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가에 심은 나무 / 김혜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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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im 작성일21-07-12 14:25 조회14,20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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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냇가에 심은 나무
김혜란 목사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시편 1:1-6)
1. 들어가는 말
한 나그네가 사막 길을 가다가 작은 나무 한 그루를 보았습니다. 뜨거운 햇볕과 물기 없는 사막에서 어차피 말라 죽을 나무라 생각되어 돌을 올려놓고 모래를 쌓으며 놀았습니다. 몇 년 후 이 나그네는 그 사막 길을 다시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깜짝 놀랐습니다. 자기가 돌을 올려놓고 모래를 쌓으며 놀았던 그곳에 크게 자란 나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돌과 모래에 눌려 위로 자랄 수 없었던 이 작은 나무는 뿌리 쪽으로 자랐고 그 뿌리는 오아시스 물가까지 뻗어 사막에서도 잘 자란 나무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나무는 시냇물 가에 심겨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척박한 모래와 돌뿐인 사막에 심겨진 나무였습니다. 그러나 그 뿌리가 생명의 줄기인 오아시스 물가까지 뻗었기에 잘 자란 것입니다. 뿌리를 물까지 뻗어가는 나무의 몸부림이 상상이 갑니다만 그것보다는 멀지 않은 곳에 오아시스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참으로 은혜를 입은 나무입니다. 겉으로는 척박한 사막에 있는 나무로 보였으나 실제로는 오아시스, 곧 물에 뿌리의 주소를 정한 물가에 심어진 나무였습니다. 나무는 열매와 잎으로 말합니다. 그 열매의 맺힘과 잎의 청청함은 뿌리의 주소에 따라 결정됩니다.
저는 이 예화 속에서 저와 다비다자매들의 모습을 봅니다. 겉으로는 척박한 땅에 윤기 없이 사는 듯해 보여도 실은 시냇가에 뿌리를 내린, 시편 1편의 복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 시편 속으로 들어가 우리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고 복된 인생의 여행을 함께 떠나며 서로를 격려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2. 두 개의 길
시편은 모두 150편인데 그 중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편 중 하나는 1편일 것입니다. 시편 1편은 시편 전체를 열고 들어가는 대문과 같은 첫 번째 시로서, 시편 전체의 메시지가 여기에 다 들어 있습니다. 이 시편 1편은 인생에는 근본적으로 다른 두 종류의 길이 있다고 말합니다.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입니다. 다른 표현으로는 하나님이 인정하는 길과 망하는 길입니다. 두 가지 인생길을 극명하게 대조하며 그 두 길의 특성과 결과를 제시합니다.
지혜로운 부모는 자녀를 양육하면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가르칩니다. 자녀가 원하면 그게 무엇이든지 무조건 OK가 아니라 NO도 말할 줄 아는 부모가 지혜로운 부모입니다. 무엇보다도 부모는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어떤 친구들을 만나는지 관심이 많습니다. 혹시나 나쁜 친구들 만나서 잘못된 길로 갈까 무척 염려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가지 않는 길과 가는 길에 대해 말씀해주십니다.
■ 복 있는 사람이 가지 않는 길
1절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악인, 죄인, 오만한 자는 세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입니다. 악인이 죄인이고 악인이 오만한 자입니다. 악인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이들은 하나님 없이 자신이 모든 것의 주인이 되어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꾀와 술수로 그저 눈앞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순간순간 자기 마음과 생각대로 말을 바꾸고 얼굴을 바꾸면서 자기 편한 대로 목적을 쟁취합니다.
그런 자들이 한결같이 침을 튀기며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보여줘, 그러면 믿을게.” 라고 오만하게 하나님을 조롱합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길은 사람들이 보기에 형통한 듯합니다.
그러나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 없이 세상의 방법으로 살아가는 악인의 삶의 방식이 잘못된 것을 알기에 그들과 멀리 합니다. 자신의 욕망을 쉽게 이루게 해 줄 수 있어 보이지만 이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기에 거부하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복이 참된 복임을 알기에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복은 복이 아니라는 입장이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복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 진정 복 있는 사람입니다.
■ 복 있는 사람이 가는 길
2절에서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밤낮으로 묵상하는 자’ 라고 말씀하십니다. 복 있는 자의 삶은 악인들과 달리,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기준이고 열쇠이며, 원동력입니다. 여기서 “즐거워하다.”는 의인이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기뻐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 사람의 즐거움의 근거가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즐거워 묵상하는 중에 생명을 주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니 하나님의 말씀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습니다. 말씀을 통해 주시는 기쁨이 너무 커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그 말씀에 항상 붙들려 살아갑니다.
제가 1980년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은혜를 받은 후부터 달라진 점은 말씀이 꿀 송이보다 더 달고,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이 얼마나 즐겁던지 사랑에 빠진 사람과 같이 정신없이 말씀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고, 저 역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어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에 들어간 것입니다. 이곳에 계신 분들 중에도 이런 경험을 하신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우리가 무엇으로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을 입증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즐거워하는 것 없이 우리가 무엇으로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을 입증할 수 있겠습니까?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고 체험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반응이 바로 말씀을 즐거워하며 묵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에 빠져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으면 죄의 소욕과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모든 생각들을 물리칠 수 있지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됩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분과 함께 동행하며 교제하는 사람입니다.
