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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healing) 그리고 콜링(calling) / 김혜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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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im 작성일21-05-17 10:14 조회14,5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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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healing) 그리고 콜링(calling)

 

김혜란 목사(다비다자매회 회장)

 

1. 젊은 나이에 닥쳐온 엄청난 고난

 

남편의 급성폐암

 

1988년 11월, 저의 남편이 38세. 아주 건강한 사람인데 기침이 나고 호흡이 조금 곤란하여 병원에 갔다가, 뜻밖에도 의사로부터 급성 폐암으로 3개월 밖에 살 수 없다는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암세포가 폐 전체에 급성으로 쫙 퍼져서 손을 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기침을 하고 호흡이 가쁠 뿐인데,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겼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의 투병생활과 천국 가는 이야기

 

남편의 투병 생활은 많은 분들의 뜨거운 사랑과 기도가 힘이 되어 성령으로 충만했습니다. 죽음을 직면하며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는 오히려 은혜로운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심이 아니라면 그렇게 평안하게 투병생활을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한 번도 진통제를 맞지 않았습니다. 폐에 물이 차서 호흡이 어려운 것 외에는 아무 고통이 없어서 하나님께서 살려주실 것으로 믿기도 하였습니다.

딱 3개월이 되는 날 아침, 몸을 잘 움직이지도 못하는 사람이 침대에 일어나 편안히 앉아서 환하고 밝은 모습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이제 다 끝났다. Sweet home 김환영의 집에 간다.” 해서 나랑 같이 집에 가자고 했더니, “당신은 갈 수 없다. 그곳의 구성원은 다르다.”라고도 하고,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환영하러 모였으며 누군가가 자기를 데리러 올 거라고 기다렸습니다.

의식을 차리게 하려고 평소에 애송하는 갈라디아 2장 20절(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을 암송해 보라고 했더니, 틀리지 않고 작지만 또박 또박 천천히 다 암송하며, 중간중간에 “천사가 나를 마중 나왔다.”고 하다가, “이제 갈까?” 라고 천사와 대화를 하며 편안하고 조용히 촛불이 다 타고 사그라져가듯 주님께 가는 데, 너무 엄숙하여 저는 찬송을 계속 불렀습니다. 죽으면 천국에 간다는 말은 어려서부터 익히 알고 있었는데, 저의 남편의 죽음을 보니, 육신의 호흡이 멎으면 즉시 천국과 연결되어 버리더라구요.

 

비탄

 

장례를 다 마친 저에겐 남편이 천국에 간 것을 감사하면서도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이 가져다준 충격과 비탄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늘 함께 했던 사랑하는 사람, 시시콜콜 의논하는 친구 같은 남편, 또 무조건적으로 나를 지지해 주고 내편이 되었던 남편, 함께 사랑을 주고받았는데 이젠 더 이상 나의 사랑의 대상이 없어졌다는 슬픔, 그리움, 외로움이 가져다주는 절망과 비탄,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들을 바라만 봐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허허벌판 모래사막에 의지할 곳 없이 나 홀로 서 있으며, 가슴이 뻥 뚫려 거센 바람이 슁슁 가슴을 통과해버리는 기분이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사람들의 연민의 대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루아침에 미래에 대한 소망도 없이 슬픔과 원망, 절망감에 부딪혔습니다. 길을 가도, 차안에서도, 일을 하면서도 그 고통의 상황들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누가 이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해 줄 수 있을까 이젠 어떻게 해야 되나? 어떻게 이 엄청난 고통의 고개를 넘어야 하나?

찾아와 위로해 주시는 분들의 위로가 고마웠지만 내겐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나의 이 마음을 알겠나, 당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이 엄청난 슬픔과 절망적인 나의 마음을 누군들 알 수 있겠나! 위로하기 위해 찾아오신 그분들 앞에서는 눈물조차, 아니 신음소리조차 내기 싫었습니다. 내 자신이 너무 비참하고 그들 앞에서 부끄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난 누군가의 위로가 절실했습니다. 누군가 내 마음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헤아려 주기만 해도 위로가 될 것 같았습니다.이 답답함을 나눌 대상이 필요했습니다.

