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큐티의 신비//이영복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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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02-15 11:15 조회27,69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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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큐티의 신비
이 영 복(다비다자매회 이사장)
잃어버린 것을 찾는 기쁨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지갑이나 아끼는 물건을 한 번도 잃어버리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아마 그런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최근 운전면허증과 신용카드를 지갑과 함께 잃어버렸다가 다행히 다시 찾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잃었다가 찾은 것이 더 좋은 것을 얻은 것이 아니고 단지 원상회복에 불과한 데도 우리에게 큰 기쁨을 가져다준다는 점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말 이 땅에 사는 동안 소생의 기쁨, 회복의 기쁨, 다시 찾음의 기쁨처럼 아름다운 기쁨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것이 소중한 것일수록 찾은 기쁨이 더함은 물론이겠지요.
저는 성경을 읽어가면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장면들을 찾아보았습니다. 하나님이 크게 기뻐하시는 모습을 특별히 두 군데서 연상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 하나는 창세기 1장에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마침내 그 창조의 절정에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아담을 창조하셨을 때이며, 다른 하나는 누가복음 15장에 기록된 바와 같이 잃은 것을 다시 찾았을 때입니다. 특히 누가복음 15장은 아담의 범죄로 타락한 인간의 구원이요, 하나님의 형상 회복과 관계됩니다. 그러기에 창세기 3장 이후 지금까지 하나님의 기쁨은 곧 회복에 근거한 기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누가복음 15장의 세 가지 비유, 즉 100마리 양 중 한 마리 양, 10드라크마 중 1드라크마, 두 형제 중 한 형제 이야기는 효율과 생산성을 따져 행동하는 우리의 상식과는 도무지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비유로 들려주신 그 말씀들을 묵상하던 중 저는 잃은 것을 회복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기쁜 일인지 강조하기 위한 하나님의 집요하신 설득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즉 100:1이란 비율로는 효율과 생산성 측면에서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자신(이것은 제가 경제학을 전공한 탓인지도 모름)을 설득하기 위해 다시 10:1로, 10:1에서 용납하지 못하는 것을 설득하기 위해 2:1로 그 비율을 높여 가시는 하나님의 간곡한 심정을 헤아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제가 미심쩍으신지 큰 음성으로 말씀해주시고자 급기야 마이크까지 준비하셨습니다.
마이크를 통해 들려주신 하나님의 음성
오래전 어느 날,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저는 회사원을 대상으로 무역협회가 개설한 ‘무역실무과정’에서 강의를 하면서 고장이 난 마이크 시설과 제 강의 방법에 대한 수강생들의 항의로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얼굴이 뜨뜻해진 채 꿈에서 깨어난 저는 실제 강의날짜가 아직 한 주일이나 남아 있었기에 강의에 신경이 쓰인 탓에 개꿈을 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출근했습니다.
그런데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무역협회 연수담당자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 날 강의키로 한 교수가 형편상 강의를 연기하게 되었다며 저더러 날짜를 앞당겨 강의해 줄 수 없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간밤의 꿈이 좀 마음에 걸렸지만 그렇게 하기로 하고 저녁에 무역협회 강의실로 갔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연수 담당자가 마이크를 만지며 “이상하다. 조금 전까지도 괜찮았는데.” 하며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습니다. 마이크가 고장 난 것입니다. 머리끝이 쭈뼛 서는 것 같았습니다. 마이크 없이 강의하는 것은 목소리를 크게 하면 되기에 큰 문제가 아니었으나, 꿈에서 본 수강생들의 항의 장면이 신경 쓰였습니다. 세 시간의 강의 도중 잠시 휴식시간을 갖고 다시 강단에 선 저는 교탁 위에 놓인 쪽지 한 장을 발견했습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생각하며 쪽지를 펼쳐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제가 수강생들이 따로 공부하기 힘든 직장인이기에 모든 강의가 끝난 후 있을 시험 부담을 덜어주고자 예상문제를 미리 알려주겠다고 약속한 것에 대한 항의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것보다 알차게 강의를 듣는 것이 더 소중하다고 봅니다. 그러니 미리 예상문제를 알려주는 것은 재고해 주셨으면 합니다. 성경에는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지요?”
그것은 잃은 것을 찾고자 하는 하나님의 관심이 얼마나 큰 것인지 강조하고자 하나님께서 오직 저를 위해 연출하신 한 편의 드라마였던 것입니다. 고장 난 마이크를 통해 누가복음 15장 말씀을 들려주신 하나님의 큰 음성을 듣고서, 저는 ‘잃은 자’를 찾으려는 열정을 품게 되었고, 제 삶에 구체적으로 간섭하시고 말씀해주고 싶어 하시는 주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의탁하며 큐티를 통한 그분과의 교제에 더욱 깊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큐티, 잃어버린 에덴의 회복
창세기 3장은 실낙원, 즉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행복하게 살던 터전을 잃어버린다는 것, 나아가 함께 교제하던 이를 잃게 되었다는 것. 어디 그것보다 더 기막힌 일이 있겠습니까? 누가복음 15장의 잃은 것을 회복하는 이야기들은 결국 에덴의 회복을 암시한다고 하겠습니다. 큐티는 곧 잃어버린 에덴의 회복을 경험케 하는 것입니다. 즉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금한 선악과를 따먹기 전, 자신이 판단하는 선악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시는 선악의 기준에 따라 살며 영생과 복을 누렸던 상태로의 회복 말입니다. 하나님과 나누던 친밀한 교제의 회복 말입니다.
다비다자매회 자매님 여러분, 저는 자매님들의 그 큰 상실의 아픔이 얼마나 쓰라린 것인지, 어떻게 위로해야할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상실의 안타까움을 체휼하시고 온전한 회복의 기쁨을 가져다주시는 그 유일한 분과 교제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습니다. 매일 큐티를 하십시다.