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평화, 그리고 생명 / 이영복 장로
페이지 정보
작성자 kim 작성일22-01-06 12:11 조회12,245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영광, 평화, 그리고 생명
이영복 장로(본회 사무국장)
“그 숨결로 하늘을 맑게 하시고 손으로 달아나는 뱀을 찌르셨도다.”(욥26:13)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눅2:14)
들어가는 말
메리 크리스마스! 즐겁고 기쁜 크리스마스 예배를 드리면서 좀 생뚱맞지만 눈물 이야기로 말씀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다비다자매 여러분들께서는 올해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셨나요? 하도 눈물을 많이 흘려 “내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라고 기도한 남자가 있었지요? 다윗입니다. 다윗의 눈물을 병에 담아 잘 보관해 달라는 의미가 아니라, 다윗이 고통 가운데 흘린 눈물을 하나님께서 알아달라는 것이었죠. 제가 다비다자매들을 위해 기도할 때 “우리 자매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라고 기도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꼭 하나님께서 그 눈물을 보아주실 것 같기 때문입니다. 제가 ‘다비다 영성’이란 말을 자주하는데 다비다자매들의 눈물이 바로 다비다 영성의 출발점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혹 율무차를 좋아하시나요? 그런데 율무가 영어로 뭔지 아시나요? ‘Job’s tears’, 곧 ‘욥의 눈물’입니다. 우리말로 하자면 고난 중에 흘린 욥의 닭똥 같은 눈물에 착안한 표현이겠지요. 욥은 아내가 비참한 고난에 처한 것을 보고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험한 말을 했을 때도 아내를 나무라며 하나님을 인정하고 눈물을 보이지 않았는데 언제 눈물을 흘렸는지 아십니까? 위로 차 찾아온 세 친구들과의 긴 논쟁 중에 흘렸습니다. 욥기 16장에 나옵니다. “내 얼굴은 하도 울어서 벌겋게 되었고”(16절) “내 친구들은 나를 비웃지만 내 눈은 하나님께 눈물을 쏟아 놓는다.”(18절)고 적고 있지요. 하나님을 향한 눈물! 하나님은 욥의 그 눈물을 보았고 마침내 그 눈물을 씻어주셨습니다.
어쩌면 우리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은 눈물로 표현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환희의 눈물 말입니다. 올 한 해 다비다자매들이 흘린 ‘슬픔의 눈물’이 ‘환희의 눈물’로 바뀌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탄의 계절에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복된 소식, 기쁨의 메시지에 함께 귀 기울이고 싶습니다.
2. 욥의 크리스마스
요즘 저는 욥기를 깊이 묵상하고 있습니다. 화요일 다비다큐티모임(다큐)에서 나누고 있고요. 욥기 1~2장을 보면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사람이라 불린 욥은 졸지에 일곱 아들과 딸 셋과 함께 모든 재산을 잃어버리고 악성 종기까지 앓게 되었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입술로 죄를 짓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그가 욥기 3장에서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찾아온 세 친구 앞에서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욥은 그 엄청난 고통과 절망 속에서 삶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하나님께 이야기하며 희망의 물줄기를 붙잡으려 했다는 것입니다. “중재자(욥9:33)→보증인(16:19, 17:3)→구속자(19:25)”를 기다리는 것이었죠.
특히 오늘 본문 욥26장 13절에서는 “그 숨결로 하늘을 맑게 하시고 손으로 달아나는 뱀을 찌르셨도다.”고 욥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표현했는데, 이 구절은 제게 결코 예사롭지 않은 말씀입니다. 제가 2019년에 낸 <숨으로 쓴 연가>라는 책이 있습니다. 표지에는 영생지로 복원천청(永生之路 馥遠天晴)이라는 팔언절구가 적혀 있는데 이것은 제가 복음을 전한 중국 청년이 하나님을 영접하고 제 이름 ‘영복’이란 두 자를 두음자로 해서 지은 글입니다. 제 생일날 글을 써서 족자로 보내왔는데 “영생의 길 향기 멀리 가득하고 하늘은 맑아라.”는 의미입니다.