3.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복 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시1:3)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언제든지 생수를 공급받듯이 의인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항상 영적 생명을 공급받는 상태를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 비유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복 있는 사람은 사철 물이 풍성하고 아름다운 물가에 심은 나무라는 말이 아닙니다. 딱딱하게 굳고, 거칠고 메마른 사막과 같은 환경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나무의 뿌리는 물줄기에까지 뻗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나무가 뿌리를 어디에 내리느냐는 것이 생사의 관건이라는 것입니다. 나무가 존재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아니 필수적 요소는 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내린 자들의 삶은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생명을 유지할 물을 공급받기에 열매를 맺게 됩니다. 따라서 삶의 모든 영역이 풍족해지고 번성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고 그 풍족함이 단순히 물질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요.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숨겨진 보화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을 소생케 하는 능력의 비밀입니다. 이 엄청난 보화들은 우리가 말씀을 음미하고, 성찰하고, 묵상할 때 얻을 수 있습니다.
■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음
'시절을 좇아'란 문자적으로 '그의 때에'를 말하며 이는 곧 인생의 추수기를 의미합니다. 나무가 추수기에 열매를 맺는 것은 자연스런 결과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죄악을 멀리하고(1절)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끊임없이 기쁨을 누리는 의인은 인생의 추수기에 자연스럽게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한편, 이 열매는 추수기에 맺히는 열매이므로 겉으로는 화려하나 속은 비어 있는 악인들의 빈 껍질과는 달리 완전히 익은 열매임에 틀림없습니다. 이처럼 의인의 행복은 인간의 잔재주로 인해 얻는 그런 종류의 행복이 아니라 끊임없는 경건의 노력을 통해 얻는 완전무결한 행복인 것입니다.
이 시편 1편 말씀과 연결하여 묵상해야 할 말씀은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으면 절로 열매를 맺듯이 시냇가에 뿌리를 내린 나무는 절로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 그 행사가 다 형통함
형통하다는 것은 그가 가는 길에 어려움이나 장애물 없이 모든 일이 뜻대로 잘 되어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다는 것은 어떤 상황, 어떤 형편에서든지 그 삶이 요동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 평안과 축복을 누리며 생명이 충만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뿌리를 박은 사람은 거센 태풍이 흔들어대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다비다 자매님들 중에도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그 충격으로 공황장애를 얻고, 우울증에 시달리는 등 건강을 상실하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시련을 겪으면서도 넘어지지 않고 말씀을 붙잡고 자기의 삶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자매들이 있습니다. 말씀의 양약을 먹으며 견뎌내는 그 모습을 보면서 경탄하기도 합니다. 이 시련의 바람이 지난 후에는 마침내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과 풍성한 하늘의 상급을 받는 자리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그 땅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견고하게 서듯, 곤고한 중에도 낙심치 않고 하나님 안에서 그 삶의 뿌리를 깊이 내리는 성도는 반드시 형통하리라는 것이 시편의 주요 주제 중 하나입니다.
예레미야 17장 7-8절은 시편 1편의 시냇가에 심은 나무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결실이 그치지 않는다는 것에 더하여 더위나 가뭄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지요. 여러분은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엄청난 비밀, 그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4. 베뢰아 사람처럼
저는 ‘다비다자매회’ 하면 사도행전 9장의 욥바항에 살던 여제자 다비다와 함께, 신사적인 베뢰아 사람이 연상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것은 제가 다비다를 시작하면서 가진 꿈입니다. “다비다는 곧 베뢰아 사람이다.” 베뢰아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곧 시편 1편 2절 말씀을 잘 설명해주는 바로 그러한 사람이라고 봅니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행 17:11)
베뢰아 사람들은 마음이 열려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모함이 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시는 말씀이라는 믿음과 사모함으로 열심을 다하여 말씀을 받되, 날마다 연구하는 자세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역사로 일어나길 바라는 몸부림이 있었으리라 봅니다.
여러분, 저의 간절한 소원이 있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의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과 몸부림이 우리 다비다 자매님들이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소위 의인의 길을 보장하는 조건이 아니라 의인의 길로 초대받은 자들의 당연한 과정과 결과로 나타나는 삶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큰 사랑을 입고, 사랑의 손을 잡고 지금까지 살아온 자입니다. 때로는 깡충깡충 뛰며 달려가기도 하고, 때로는 끌려가듯이 하기도 합니다. 언제까지든 그분과 함께 살아갈 것입니다.
5. 나가는 말
제가 전에 썼던 시 ‘여호와가 나의 복입니다’로 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내 영혼이 말할 수 없이 곤고할 때
언제라도 그분 앞에 나아가
내 손을 들고 기도할 수 있고
내 눈으로 당신의 말씀을 읽을 수 있고
내 귀로 당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나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심령이 곤고할 때 찾아갈 수 있는 그분,
마음이 낙심되고 외로울 때 만날 수 있는 그분,
가슴이 터질 듯 답답할 때
내 마음을 다 쏟아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분,
이런 분이 있는 나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분은 항상 내 곁에서 두 팔을 벌리고 기다리십니다.
나를 기다리고 계시는 그분이 계셔서
나는 진정 복 있는 자입니다.
여호와, 당신은 나의 복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다비다 자매님들,
여호와를 진정한 복으로 삼은 여러분들도 나의 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