어느 날, 멀리 살고 있는 일찍 홀로된 친구를 찾아갔습니다. 그 친구라면 내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다 알아줄 것 같았고, 그냥 위로가 될 것 같았지요. 정말, 그 친구를 만나니 아무 말도 필요 없었습니다. 그저 둘이서 어깨를 감싸고 한 없이 울기만 하고 돌아왔습니다.

 

상실감

 

남편을 잃고 보니 남편 한 사람만 잃은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했던 나의 모든 삶을 다 잃게 되더군요. 함께 했던 친구도, 생활능력도, 사회적인 신분도, 꿈도, 미래도, 소망도, 살아갈 이유조차도 ... 무엇보다도 가장 큰 상실은 나 자신의 미래에 대한 꿈과 소망을 잃은 것이었습니다.

동갑내기 친구인 남편과 저는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후 같은 비전을 가지고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을 살고자하는 꿈이 있었습니다. 우리 집에는 주말이면 교회 청년들이 모여 성경을 펴 놓고 열띤 대화를 나누느라 밤을 새우기도 하였습니다. 남편은 미국에 가서 경제학 공부를 하면서도 신학공부까지 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주님의 인도함이 있으면 순종하고자 하는 꿈도 있었습니다.

나는 남편을 내조하며 함께 이 꿈을 이루고자했는데 남편이 떠남으로 남편과 함께 미래에 대한 꿈들이 몽땅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나 혼자선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할 능력도 없지만, 하고자 하는 마음도, 의욕도 모두 상실하게 된 것입니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너무나 막막하고 절망적이었습니다.

 

2. 슬픔과 방황의 힘든 시간들과 회복(healing)

 

무엇보다도 진정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이었다면 어떻게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펼쳐 보지도 못하고 중간에, 아니 이제 막 시작하려는 판인데 이렇게 데려가실 수 있을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하나님에 대해 알 수가 없었습니다. 몹시 혼란러웠습니다. 그렇다면 진정 내 남편은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이 아니었단 말인가. 하나님을 향한 그의 신앙심이 가짜였나? 하나님이 그의 진심을 모르실리 없는데? 그는 인생의 실패자란 말인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혼란스럽고 괴로운 문제에 저의 마음은 몹시 지쳐 버렸습니다. 무거운 바위가 짓누르는 듯 숨도 못 쉬게 답답한 가슴으로 1년을 지냈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극동방송을 통해 들려오는 어느 목사님의 설교, “여러분, 어떻게 사는 것이 성공한 인생이라 생각하십니까?”“당신의 인생의 목표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그리고 “진정 성공한 인생은 이 땅에서 오래 오래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 안에서 잘 살다가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이 성공한 인생이며, 천국에 가는 것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목표입니다.”라는 것입니다.

이 소리는 하나님께서 낙심하여 슬퍼하는 나에게 주시는 구원의 음성이었습니다. “맞아, 남편은 결코 실패한 인생을 살다간 게 아니야. 주님 사랑하며 살다가 주님 사랑 안에서 주님 품으로 갔으면 됐지. 내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고 나를 짓눌렀던 무거운 짐이 다 벗겨지는 듯 했습니다.

결코 나의 남편이 인생의 실패자가 아니라 진정 성공한 사람이라는 것이 의심할 수 없는 확신으로 저에게 믿어졌습니다. 남편의 죽음은 저에게 큰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나도 주님이 부르시면 언제라도 떠나야한다. 우리 모두는 죽음 후에 하나님 앞에서 엄중한 결산을 받아야한다. 그러니 나도 어느 때 부르심 받을지 모르니 그날을 준비하자.” 남편의 죽음을 통해 저는 오늘이라도 부르시면 갈 준비를 하며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에게 하나님의 회복케 하심, 곧 힐링(healing)이 시작된 것입니다. 남편이 천국 가는 모습을 보았던 것, 방송을 통해 남편은 실패자가 아니라 성공적인 삶을 살다가 갔다는 것을 확인 한 후 하나님께 삐져서 닫혀있던 내 마음이 열렸습니다.

