치도록
솟아나라 넘쳐나게 솟아나서 날 푸소서.
예수님은 요한복음 4장에서 수가성 우물가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의 신비를 말씀하시면서 예배의 비밀을 알려주셨습니다. 이어 7장에서 초막절 끝날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고 외치시며 믿는 자의 받을 성령에 대해 약속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2. 구하는 이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1964년 초등학교 2학년 때로 기억됩니다. 하루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옆집 쓰레기통에서 신문지 위에 소복이 쌓인 사과껍질을 보았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조용히 바로 아래 여동생에게 몰래 가져오라고 시켰습니다. 어느 정도 부끄러운 것을 아는 여동생은 다시 그 아래 여동생에게 시켰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사과껍질 먹기’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마침내 성공하는 것 같았으나 문제는 결정적인 순간에 벌어졌습니다. 부엌에 들어가 셋이서 같이 사과껍질을 먹으려 하는데 갑자기 어머니께서 부엌 안으로 들어오셨던 것입니다. 울면서 매를 드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사과를 사달라고 말하면 왜 안 사주겠느냐?” 하시던 목소리가 지금도 들려오는 듯합니다. 그 날 사과껍질을 먹으려는 시도는 어머니를 울게 했고 결국 우리 삼남매는 사과껍질 대신 사과를 먹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1986년 7월 제가 성령님을 체험하는 과정도 그와 비슷하였습니다. 자녀로서의 당당한 요구보다는 남몰래 애타하던 갈급함으로부터 시작되었으니까요. 저는 그 때의 일이 떠오를 때마다 누가복음 11장 11∼13절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진한 사랑과 신실한 약속에 감사와 찬양을 드린답니다. “너희 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세상 아버지도 구하는 아들에게 좋은 것을 준다고 하시고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구하는 이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반드시 주겠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누가복음 11:13에서의 성령은 마태복음 7:11에서 좋은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구하고 받아야 할 기도의 전부고 응답의 전부는 성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저는 어릴 적 쓰레기통에서 몰래 가져온 사과껍질에서 이따금 선악과껍질이 연상될 때가 있어 소스라치게 놀라곤 합니다. 선악과는 비록 껍질이라도 먹음직하고 탐스러운 유혹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소위 인본주의가 팽배한 세상의 가치가 그런 것입니다. 껍데기라도 환영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무지하면 선악과 껍질이라도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처럼 되려는 선악과의 삶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어가 아니라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어가 되어야 합니다. 부디 생명의 강가로 나가 선악과가 아니라 먹을 만한 열매를 맛보고 치유를 경험하는 캠프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3.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왜 나는 혼자여야 합니까?
왜 나의 남편을 먼저 데려셨습니까?
왜 나는 돈 때문에 울어야합니까?
왜 나는 몸이 늘 아픕니까?
왜 내 주변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까?
여러분, 우리에겐 이해하기 힘든 수많은 “왜?”라는 질문이 있습니다. 도무지 답을 알 수 없는 수수께끼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우리를 위해 주님께서 준비하신 답은 언제나 로마서 8:28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말씀은 “우리가 알거니와”로 시작합니다. 꼭 알아야 하는 내용입니다. “왜?”라는 질문에 대한 정답을 잘 알면 알수록 우리는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 갈 것입니다. 주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을 끊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랑으로 우리와 관계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요 한량없는 은혜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 사랑에 항복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행복한 자들입니다. 아직 항복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야곱에게 그랬던 것처럼 져주시기까지 하시면서 마침내 사랑에 항복하게 할 것입니다. 행복하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