책 제목인 숨으로 쓴 연가의 숨은 하나님의 숨결을 의미하기에 여덟 글자의 마지막 두 자 “하늘은 맑다.”는 뜻의 ‘천청’과 연결하면 바로 “그 숨결로 하늘을 맑게 하신다.”는 욥26장 13절의 앞부분이 담겨 있음을 확인할 수 있지요. 책 제목을 정할 때 이 구절에서 따온 게 아니었고 욥기 묵상 중 깨달았기에 저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나아가 욥26장 13절의 뒷부분인 “손으로 달아나는 뱀을 찌르셨도다.”는 바로 원시복음(창3:15)의 확장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십자가에서 못에 찔린 손으로 뱀을 찌른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었지요.
제게는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던 욥의 모습에 평화의 왕이신 주님의 생일을 기다리는 모습이 오버랩 되어 다가온 것입니다. 자신의 저주스러운 생일을 주님의 생일로 덮는 것. 대반전이지요. 욥이 살던 시기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훨씬 전이었지만 그것이야말로 욥의 크리스마스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3. 동방 박사들의 첫 번 크리스마스 선물
마태복음 2장에 보면 동방의 박사들이 별을 보고 베들레헴으로 찾아와 아기 예수에게 경배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세 가지 선물을 드립니다. 곧 황금과 유향과 몰약입니다.
먼저 황금은 왕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고 ‘영광의 왕’이시라는 것이지요. 다음으로 유향은 향기를 발하는 향수로서 성전에서 제사 드리는 데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화목하게 하는 제사장, 곧 ‘평화의 주’이시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몰약은 아주 값진 기름으로서 예수님이 기름부음을 받은 자, ‘오직 한 분이신 메시야’이시라는 것이지요. 니고데모가 돌아가신 예수님의 시신에 몰약을 발랐지요. 몰약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심을 통해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동방 박사의 세 가지 선물인 황금과 유향과 몰약은 그런 점에서 오늘 제가 드리는 말씀의 제목인 영광과 평화와 생명으로 의역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세 개의 단어야말로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들이라 생각합니다.
4. 온전한 크리스마스, 함께 크리스마스
다른 말로 하면 크리스마스에서 ‘영광’과 ‘평화’와 ‘생명’이 사라지면 온전한 크리스마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특히 주인공인 예수님이 안 보이면 가짜 크리스마스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사랑이 세상으로 전달되지 않는 우리끼리의 크리스마스라면 온전한 크리스마스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곧 생명을 살리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우리끼리가 아니라 세상 사람들을 생명의 꼴이 풍성한 자리로 초대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우리 밖의 양을 우리 안으로 인도하여 한 교회가 되게 하는 교회의 미션이고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그리스도인의 가장 아름다운 삶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꼭 유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자세입니다. 벧전3:15~16 말씀을 보십시다. “오직 여러분의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여러분이 가진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모든 사람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십시오.” 온유와 친절이야말로 세상 사람들을 주께로 돌아오게 하려는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세상을 맺고 푸는 권세가 교회에 있다는 것은 세상을 향해 무례하게 목소리를 높여야 된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래서는 선교의 길이 막힐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에 대한 교회의 태도가 이기적이고 무례하여 “그래 올 크리스마스도 너희들끼리 잘 모여 잘 해봐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영광, 평화, 생명의 높은 가치에 ‘우리끼리의 크리스마스’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5. 나가는 말
다시 욥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욥은 고난 중 구속자의 중재를 기다리는 긴 눈물 끝에 마침내 눈물을 씻어주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슬픔의 눈물이 환희의 눈물로 바뀌었다는 것을 욥기 42장의 두 구절을 통해 저는 충분히 유추해볼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