그러던 중, 다니는 교회에서 간증을 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순종하는 마음으로 간증을 준비하면서 남편을 만나기 시작하여 천국에 가기까지의 기억들을 되돌아보며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남편의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남편의 사진도 보지 않았고, 병원근처에도 가기 싫었고, 남편과 함께 병상에서 불렀던 찬양, 성경도 보기 싫었었는데, 하나하나 기억을 되짚어가며 생각에 빠져서 밤을 꼬박 새워가며 간증문을 작성했습니다. 내 안에 묻어둔 고통을 꺼내어 글로 쓰고 성도들 앞에서 고백하면서 나의 상처와 슬픔이 회복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 주님 앞에 나아가 1:1의 교제를 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날마다 하나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내 마음을 다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지만 슬픔을 고백하고, 아이들 양육하면서 힘들고 답답한 일 등, 내 마음들을 글로 다 고백하면서 나를 치료하시고 위로하시는 주님을 가까이 느꼈습니다. 그때부터 매일 글을 쓰는 습관이 지금까지 있습니다. 그때 썼던 글들로 책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나의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가장 큰 프로젝트는 다비다여제자를 만나게 하신 일입니다.

 

3. 싱글맘 사역을 하게 된 계기(calling)

 

절망의 벼랑 끝에서 드린 저의 기도는 “내가 살아야 한다면 살아야 할 의미와 소망을 가르쳐주세요.” 그게 저의 기도였습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내 삶의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가치 있는 삶을 살다가 죽고 싶었습니다. 나의 이 간절한 부르짖음에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저를 찾아와 주셨습니다.

 

여제자 다비다

 

신약성경의 한 페이지에 단 한 번 언급된 바 있지만 저의 삶에 큰 영향을 준 한 여인이 있습니다. 그녀는 사도행전 9장 36절에 나오는 다비다라는 여인입니다. 그녀가 사는 욥바라는 도시는 항구도시로서 풍랑으로 남편을 잃은 과부들이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항구 도시인 욥바의 과부들에게 속옷과 겉옷을 만들어 입히는 등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은 여인이었습니다.

어느 날, 이 여인이 죽게 되자 욥바의 과부들이 이 여인을 살리기 위해 이웃 마을에 있는 베드로를 찾아가서 다비다 여인이 어떻게 자신들을 돌보았는지 그녀가 지어준 옷들을 가져다가 보여주며 살려달라고 간청합니다. “다비다야 일어나라!” 베드로의 명령에 다시 살아남으로써 그녀의 죽음까지도 슬퍼하는 많은 과부들과 온 욥바 시가지에 큰 사건이 되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였던 여인...

다비다 여인은 특별한 은사가 아니라 그 당시 여성이라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바느질로 어려운 이웃을 섬겼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아는 여인이었고, 하나님께서 특별한 관심을 가지는 대상이 누군지를 아는 영적인 여인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며 행복해 했던 이 여인은 성경에서 유일하게 여제자로 불린 여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다비다라는 한 여인을 만남으로, 내가 혼자라는 것 때문에 내 자신을 무가치하고 무능한 자로 평가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큰 능력은 없어도 나와 같이 홀로된 여인들의 친구가 되어 그들의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일은 할 수 있을 것 이라는 꿈을 주셨다. 이런 일이라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이런 일이라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 분명하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내가 평생 살아가면서 다비다 여인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이런 꿈을 가지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보석처럼 소중한 축복이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이 사명은 제 인생이 충분히 가치 있음을 깨닫게 만들었습니다. 이 사명은 연약한 나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여제자 다비다를 통한 사명감 회복은 바로 내 인생의 새로운 출발점이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제가 다니는 교회 주보에서 ‘교우동정란’을 살펴보았습니다. 성도가 많은 대형교회였기에 어쩌다 젊은 분들의 소천소식을 접할 수 있었는데, 그 가정에 찾아가서 그분들을 만났고 또 직장 안에서 홀로 되신 분들과 함께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명절이면 갈 곳 없는 싱글맘 가족을 우리 집에 초대하여 떡국도 끓여 먹고, 추석엔 송편도 나누어 먹고, 저의 남편 기일이 되면 이분들의 가족을 초대하여 피자파티를 하며 교제를 시작하였습니다.

