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에서 만나자(마28:7) / 김혜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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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im 작성일22-01-06 12:09 조회12,19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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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에서 만나자(마28:7)
김혜란 목사(본회 회장)
1. 갈릴리에서 만나자는 약속
마태복음 28장을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안식 후 첫날 즉,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후인 주일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는데 그곳에서 주의 천사를 만났습니다. 그 천사의 첫 마디는 “여자들이여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였습니다.
마가복음 14장 28절에서도 예수님이 죽으시기 전 베드로가 세 번 예수님을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고 이미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였고 기억하지도 못했습니다.
1) 왜 갈릴리인가?
성경에서는 갈릴리 바다를 디베랴 바다라고도 하고 게네사렛 호수(바다) 라고도 말하는데 갈릴리는 어부들이 사는 작은 어촌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마리아 사람은 혼혈민족이라 아예 상종도 안 했고, 갈릴리 사람은 촌것들이라고 무시하였습니다.
그런데 왜 부활하신 주님은 거룩한 성전이 있고, 화려하고 성공한 사람들이 사는 예루살렘으로 가시지 않으셨을까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이 사는 예루살렘으로 가셔서, 너희가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려했지만 나는 이렇게 살아났다고 보란 듯이 그들을 찾아가 보이지 않으시고, 왜 가난하고 힘없고, 소망이 없는 사람들의 삶의 현장인 작은 어촌 갈릴리로 그리도 급히 가셨을까요?
2) 갈릴리에는 누가 있었나?
요한복음 20장 20절을 보면, 안식 후 첫날 저녁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잡아 죽인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며 걱정에 가득 차서 다락방에 함께 모여 있었습니다. 그보다, 그들이 따르던 예수님의 죽으심에 충격을 받아 슬픔과 불안함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곳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평강이 있을지어다.” 말씀하시며 손과 옆구리를 보이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를 보고 깜짝 놀라며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쁨은 잠시, 다음 장인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나 잡으러 가야겠다.” 하니 다른 제자들도 함께 가겠다고 하여 갈릴리로 내려갔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음에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으로 돌아갔습니다.
여러분,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으면서 왜 다시 고기 잡는 옛 생활로 돌아갔을까요?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주님이 부활하신 것은 너무 기쁘고 감격스러웠지만 다시 주님의 제자로 살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 곁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베드로는 사랑하는 주님, 그렇게 따르던 주님이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비굴하게도 겁이 나고 두려워서 3번씩이나 주님을 배반하였던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하여, 자신의 비굴함을 부끄럽게 여기고, 자신을 인생의 실패자로 자책하여 더 이상 주님 곁에 있을 수 없어 고향으로 내려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생각은 다르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갈릴리 호숫가의 제자들을 찾아가신 것은 제자들, 특별히 베드로에게 할 말씀이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주님은 여전히 베드로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가 낙심하여 죄책감에 사로잡혀 인생을 포기하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은 어서 빨리 가서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고통을 벗겨주시고 싶으셨습니다. 빨리 가서 “얼마나 무섭고 겁이 났었니? 이제 괜찮아. 내가 죽지 않고 다시 여기 있잖아.” 하고 그 마음을 만져주고 싶었습니다. 주님은 사랑하는 제자가 자포자기하도록 그대로 놔둘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심을 다시 확인해 주고 여전히 베드로를 사랑하심을 알려주어 그의 낙심과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으셨습니다.
2. 갈릴리에 제자들을 찾아오신 예수님이 하신 일
1)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해 따뜻한 식탁을 차리셨습니다.
갈릴리 바다로 돌아온 제자들은 밤중에 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러 나갔습니다. 고기잡이 전문가인 베드로와 제자들은 물고기는 밤에 잘 잡히는 특성을 잘 알기 때문에 갈릴리 바다에서 밤새 고기를 잡으려 했지만, 이날따라 날이 새어 갈 때까지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었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신 걸 안 베드로와 제자들은 허겁지겁 놀라서 육지에 올라와 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해 손수 차리신 식탁입니다.
예수님은 한마디의 책망도 없으셨습니다. 오히려 밤새 고기 잡느라 지치고, 춥고, 배고픈 제자들을 위하여 친히 숯불을 피우시고 생선을 굽고 떡을 준비하셨습니다. 주님이 차려놓은 이 식탁에 마주 앉은 베드로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다시 주님 곁에서 주님의 얼굴을 마주대하고 주님이 차려주신 식탁, 그것도 생선을 굽는 숯불을 보는 베드로는 몸 둘 바를 모르고, 감당할 수 없이 쏟아지는 눈물로 제대로 식사를 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 다시 살아나신 주님과 함께하는 그 자리가 얼마나 가슴이 벅차오르고 감격스러웠을까요?
2) 베드로와의 사랑의 회복
조반 후 주님은 주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에게 세 번 다정하게 질문을 하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아직 숯불은 타고 있었을 것입니다. 가뜩이나 숯불 트라우마가 있는 베드로가 하필 그 숯불 앞에서 당사자에게 그런 질문을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성경은 그 표현을 “근심하여 대답했다.”고 했는데 베드로는 그때 사색이 되었을 것입니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내 양을 먹이라.” 두 번째, 똑 같이 말씀하십니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내 양을 치라.” 갈수록 베드로의 목소리는 작아집니다. 세 번째, 요한복음 21장 17절을 보면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고 대답합니다. 3번씩이나 사랑하느냐고 물을 때, 예전과 다르게 근심하며 떨리는 마음으로, 그러나 겸손히, 진실하게 대답합니다. 저에게는 예수님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그 말이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주님의 사랑고백으로 들립니다. 또한 주님은 베드로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을 들으시길 원하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끊을 수 없는 사랑입니다. 포기할 줄 모르는 사랑입니다. 삼세번은 그 사랑에 대한 확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우리를 사랑합니다. 베드로처럼 부인해도, 제자들처럼 실수해도, 우리들처럼 실망시켜도, 상관없이 주님은 그 사랑의 줄을 놓지 않습니다. 그것은 일방적으로 쏟아 주시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우리는 그 사랑에 매여 있는 자들입니다.
주님은 베드로가 자신의 입을 통해 확실한 사랑의 고백을 하므로 마음에 있는 앙금을 다 떨쳐버리고, 주님과의 사랑하는 관계가 다시 회복되길 원하십니다. 주님의 사랑고백을 받은 우리들도 주님을 사랑하노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의 사랑고백을 듣길 원하십니다.
이 주님이 차리신 식탁의 대화를 통해 주님의 용서와 자비와 사랑의 회복이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이전보다 더 끈끈한, 죽음보다 강한 주님과의 사랑의 관계로 회복이 되었습니다.
3) 갈릴리에서의 파송식 (요21:15~25)
주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회복된 베드로에게 주님은 “내 양을 먹이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자녀를 아무나에게 맡길 수 없듯이 사랑하는 양을 먹이는 이 사명은 아무나에게 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필 왜 베드로입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배신자인데 예수님께서는 왜 베드로에게 이 엄청난 사명을 맡기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으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정확하게 사람을 보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제는 베드로가 양을 먹일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고 보셨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베드로가 무슨 자격을 갖추었다는 것입니까?
□ 실패자를 쓰시는 주님
베드로도 자신이 실패자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당당했고 자신이 있었습니다. 바다 위를 걸었던 유일한 제자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최초의 신앙고백을 하므로 칭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