다비다자매회라는 이름으로 공식적인 모임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94년 1월부터 시작하여 27년이 되었습니다. 많은 회원이 거쳐 갔고, 현재 정기 모임에 참여하는 정회원은 100여 명입니다. 10개 소그룹, 조장님들이 회원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슬픔에서 벗어나 기쁨을 주신 나의 치유자

 

상처 입은 나를 치유자로 세우기까지 주님은 늘 내 곁에 함께 계셨습니다. 도무지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은 내 곁에서 주님은 나와 함께 걸으시면서 말을 걸어오셨습니다. “너의 고통과 너의 슬픔을 내게 말해줄래? 나도 너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싶다. 너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나의 고통을 들어 주고 이해해 주는 주님을 내 마음 한 가운데 모셨습니다.

주님은 나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주시고 다시 희망을 꿈꾸게 하셨습니다. 내가 가장 깊은 슬픔을 경험했던 바로 그 한복판에서 희망의 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고통 속에서 나는 전에 느끼지 못했던 심오한 기쁨과 행복을 발견했습니다.

 

4. 다비다자매회를 통해 변화된 자매들 이야기

 

다비다 사역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외로운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기의 말에 귀를 기울여 들어주고,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서로 마음을 알아줄 수 있는 동병상련의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싱글맘들은 사회에서뿐 아니라, 가족중심이 되는 교회 안에서 더욱 마음을 열지 못하기 때문에 교제하기 어렵습니다. 그들은 다비다에 나오니 자신만이 저주받고 자신만이 불행한 줄 알았는데,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구나 하며 마음 놓고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다비다 자매들에게는 자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영적 은사를 주셨습니다. 고난을 견뎌내며 하나님의 특별 관리를 받은 이들은 어느 새 다른 사람을 돌볼 수 있는 치유자가 되었습니다. 아픔을 아파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어려움 당한 자매들을 위해 기도하고 격려하는 일에 선수들입니다. 다비다 자매 두 분을 소개하겠습니다.

 

철이 엄마

 

이 분은 한글을 모릅니다. 카톡은 물론 사용 못하고, 문자를 보내면 아들이 읽어줍니다. 이 분은 교회에 나가지 않습니다. 아니, 나가지 못하는 것이죠. 그 누구와도 어울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나가면 처음 몇 번은 반갑게 환영해 주지만 몇 주 지나면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주지 않습니다. 너무 어린 나이였을 때부터 몸을 혹사시키는 일을 많이 해서 몸이 망가져 오래 전부터 아무 일도 못합니다.

그런데, 다비다자매 중 한 자매가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과 함께 사는데 암수술을 하였습니다. 우울증이 극도로 심한 분이 암투병하면서 신경이 몹시 날카로웠고 만사가 불평, 불만이고, 분노조절이 안되어 아들을 폭행하며 몹시 힘들게 했습니다.

방안에 콕 박혀 사람들과 접촉을 하지 않아 늘 혼자 있는 자매에게 철이 엄마를 연결시켜드렸습니다. 그로부터 두어 주가 지난 뒤 철이 엄마가 사무실에 찾아오셨습니다. “그 친구 살아온 얘기를 들으니까 나도 그렇게 살았기에 나와 똑 같이 참 외롭고 통하는 점이 많아 친구 해 줄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라고 하면서, 외로운 친구에게 친구해 주려고 찾아갔는데 자신의 마음에 쌓인 무거운 것들을 내놓게 되어 오히려 자신의 마음이 치유됐다고 했습니다.

그 덕분에 아들에게도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전에는 다 듣기도 전에 윽박지르고 욕도 많이 하며 강압적인 명령투로 얘기하였는데, 이제는 “지금도 자살하고 싶니?” “엄마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니?” 라고 부드럽게 아들과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이 엄마

 

현이 엄마는 2014년도부터 다비다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늘 그 자리에 반듯이 앉아 눈을 반짝이며 집중하여 열심히 말씀을 듣던 자매입니다. 다리 수술 후 한두 번 외에는 첫날부터 빠짐없이 참석했습니다. 다비다는 심방을 가면 꼭 근처에서 식사를 대접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 자매의 집에 심방을 갔더니 자기가 잘 아는 식당으로 가자고 하더니 자기 집으로 우리를 인도하였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여 맛있게 대접을 받았습니다. 이런 일은 처음 있는 일이라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자매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늘 말없이 조용하기만 하던 자매의 이야기는 멈출 줄을 모르고 계속 이어졌습니다.

이 자매는 신혼 초에 조현병으로 남편에게 버림받고 병든 상태에서 어린 두 딸을 양육하고 있습니다. 심방 가서 이야기 하는 중 자매님의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소설가가 되는 것이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해에 다비다출판사에서 ‘작은 나귀’ 책을 출간하여 출판기념회도 열어드렸습니다. 그 후 그 자매는 고백했습니다. 슬프고 부끄러운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치료의 손길이 미친 듯 치유가 되고 회복됨을 느꼈다고. 과거가 한꺼번에 정리가 된 듯하다고... 지금은 50줄에 사이버대학에 입학하여 소설가가 되고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미디어 문예창작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래전부터 큰 딸아이가 자기와 같은 조현병으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최고의 의술로 소문난 병원들을 돌아다녔지만 쉽게 잡히지를 않고 있습니다. 자기는 병이 들었을 때에 아무에게도 돌봄을 받지 못했지만, 딸아이는 자기가 앓았던 병이니 자기가 돌봐야한다고 말합니다. 저는 어려운 중에도 늘 주님 은혜가 감사하다고 하는 이 자매만한 스승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5. 나가는 말

 

싱글맘 사역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잘 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잘 하지를 못해서 중도에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내게 보여주신 마음은 “너는 사랑만 하라. 일은 내가 하겠다.”였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내 능력과 내 힘으로 하려고 했던 것이 얼마나 어이없는 일임을 깨닫게 된 그 이후 순종하는 마음으로 포기하기를 포기하였습니다.

다비다자매회의 사역 원칙은 3S. “Small, Slow, Simple”, “작게, 천천히, 단순하게”입니다. 다양한 프로그램, 빠른 성장, 크고 유명한 사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작지만 진실하게 한 사람 한 사람을 섬기고 돌보고 기다려주는 사역을 하기 원합니다. 욕심 부리지 않고 주님의 인도하심 따라 성실하게 나아가길 소원합니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라.”(마 25: 40)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예수님에게 한 것이라 하십니다. 싱글맘들, 소외되고 연약한 공동체를 사랑하고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은 진짜 하나님을 사랑하시는 분들이십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저에게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에겐 좋은 분들이 많습니다. 제게 주신 만남의 복입니다. 다비다자매회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후원해주시는 모든 분들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이 계셔서 외롭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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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다 사무실 주소:서울 성북구 동소문로 54, 대아빌딩3층
전화:02-909-6613 팩스:02-941-6612 다음까페(싱글맘 동산) COPYRIGHT(C) BY www.dabidasisters.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